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한국의 조세경쟁력이 최근 3년 사이 크게 악화된 것으로 밝혀졌다. 조세경쟁력 하락은 위기시 대대적으로 재정을 투입할 여건이 악화됐음을 의미한다. 조세경쟁력이란 국가 재정에 위기가 닥쳤을 때 조세를 통해 난관을 헤쳐갈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내주는 개념이다. 조세경쟁력은 일반적으로 세율이 낮을수록 높아지고, 그 반대일 경우 낮아진다.

관련된 용어로 조세중립성이 있다. 조세중립성은 세원이 넓으면서 과세 대상 간의 세율 격차가 좁을수록 높아진다. 예를 들어 증세를 해도 납세자의 경제상황에 특별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 조세중립성이 높다고 설명된다. 이는 세율을 다소 올려도 납세자가 추가적인 부담을 느끼지 않는 상황을 의미한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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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조세경쟁력과 조세중립성이 높아지면 그 나라의 재정적 기반은 더욱 단단해진다고 볼 수 있다. 조세경쟁력 및 조세중립성을 높이기 위해 일반적으로 권장되는 방안은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문재인 정부 들어 ‘세금 폭탄’이란 말이 언론에 자주 등장하면서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의 실현을 권고하는 목소리가 많아졌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의 조세경쟁력이 최근 들어 급격히 악화됐다는 분석이 공개돼 눈길을 끌고 있다. 보수적인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싱크탱크의 분석이긴 하지만 공신력 있는 외국 기관의 자료를 근거로 삼고 있는 만큼 관심을 가져볼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9일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에 따르면 이 연구원이 미국 조세재단(US Tax Foundation)의 ‘국제조세경쟁력 보고서’(올해 10월 발표)를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의 조세경쟁력은 2014년 이후 하락세를 보이고 있었다. 보고서에 나타난 우리나라의 올해 조세경쟁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국가 중 24위에 그쳤다.

세목별 경쟁률은 소비세가 2위로 가장 높았다. 그러나 소득세는 22위, 법인세는 국제조세와 함께 나란히 33위를 기록했다. 재산세 부문에서도 한국은 30위의 조세경쟁력을 기록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조세경쟁력 순위의 하락 속도가 최근 들어 빨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OECD 내 조세경쟁력 순위는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만 해도 17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순위는 올해 24위로 7계단이나 낮아졌다. 하락 폭의 크기로 치면 네덜란드(-8계단)에 이어 두 번째에 해당한다.

순위 하락을 주도한 세목은 법인세와 소득세 등이었다. 이들 세목의 조세경쟁력은 나란히 5계단씩 내려앉았다. 재산세는 1계단 하락했고, 소비세는 제자리를 지켰다. 이는 곧 우리나라 납세자의 법인세와 소득세 부담이 최근 3년 새 크게 커졌음을 의미한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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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법인세 최고세율을 기존보다 3%포인트 높은 27.5%(지방세분 포함)로 재조정했다. 소득세 최고세율도 두 차례 올려 45%까지 치솟게 됐다. 소득세 최고 세율 인상은 국회가 최근 새해 예산안을 처리하면서 소득세법 개정안을 예산안 부수법안으로 통과시킴에 따라 별다른 논란조차 없이 그대로 확정됐다.

법인세와 소득세의 세율 인상은 최근의 국제적 흐름에도 역행하는 조치다. 글로벌 경기 불황에 코로나19 팬데믹까지 겹치면서 세계 주요국 중엔 세금 인하를 시도한 나라들이 적지 않았다.

대표적 예가 미국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법인세와 소득세를 대폭 낮추는 등 감세 정책을 펼쳐왔다. 그 결과 미국의 조세경쟁력은 최근 3년 사이 7계단이나 상승해 21위에 안착했다. 미국은 2017~2020년 기간 중 가장 큰 상승폭을 보였다. 그 다음으로 순위 상승폭이 큰 나라는 이스라엘(+6위), 헝가리(+5위), 프랑스(+4위), 그리스(+3위) 등이었다.

조세경쟁력은 기업들이 해외투자를 할 때 관심 있게 살펴보는 요소 중 하나다. 조세경쟁력이 높다는 것은 곧 외국 기업들의 투자를 유치하기 좋은 환경을 갖췄다는 것을 의미한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실장은 “많은 선진국들은 조세경쟁력 제고를 위해 법인세와 소득세를 경쟁적으로 인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법인세와 재산세 등 조세경쟁력이 낮은 부문을 중심으로 세율을 낮추고 세원은 넓혀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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