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서울에서 전세 매물의 씨가 말라갈 것이란 우려가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의 후유증이 제대로 발현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두 제도의 시행 근거를 담은 개정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된 지 4개월여 만의 일이다.

개정법 시행 이후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전셋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한편 전세 매물마저 구하기 힘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나아가 전셋값 상승이 아파트 매매가격을 밀어올리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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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서울시 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의 전월세 거래량은 8691건이었다. 이중 전세 거래는 5345건에 그쳤다. 임대차 거래에서 전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61.5%로 집계됐다. 이 같은 전세 비중은 전달(72.2%)보다 10.6%포인트나 감소한 것이다.

전세 비중 급락 현상은 전세난이 심각했던 2016년 1월에도 나타났었다. 당시의 전세 비중은 59.2%까지 내려갔다. 지난달 나타난 전세 비중 하락도 지금의 전세난과 맞물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전세 비중은 올해 월별 집계치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최근 10년을 놓고 보았을 때는 두 번째로 낮다.

서울의 25개 구별 전세 비중 현황은 강동구 33.9%, 중랑구 34.7%, 서초구 46.2%, 종로구 49.3%, 동대문구 50.6%, 구로구 51.6%, 강남구 54.6%, 송파구 58.0% 등이었다.

전세 비중 하락과 함께 눈여겨 볼 점은 전세 거래량 자체가 크게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새 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되기 이전인 올해 7월만 해도 서울 아파트의 전세 거래량은 1만3346건에 달했다. 하지만 7월 31일 개정법이 시행된 직후인 8월부터 거래량이 큰 폭으로 줄었다. 8~11월 기간 중의 월별 전세 거래량은 차례로 1만216건, 7958건, 7842건, 5345건 등이었다.

반면 시중에서 반전세로 통칭되는 준전세와 준월세는 눈에 띄게 증가했다. 보증금이 월세의 240개월치를 초과하는 개념인 준전세와 12~240개월치를 보증금으로 삼는 준월세를 합친 거래 건수는 지난달 기준 37.9%로 증가했다.

이는 순수한 전세가 사라지는 대신 반전세 또는 월세가 주택임대차 시장에서 새로운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만큼 무주택 서민들의 주거비 부담이 커져갈 것임을 예고한다고 볼 수 있다.

주택 임대차 시장의 기류 변화로 무주택자들의 부담이 커지자 주택임대차보호법을 재개정하자는 목소리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요는 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가 몰고온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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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리얼미터가 YTN의 의뢰로 실사한 여론조사(전국 성인 500명 대상)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48.1%가 임대차법 재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현행 유지 입장을 밝힌 이들의 비중은 38.3%에 머물렀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국민 여론과 동떨어진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전세난의 주된 원인은 계약갱신청구권제나 전월세상한제가 아니라 저금리에 의한 시중 유동성 증가 등이라는 것이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다. 이전 정부에서 주택 공급 인허가 물량이 적었기 때문에 주택 공급 물량이 부족하다는 주장도 함께 펼치고 있다.

정부의 이 같은 주장과 관련, 시장에서는 현실 인식 부재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각종 규제로 아파트 공급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는데다, 새로 지어진 아파트조차 집주인이 직접 입주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 전세 매물 부족의 원인이라는 게 시장 전문가들의 대체적 시각이다.

급격히 늘어난 보유세 부담도 전세 매물 부족을 부추긴다는 의견이 많다. 집주인들이 급증한 보유세를 내기 위해 기존의 전세 매물을 반전세나 월세로 돌리다 보니 전세가 귀해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부동산빅데이터업체 아파트실거래가(아실)의 집계에 의하면 이달 9일 기준 서울 아파트의 전세 매물은 5개월 전에 비해 65.1%나 줄어들었다. 이런 현상은 양도세 등을 덜 내기 위해, 또는 전월세상한제 규제를 피할 목적으로 자기 집에 들어가 살려는 집주인들이 늘어나면서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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