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미국에서도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우리나라가 진보정권 재등장 이후 한동안 논란에 휩싸였던 것과 흡사한 모습이 미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원인을 제공한 쪽은 진보 성향의 민주당이다. 조 바이든을 대통령 후보로 앞세워 집권에 성공한 민주당은 현재 의회에 최저임금을 인상하자는 내용의 법안을 제출해둔 상태에 있다.

민주당이 제시한 안은 시급 기준 최저임금을 지금의 7.25달러(약 8095원)에서 4년 뒤 15달러(약 1만6748원)로 인상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15달러 달성의 구체적 목표시점은 2025년 6월이다. 우리나라의 올해 최저임금은 시급 기준으로 8720원이다.

기존의 논란에 한 번 더 불을 댕긴 곳은 미 의회예산국(CBO)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국 언론들에 따르면 CBO는 미국의 시간당 최저임금을 15달러 수준으로 올리면 14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최근 발간했다.

미국 시민들의 최저임금 인상 요구 시위. [사진 = AFP/연합뉴스]
미국 시민들의 최저임금 인상 요구 시위. [사진 = AFP/연합뉴스]

보고서는 시간당 최저임금이 15달러가 되면 1700만 명의 임금이 상승하고, 현재 시급 15달러 이상을 받는 노동자 중 1000만 명 정도도 지금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게 된다고 전망했다. 이에 따라 수익이 빈곤선에도 못 미치는 사람의 수가 90만 명가량 줄어든다고 예상했다. 그러나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주들의 인건비 절감 노력을 자극해 결국 대규모 고용 감소를 초래한다는 것이 CBO의 전망이었다.

CBO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 140만 개의 일자리는 미국 전체 일자리의 0.9%에 해당한다. 미국 인구가 약 3억3000만 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파급효과 면에서 우리나라의 20만여 개 일자리와 맞먹는 규모라 할 수 있다.

지난달 말 미국에서 새로 실업수당을 청구한 이는 약 78만 명이었다. 최소 2주 이상 실업수당을 청구한 이는 약 460만 명에 달했다. 이 수치로 따져 보더라도 140만 개의 일자리 감소는 심각한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악재가 될 수 있다.

CBO 보고서는 또 최저임금 인상이 이뤄진다면 향후 10년 동안 발생할 순임금 증가액이 누적 기준으로 3330억 달러(약 371조8300억 원)에 이를 것이라 내다봤다. 순임금 증가액이란 최저임금 인상의 여파로 일자리가 줄어 임금지급 건수가 줄어드는 것까지를 감안해 추산한 총임금 증가분을 의미한다. 향후 10년간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연방정부 적자 증가액은 540억 달러(약 60조296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보고서는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물가도 덩달아 올라 정부지출이 늘어나고 실직자 증가로 인해 실업수당 지급액도 늘어난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정작 더 큰 부담을 짊어지는 쪽은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부의 재정 부담보다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더 크게 늘어난다는 게 그 이유였다.

CBO 보고서는 최저임금 인상의 부정적 여파가 생산 분야에도 나타나게 될 것이라 전망했다. 전반적으로 생산이 줄어들게 된다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전(全)산업생산이 감소한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 = AF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 = AFP/연합뉴스]

CBO 보고서를 두고 의도적으로 최저임금 인상의 부정적 면을 강조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CBO가 2년 전에도 비슷한 내용의 보고서를 낸 점을 지적하며, 추산치 산출 방식 변경으로 이번에 부정적 효과를 더욱 강조했다는 취지의 비판을 가했다.

미국에서의 최저임금 인상 논란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바이든 행정부가 의회에 제출한 경기 부양책에도 최저임금 15달러 인상안이 담겨 있다. 하지만 야당인 공화당은 이에 적극적인 반대 의사를 표하고 있다.

사실 미국의 시간당 최저임금은 국가의 경제력이나 1인당 국민소득으로 볼 때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1인당 소득이 절반 정도에 불과한 우리와 비교하면 그런 느낌은 더욱 강해진다.

우리보다 1인당 소득이 약간 많은 일본과 비교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지역별로 최저임금에 차등을 두고 있는 일본에서는 도쿄와 같은 A급지 시민일 경우에 한해 시간당 1000엔(약 1만653원)을 갓 넘는 정도의 최저임금을 받고 있다. 전국 평균은 900엔 남짓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미국의 최저임금이 현저히 낮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논란은 당분간 증폭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호된 홍역을 치른 우리에게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란은 보다 객관적이고 생생한 참고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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