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수신료를 인상하려 하자 반발 여론이 다시 들끓기 시작했다. 제1야당은 시청자들에게 수신료 납부 거부권을 부여할 목적으로 방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민의힘 허은아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 개정안은 수신료와 전기료의 병합고지를 금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금처럼 TV 보유 가구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무조건 수신료를 내도록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전제에서 나온 행동이다. 여기엔 수신료 인상을 허용하기는커녕 시청자 각자의 판단 하에 아예 내지 않을 길을 터주겠다는 의도가 담겼다.

현재 KBS 수신료 징수는 ‘방송법’ 및 ‘방송법 시행에 관한 방송위원회 규칙’에 근거해 이뤄지고 있다. 법 규정에 따르면 KBS가 이사회 심의·의결로 수신료 인상을 결정한 뒤 그 내용을 방송통신위원회에 제출하면 방송위는 자체 판단을 거쳐 의견서를 국회에 제출하도록 돼 있다. 수신료 인상에 대한 최종 승인권을 국회가 갖고 있는 것이다. KBS는 최근 이사회 회의를 통해 지금의 수신료 2500원을 3840원으로 인상하는 안을 의결했다.

[사진 = KBS 제공/연합뉴스]
[사진 = KBS 제공/연합뉴스]

KBS 수신료 조정은 그간 숱한 논란을 야기해온 사안이다. 여러 차례 인상 시도가 있었지만 정치권 일부와 시민사회의 반발로 번번이 무산됐다. 지금의 수신료 2500원이 결정된 때는 1981년이다. 당시 800원이던 수신료가 컬러TV 등장을 계기로 2500원으로 인상됐다. 그리고 꼬박 40년이 지났으니 KBS로서는 인상 명분이 충분히 쌓였다고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간의 맥락을 배제한 채 액수만 놓고 보면 그럴 만하다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시청자들 다수는 예나 지금이나 수신료 인상에 적극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다. 액수가 문제가 아니다. 많은 시청자들은 KBS가 과연 공영방송으로서의 역할을 이행하고 있느냐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진정한 공영방송이라 할 수 없는 KBS에 단 한 푼일망정 수신료를 내고 싶지 않다는 게 그들의 심정이다.

제기되는 문제의 핵심은 KBS 방송의 불공정성이다. 보도와 시사, 심지어 연예 프로그램에서까지 불공정성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게 많은 시청자들의 생각이다. 그 예는 일일이 손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피고 신분의 최강욱 열린우리당 대표에게 방송에 출연해 자신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밝히도록 한 일 등이 그에 해당한다. 특히 편파성이 극심했던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은 KBS의 존재 이유를 의심케 할만 했다.

이밖에도 김제동씨처럼 정치적 편향성이 강한 이들에게 고액의 출연료를 주고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한 일, 소위 ‘검언유착’ 의혹 사건과 관련해 일방적으로 친여 세력을 옹호하려다 대형 오보를 낸 일 등등 지적받을 일은 한 두 건이 아니다.

오죽했으면 가수 나훈아씨가 KBS가 마련한 대형 공연기획 프로그램에 출연해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날 것”이라는 말로 자정을 촉구했겠는가.

정치적 편향성은 KBS를 둘러싸고 이어져온 오랜 시빗거리다. 이념적 방향성도 없이 그때그때의 정권을 위해 나팔수 역할을 해왔다는 것은 이제 삼척동자라도 다 아는 일이 돼버렸다. 국가나 국민이 아닌, 정권을 호위하는데 몰두한 탓인지 재난주관 방송사로서의 기본 역할조차 망각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비근한 예 중 하나가 재작년의 강원도 대형 산불 사건 특보 지연이었다.

양승동 KBS 사장. [사진 = KBS 제공/연합뉴스]
양승동 KBS 사장. [사진 = KBS 제공/연합뉴스]

KBS의 방만경영도 자주 도마 위에 오르는 소재다. 현재 KBS에는 4700여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는데 이들의 평균연봉은 1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고도 적자 타령을 하고 있으니 이를 납득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심스럽다. 이런 까닭에 다수 시청자들은 자구노력은 없이 내부에서 호사를 누리며 시청자들의 돈을 강제로 거둬들이는 KBS의 행위에 큰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일부 정치인은 이를 두고 ‘약탈’이란 표현까지 쓰고 있다.

이런 판국이다 보니 일각에서는 KBS 자구노력을 자극하기 위해서라도 수신료 자진납부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어떻게 굴어도 어차피 돈이 들어온다면 KBS의 거듭남은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는 게 그런 주장의 논거다. 실제로 심도 있게 검토하고 논의해볼 일이 아닌가 싶다.

현행 제도를 유지한다 할지라도 이 상황에서 수신료를 인상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수신료 인상을 위한 최소한의 명분도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이 그 이유다. 물론 그 명분은 KBS가 스스로 쌓아가야 한다.

그 첫째 과제는 공영방송으로서의 직분에 충실하게 방송활동을 영위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언론사로서 불편부당함을 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지금 같은 다매체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어떤 노력을 펼쳤는지도 냉정히 되돌아 보아야 한다. 이후 진정한 국민의 방송으로 재탄생하기 위한 대안을 마련해 그것을 국민 앞에 제시해야 할 것이다.

수신료 인상은 그런 다음에나 최후의 방책으로 논의해볼 일이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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