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틈만 나면 한국을 ‘부자 나라’로 추어올린다. 저의가 담긴 표현일지라도 영 틀린 말은 아니다. 한국은 전략상 국제사회에서 신흥국을 자처하고 있지만, 경제 규모 10위권 언저리에 있는 부자 나라임에 틀림없다.

부자 나라라고 해서 그 나라 국민들이 덩달아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나라는 부자인데 국민은 가난한 경우도 있다. 일본이 대표적 사례다. 일본은 명목 국내총생산(GDP) 규모에서 미국·중국과 함께 3대 경제대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중국과 달리 1인당 GDP도 높은 편이다. 우리의 통계 당국이 집계한 지난해 1인당 GDP는 4만247달러였다. 세계 23위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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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 각자는 국력이나 1인당 국민소득에 걸맞는 호사를 누리지 못한다. 주거비를 포함한 생활비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의 과도한 주거비 부담은 그들 특유의 주거문화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택 구조상 감가상각비가 큰데다 유지·보수 비용이 많이 들고, 남의 집 살이를 하는 대도시 주민들에겐 월세 부담이 만만치 않다.

요즘 들어서는 한국도 일본을 닮아가고 있다. 국부(國富)는 날로 커져 가는데 보통의 한국민 각자가 느끼는 생활고는 오히려 심화되어 간다. 특히 최근 2~3년 사이 생활이 더욱 팍팍해졌다고 푸념하는 이들이 늘었다. 개인소득에 큰 변화가 없는데도 그렇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의 지난해 1인당 GDP는 3만1838달러를 기록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소득은 거의 제자리 걸음을 하는데 지출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 그 이유다. 다만, 구체적인 이유에서는 일본과 다른 점이 엿보인다. 우리의 경우 공동주택 거주 비율이 높고, 전세제도가 뿌리내리고 있었던 덕분에 주거비 부담이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었다. 안정적이던 전셋값은 주거비 부담을 덜어주는데 한몫을 해주었다. 적어도 문재인 정부 출범 전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현 정부 출범 이후 집값과 전·월세 가격이 급등했다. 서울 전셋값은 올해 11월중에만 2.39%나 올랐다. 연율로 환산하면 30% 내외 수준이다. 그 바람에 국민 각자가 소비할 돈이 크게 줄어들었다. 집을 장만하기 위해, 또는 오른 전셋값을 감당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모아야 하는 것이 직접적 원인이다.

소비할 돈이 없기로 치면 젊은 층이 더하다. 약간의 목돈이 있는 쪽은 아파트 ‘패닉 바잉’에 나서느라, 그보다 못한 이들은 주식시장에서 ‘빚투’에 전념하느라 여유를 잃었다. 목표는 하나, 이생에서 집 한 채 마련해 보기 위함이다. ‘임대차 2법’ 통과 이후부터는 전세의 월세 전환이 늘면서 세들어 사는 가구의 살림살이가 더욱 팍팍해졌다.

앞으로의 상황은 더 암울하다. 주택 보유세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 그 배경이다. 특히 종부세 최저 세율이 올해 0.5%에서 0.6%로 동반 상승하는 만큼 서울의 웬만한 아파트 보유자에겐 종부세 부담이 급격히 늘어나게 돼 있다. 또 하나 공시가격과 공정시장가액 비율이 동반 상승한다는 점을 무시해선 안 된다. 정부는 ‘과표 현실화’란 명분을 앞세워 매년 공시가격을 높이는 동시에 과표 산정 기준이 되는 공정시장가액 비율도 해마다 5%포인트씩 올리고 있다. 그 비율은 올해 90%에서 내년엔 95%, 내후년엔 100%까지 치솟는다.

혹자는 주택 보유자, 그 중에서도 고가 주택 또는 다주택 보유자를 중심으로 보유세 부담이 커지고 있으니 서민 생활엔 별 지장이 없을 것이라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세금 폭탄은 부자나 주택 보유자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주택에 대한 중과세는 주택 임대료 인상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세금 폭탄 투하를 통한 부동산 수요 억제에만 몰두하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올해 7·10 부동산대책을 발표하면서 시가 50억원 상당의 주택을 보유한 다주택자라면 종국엔 종합부동산세만 연간 1억원 정도를 부담해야 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서울 요지의 84㎡ 아파트 두 채만 있어도 억대 종부세를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재산세까지 더하면 보유세 규모는 더 늘어난다. 이는 종부세 최고 세율이 올해 3.2%에서 내년에 6.0%로 오르는데 따라 곧 나타날 현상이다.

이 정도니 세금이 아니라 벌금이란 푸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실제로 국민의힘 이종배 정책위의장은 “집 한 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한 달 월급을 세금으로 다 내야 할 것”이라며 “(정부가) 벌금을 매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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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부세는 일종의 부유세다. 더구나 한국의 종부세제는 세계적으로 유사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제도란 평을 듣는다. 현행 종부세제는 부동산 자산에 포함된 부채에 대해서도 예외 없이 고율의 세금을 매기도록 설계돼 있다는 점에서 문제를 안고 있다.

종부세 외에도 문재인 정부는 국민들의 세금 부담을 크게 늘려왔다. 대표적 예가 세계적 흐름에 역행해가며 법인세 최고 세율을 22%에서 25%로 올린 일이다. 법인세 인상의 부담은 기업뿐 아니라 근로자와 소비자가 나누어 짊어지게 된다는 게 상식이다. 소득세율도 예외 없이 올랐다. 이 정부 들어 이미 한 차례 인상된 소득세 최고세율은 내년에 45%로 더 올라간다.

국민들의 화를 돋우는 것은 또 있다. 마른 수건 비틀듯 국민들을 쥐어짜면서 정작 정부는 나랏돈을 흥청망청 쓰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논란이 한창인 가덕신공항 건설 방안이 대표적 예다. 여당이 전면에 나선 듯 보이지만 그 배후엔 정부가 자리하고 있다. 합리성이 결여된 선심성 사업에 10조원 남짓을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예비타당성(예타) 조사 면제를 통해 밀어붙인다는 게 여권의 방침이다.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국가재정 300억 이상 투입시)이면 예타를 실시토록 한 국가재정법을 무력화시킬 특별법까지 만들어가며 나랏돈을 선거용으로 쓰겠노라 외치는 꼴이다.

가덕신공항안이 여권 계획대로 추진되면 문재인 정부에서 승인된 예타 면제 사업비만 100조에 이르게 된다. 예타 면제로 22조원이 투입된 4대강 사업을 그토록 비난해놓고 자신들은 그보다 더 논란과 반대가 많은 사업들에 마구 돈을 쏟아붓고 있다.

정부의 재정 낭비는 고스란히 국가채무로 쌓여가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역대 정부에서 장기간에 걸쳐 누적된 국가채무(D1) 660조원을 물려받았다. 그러나 임기 말이면 그 규모가 1000조원을 넘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가혹한 세금으로도 부족해 적자국채까지 수시로 발행하고 있지만 워낙 씀씀이가 헤프다 보니 나랏빚이 무섭게 늘어가고 있는 것이다.

고래로 태평성대는 세금을 가볍게 함으로써 백성들이 함포고복(含哺鼓腹: 마음껏 먹으며 배를 두드림)하는 세상을 의미한다. 부자 나라의 가난한 백성들에겐 한없이 먼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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