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작품이든 신문기사든 모든 창작문은 이념과 완전히 무관해지기 어렵다. 글 속엔 어떤 식으로든 글 쓴 이의 이념적 성향이 내포되기 마련이다. 다만, 노골적인 정도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문학작품을 예로 들면 - 신문기사도 그렇긴 하지만 - 이념이 마치 콘크리트 건축물 속의 철근처럼 잠재돼 있는 것을 최고로 친다. 서툰 작가의 이념 과잉은 필시 문학작품의 품격을 떨어뜨린다. 그런 작품의 이념은 마치 건물 밖으로 흉물스럽게 돌출된 철근과 같다.

건축물의 철근은 드러나지 않은 가운데 건물의 기본틀을 유지해줄 때 그 소임을 일백 퍼센트 다한다고 볼 수 있다. 창작문의 이념 또한 그와 다르지 않다.

말과 행동을 통한 이념 표출도 마찬가지다. 유명 정치인처럼 사회적 영향력이 큰 이들의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들의 언행을 통해 돌출된 이념은 통합과 양립하기 어려운 속성을 지닌다. 특정 이념을 지나치게 내세우며 노골화하다 보면 반드시 강하게 대립하는 세력의 저항을 받게 된다. 이 점이 이념 과잉이나 지나친 이념의 노정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출신 이용수 할머니. [사진 = 연합뉴스]
일본군 위안부 출신 이용수 할머니. [사진 = 연합뉴스]

우리사회의 이념 과잉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심화된 측면이 있다. 이는 정치 과잉과 정확히 연결돼 있다. 정치 과잉 현상은 행정의 정치화를 넘어 사법의 정치화까지 초래하게 됐다. 그 중심에는 폭주기관차 같은 문재인 정권의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이라는 거대 여당이 자리하고 있다.

좌우 어느 쪽이 됐든지 간에 이념 과잉에 확증편향이 더해지면 사회는 위험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확증편향은 자신, 나아가 자기 진영의 생각과 행동이 무조건 옳다는 생각으로 인해 거기에 맞서는 세력은 악으로 단정짓는 우를 범하게 만든다. 현 정부의 정책 입안자들이 이미 당부(當否)가 갈리다시피 한 탈원전 정책이나 수요 억제 중심의 부동산시장 안정화 정책을 여전히 포기하지 않는 것이 그 증거다. 오래 전에 좀비가 돼버린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해 사망선고를 미루고 있는 것도 그릇된 확증편향의 결과가 아닌가 싶다.

정치지도자의 확증편향은 개인의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큰 위험성을 지닌다. 치명적 선택의 오류를 저질렀다 할지라도 범법이 없는 한 정치 지도자야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면 그만이다. 하지만 한때나마 그의 영향력 하에 있던 사회 구성원들은 두고두고 그 후유증에 시달려야 한다. 후유증 해소 역시 그들의 몫이다.

확증편향보다 더 괘씸한 것은 이념장사꾼들의 이념팔이 행위다. 그들은 확증편향과 무관하게 단지 자신의 입신출세를 위해 특정 이념을 이용하는 자들이다. 탈원전을 비롯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여성인권, 세월호 사건, 조국 사건 등등도 어떤 이들에게는 오로지 이념팔이를 위한 수단으로만 기능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 소재를 발판 삼아 정·관계에 들어갔거나 기타 방법으로 빅 마우스가 된 이념장사꾼들은 일쑤 삼권분립이란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작동원리마저 무시한다. 그중 일부는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으되 국민을 대의해 행해야 할 행정부 견제 의무는 내팽개친 채 오로지 권력과 행정부 대변자를 자처하기에 여념이 없다. 남이 나보다 더할세라 충성 경쟁을 벌이는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들에겐 예산심사와 국정감사라는 국회의 기본임무는 안중에도 없다. 그런 유의 ‘문빠’ 의원이 이전 정권의 대통령을 망가뜨린 친박·진박 의원보다 많다. 극성스럽기로 치면 과거의 친박·진박 그룹은 오히려 샌님이라 할 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 정권 당시엔 그들 친박·진박 의원들을 ‘양아치만도 못하다’고 비판하는 등의 내부 목소리라도 늘상 있었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이념팔이를 의심케 하는 행태는 최근 이삼년 내에 나타난 것만 해도 여럿이다. 위안부 출신 할머니로부터 자신들을 이용한 당사자로 지목받은 운미향 의원, 여성운동의 대모로 알려졌으나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으로 부르자고 주장한 남인순 의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활동을 발판으로 관계에 입문했으면서도 공익제보자를 기밀누설죄로 고발하는 문제를 고민하겠다는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의 행태 등등이 대표적 사례들이다.

어디 이뿐인가? 이념팔이 의심 행태는 진작부터 교육계와 연예계를 포함하는 문화계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그들이 보여주는 모순된 행동들은 각자가 이념에 대한 확증편향에 빠진 것이 아닐 가능성을 높여준다. 그들이 진정 골수까지 진보이념에 물들어 있다면 그런 모순된 행동은 나타날 수 없다는 점이 그런 추론을 가능케 한다.

다소 결이 다른 사례인 듯 보이지만 최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스스로 확증편향에 빠져 오류를 저질렀다고 밝혔다. 하지만 과연 그의 확증편향 주장을 그대로 믿어도 좋을지 의문이 든다. 그가 굳이 확증편향을 주장한 배경엔 한동훈 검사장 같은 특정인들에게 준 피해가 의도에 의한 것이 아니었음을 주장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는 듯 보인다. 유 이사장의 과거 발언을 시의성까지 고려한 공작정치 용도의 프로파간다라는 시각에서 보자면 고단수의 수법이라 할 수 있다.

이념장사꾼들의 준동은 이제 심각한 사회악이 돼버렸다. 그 직접적인 원인은 고약하기 짝이 없는 정치권의 진영논리다. 자격도 덕성도 문제 삼지 않고 오직 내편이면 오케이라는 논리가 횡행하다 보니 이념장사꾼의 준동은 날로 심해지고 있다. 이 또한 쌓이고 쌓여 이젠 다음 정권이 대대적으로 청산해야 할 새로운 적폐가 되어가고 있다.

편집인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