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마침내 탈원전 비용에 대한 청구서를 국민 개개인에게 보내겠다고 예고했다. 그간 한국전력이 홀로 감당해온 탈원전 정책 비용을 내년부터는 국민들에게 분담시키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다.

명목은 전기요금체계 개편이다. 명분으로 말하자면 전기요금 현실화 대책이라 할 수 있다. 좋게 해석하자면 그렇다. 실제로 그런 측면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탈원전 정책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하게 되자 국민들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예정된 시나리오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미다스의 손을 갖고 있지 않는 한 탈원전 비용은 어차피 국민들 몫으로 돌아가게 돼 있었다. 문재인 정부는 그간 탈원전에 대한 비난 여론이 커질 때마다 전기료 인상은 없다며 버텨왔다. 그러나 예상보다 일찍 한계상황에 다다르자 고심 끝에 전력체계 개편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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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정부가 발표한 전기요금체계 개편안의 핵심은 연료비 연동제 도입과 기후환경 비용 분리 고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연료비 연동제는 전기 생산에 필요한 연료비의 변동분을 주기적으로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제도다. 반영 주기는 3개월이다. 즉, 분기에 한 번씩 전기 생산 원료인 액화천연가스(LNG)와 석탄, 유류 등의 국제가격 변동치를 산정한 뒤 전기요금을 결정해 전력 수용가에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연료별 가격 산정은 관세청이 고시하는 통관 기준으로 이뤄진다.

기존과 달리 기후환경 비용을 따로 매겨 고지한다는 것도 주요 변화 내용으로 꼽힌다. 지금은 기후환경 비용이 전기요금에 포함돼 있어서 그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게 돼있다. 기후환경 비용은 풍력이나 태양광 등 신재생 에너지의 의무사용, 온실가스 배출권 매입, 미세먼지 관리를 위한 석탄발전 감축 등에 소요되는 비용을 의미한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각종 활동에 드는 비용이라고 보면 된다. 내년부터는 이 비용을 따로 분리해 명기한 전기요금 청구서를 수용가에 보낸다는 것이 정부 방침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발송될 전기요금 청구서엔 기존의 ‘기본요금’, ‘전력량 요금’ 외에 ‘연료비 조정액’과 ‘기후환경 요금’이 따로 적히게 된다. 또 이들 항목의 요금을 모두 합친 ‘전기요금계’와 여기에 부가세와 전력기금 등을 더한 ‘청구 합계’가 병기된다.

이번 전기요금체계 개편은 나름의 명분을 지니고 있다. 수용가들이 친환경 에너지 사용 증대에 따른 비용 분담의 당위성을 자각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 그 첫째다. 나아가 온실가스 감축 노력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도 있다.

연료비 증감에 따라 전기요금이 변화하도록 한 것도 합리성을 담보한 대책이라 평가받을 만하다. 누군가 이야기했듯이 두부 값(전기료)을 콩 값(연료비)보다 싸게 매기는 것은 불합리한 일이다.

문제는 이번 개편안이 탈원전 정책의 오류에 따른 비용을 전기요금을 통해 전력 수용가에 고스란히 전가할 길을 터준다는 데 있다. 이는 나름의 합리성에도 불구하고 수용가가 개편안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느끼는 가장 큰 이유다.

더구나 탈원전은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 정책이다. 그런 정책을 소수 집권세력이 합리적 근거도 없이 밀어붙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비싼 전기료 부담을 흔쾌히 용납할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한전 사옥. [사진 = 연합뉴스]
한전 사옥. [사진 = 연합뉴스]

현재 문재인 정부는 전력생산 단가가 가장 낮고 온실가스 배출도 제로에 가까운 원전의 비중을 줄여가면서 값비싼 신재생 에너지 사용을 늘려가고 있다. 신재생 에너지의 한계를 보완하려다 보니 액화천연가스(LNG) 사용량도 크게 늘었다. 신재생 에너지와 LNG는 단위 전력 생산 비용이 원자력의 배 이상이다.

정부는 전기요금 체계가 개편되면 내년 1월엔 월평균 350kWh의 전기를 사용하는 4인 가구의 전기요금이 1050원 정도 내려갈 것이라 추정했다. 요금체계 개편이 수용가의 부담을 당장 증가시키지는 않을 것이란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는 눈가리고 아웅이다. 지금의 비정상적인 저유가 상황을 이면에 감춘 채 국민들을 속이려 한다는 비판을 받아 마땅한 일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최근 연 ‘2020 석유 콘퍼런스’를 통해 내년도 국제유가가 올해보다 배럴당 6~7달러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내년에 주요국들이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본격화하면서 세계경제가 되살아나면 국제유가는 그 이상으로 뛰어오를 수도 있다. 이 경우 우리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와 석유화학 등이 전력요금 인상의 역풍을 가장 요란하게 겪을 수 있다.

이번 개편안이 적용되면 1~2인 가구의 전기요금이 크게 오른다는 점도 문제다. 정부는 체계 개편을 통해 월 200kWh 이하 전력 사용 가구에 대한 할인제도를 점차 축소하다가 없애기로 했다. 저소득 가구를 지원한다는 당초 취지가 가구 분할 현상으로 인해 퇴색했다는 것이 그 이유다. 하지만 이를 두고 정부가 손쉬운 방법으로 전기료 인상 효과를 누리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들 각각의 세부적인 문제를 관통하는 공통 원인은 탈원전이다. 원전 가동을 늘렸더라면 연료비나 기후환경비용 증가에 따른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었고, 1~2인 가구에 대한 할인혜택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전기요금 개편이 아니라 탈원전 정책 폐기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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