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2020년이 12월 마지막 일몰과 함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지난해를 장식한 다사다난의 중심엔 코로나19가 자리하고 있었다. 코로나19 창궐은 우리 모두에게 미증유의 시련을 안겨주었다. 오랜 세월 유지돼온 우리의 일상이 흐트러졌고, 경제 또한 엉망이 되고 말았다. 특히 경제적 측면에서 우리는 모처럼 뒷걸음질까지 경험해야 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원인을 코로나19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진단은 정확하지도 않을뿐더러 미래지향적이지도 않다. 지난해를 되돌아볼 때 우리 경제가 망가진 데는 불가항력 이외의 요인이 적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원인은 정책 오류였다. 거기서 비롯된 아픈 기억들은 뇌리에 파묻히지 않고 여전히 현실 속에서 떠돌아다니고 있다. 그 기억들은 우리를 불쾌하게 하지만, 오류를 진단하고 같은 실수의 반복을 막아주는 소중한 도구다.

강릉 경포해변에서 바라본 2021년 첫날의 일출 모습. [사진 = 연합뉴스]
강릉 경포해변에서 바라본 2021년 첫날의 일출 모습. [사진 = 연합뉴스]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최근 수년래 우리 사회에서는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이 부쩍 많아졌다. 국력과 국부는 날로 커져가고 있고 1인당 국민소득도 늘어가는데 이런 호소가 많아지는 것은 아이러니다. 이유는 한가지다. 앞서 이 난에서 언급했듯이 부자 나라의 가난한 백성들이 많아지고 있는 점이 그것이다.

더구나 요즘 들어서는 자산 규모가 커졌지만 정작 쓸 돈이 없어 곤궁해진 이들이 크게 늘었다. 특히 포트폴리오 구성 전략의 일환으로 자산의 대부분을 집 한 채로 한정했거나, 소규모 오피스텔 등에 묶어둔 은퇴자들의 생활고가 갑자기 심해졌다. 부채가 상당수 포함돼 있기 십상인 노후 대책용 부동산에 대해 정부가 폭탄 퍼붓듯 세금을 부과하고 있는 게 가장 큰 원인이다. 복지 혜택의 우선순위에 들어야 할 이들이 부동산을 무작정 적폐시하는 현 정부의 비정상적 정책의 희생양이 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서울 서초구가 구민들의 과도한 재산세 부담을 덜어주겠다며 일부 환급에 나선 것도 이런 현실과 무관치 않다. 모두가 어려워진 이 때 정부가 공시가격 9억 이하의 1가구 1주택에까지 과도하게 재산세를 물리는데 대한 반발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한 자치단체장의 정치적 계산이 깔린 행동일망정 의미 있는 반발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서울의 자치구들이 결코 가난하지 않다는 해당 구청장의 주장도 귀를 쫑긋하게 한다.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백성들이 곤궁해지는데 정부만 부유해지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인 듯하다. 백번 옳은 얘기다. 똑 같은 가난의 고통도 정부가 먼저 허리띠를 졸라매며 긴축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보다 기껍게 참아낼 수 있는 법이다.

더욱 고약한 점은 은퇴자를 비롯한 부동산 보유자들의 고통이 외부 변수 등의 불가항력적 요인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들은 선무당 사람 잡듯 휘둘러진 엉터리 정책에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일 뿐이다. 정책 오류로 집값이 폭등했고, 그 결과 소득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는데 그들에게 부과되는 세금만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무차별적 세금폭탄의 유탄은 무주택 서민들에게 날아들었다. 집주인들이 세금 납부를 위해 임대료를 대폭 끌어올린데 따라 나타난 현상이다. 게다가 정부 여당이 앞뒤 살피지 않고 속전속결로 새로운 제도들을 쏟아내는 바람에 ‘벼락 거지’가 된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 앞서 말한 은퇴자들이나 전세 낭인들이 그들이다.

정책 오류가 빚은 화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가 적극적으로 해소하고자 했던 양극화 현상은 오히려 더 심화됐다. 조명희 국민의힘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현황’에 의하면 지난해 11월 기준 사회빈곤층은 272만2043명에 달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와 비교하면 이들의 숫자는 55만명이나 증가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통계청 자료를 통해 여러 번 확인됐듯이 소득 1분위 가구의 근로소득이 현 정부 들어 급격히 줄어드는 것도 문제다. 그 공백을 정부 지원에 의한 이전소득으로 메워주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국가의 재정부담은 날로 커져가고 있다. 이는 현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이란 비현실적 경제정책을 펼쳐온데 따른 부작용이다.

1분위 가구의 근로소득 감소를 초래한 직접적 원인은 최저임금의 무차별적 인상에 따른 일자리 감소다.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단기 알바성 일자리를 양산하고 있지만 문제를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다. 주당 1시간만 일하면 취업자로 분류되는 통계기준으로 인해 명목 취업자 수는 그런대로 유지되는 듯 보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착시일 뿐이다. 요즘 들어서는 그 수치마저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11월 취업자 수는 전년 동월 대비 27만명 이상 줄어들었다. 월별 취업자 감소세는 9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지난 한 해 고통을 겪은 부류를 꼽자면 자영업자를 포함한 소상공인들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은 코로나19 한파를 최일선에서 견뎌낸 이들이다. 정부와 국회가 세 차례에 걸쳐 재난피해 보전 방안을 마련했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생계난은 소상공인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과거 중산층임을 자부했던 사람 중 상당수도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게 지금의 우리 현실이다. 세금 부담 증가와 주거비 상승이 그 원인이다. 이들 중 다수는 폭등한 집값 탓에 뜻하지 않게 부자 반열에 들어가면서 부유세인 종합부동산세 부담까지 떠안게 됐다. 서초구의 재산세 환급도 그들의 불편한 정서를 반영한 측면이 크다 하겠다.

암울한 현실을 더욱 어둡게 만드는 것은 정부·여당의 독주다. 각종 부작용을 드러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정책 기조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정부가 솔선수범해 고통을 분담할 의지도 없는 듯 보인다. 새 해 본예산이 집행되기도 전에 추가경정예산 이야기가 스멀스멀 나오는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추가 없는 경정예산을 짜서라도 정부부터 고통을 나누려는 의지를 보여주면 좋으련만, 그런 기미는 어디서도 보이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래 지금까지 슈퍼에 초슈퍼 본예산을 거듭 편성해왔다. 올해 본예산만 놓고 보더라도 총지출이 558조원이나 되는 바람에 총수입과의 차액이 75조4000억원에 이르게 됐다. 올 한 해 동안에만 이만큼의 돈이 통합재정수지 악화로 이어지게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재정이 효율적으로 쓰이는 것도 아니다. 저소득층에 대한 이전소득 지원과 노인 알바성 일자리 양산 등에 돈을 쏟아붓는 것은 지속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효율적이지도 않다. 정답은 제대로 된 기업 일자리를 늘려 그들에게 안정적인 일터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경제와 관련해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자면 정부·여당이 저지른 오류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핵심은 정책 오류다. 그리고 그 기저엔 실리보다는 이념을, 국익보다는 정파 이익을 우선시하는 문재인 정부의 잘못된 국가 운영 패러다임이 자리하고 있다. 결국 패러다임 전환이 코로나19 등으로 심화된 고난을 극복하기 위한 해법이라 할 수 있다.

2021년 새해엔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통해 감동과 스토리가 있는 고난 극복의 역사가 쓰여지길 기대한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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