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한국은행의 국채 직접 인수 문제가 새로운 논란거리로 부상했다. 논란은 정치권을 넘어 통화 당국으로 비화하고 있다. 통화정책 당국은 여당 주도로 추진되고 있는 국채의 한은 직접 인수에 반대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논란에 불을 지핀 쪽은 여당이다. 청와대와 여당이 재난지원금 추가 지급에 적극성을 보이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민병덕 의원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병 극복을 위한 손실보상 및 상생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발의한 것이 그 시발이었다. 이 법안은 코로나19 방역 과정에서 피해를 본 소상공인들에게 손실의 일부를 보상해줄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국채를 발행한다는 것과 해당 국채를 한은이 인수토록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문제는 이 법안이 효력을 발휘하게 되면, 그 취지와 별개로 국가 재정 지출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법안에 규정된 대로 소상공인들의 손실에 대해 국가가 50~70%를 지원해주려면 월 24조7000억원이 들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법안 발의자인 민병덕 의원이 스스로 추산해 제시한 액수다. 만약 지원 기간이 4개월로 결정된다면 그 규모는 98조8000억원으로 불어난다.

23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답변하고 있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왼쪽). [사진 = 연합뉴스]
23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답변하고 있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왼쪽). [사진 = 연합뉴스]

주지하다시피 현재 우리의 국가 재정은 이미 위험 수위에 근접해 있다. 문재인 정부의 헤픈 씀씀이로 인해 재정적자가 커진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현 정부는 박근혜 정부로부터 660조원 정도의 국가채무를 물려받았으나 3년 수개월 만에 그 규모를 1000조원 가까이로 키웠다. 지금 추세로 보아 1000조원 돌파는 시간문제일 뿐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여당 측에서 기획한 것이 한은의 국채 직접 인수 방안이다. 정부가 재원 마련을 위해 국채를 발행하면 한은이 그 국채를 시장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인수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또 다른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 방안은 결과적으로 ‘정부 부채의 화폐화’ 효과를 가져다준다는 것이 그 배경이다. 다시 말해 이 방안이 실현되면 정부가 사실상 중앙은행의 결정과 무관하게 화폐를 발행하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는 중앙은행 독립성이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

이 점 때문에 현재 한국은행은 국채 직접 인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한은의 입장은 이주열 총재의 국회 답변을 통해 재차 확인됐다. 이 총재는 23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면서 “국채를 한은이 직접 인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한은의 국채 직접 인수가 정부 부채의 화폐화 논란을 일으키는 것은 물론 재정건전성 및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 훼손, 대외 신인도 하락 등의 부정적 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이런 이유들로 인해 다른 주요국들에서는 중앙은행의 국채 직접 인수를 법으로 엄히 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우리의 경우에도 1995년 이후 20년 넘게 한은이 국채를 직접 인수한 전례가 없다고 덧붙였다.

이 총재의 발언대로 미국 등 주요 선진국들의 예로 보자면 정부 발행 국채를 중앙은행이 직접 인수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대신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스스로의 판단 하에 시장을 통해 국공채를 사들이거나 보유 국채를 수시로 매각하고 있다. 중앙은행들은 금리정책과 함께 이런 방법을 병행함으로써 시중 통화량을 효과적으로 조절한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현재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극복하기 위해 금리를 최대한 낮춘 가운데 보유중인 자산(국채 등)의 규모를 늘림으로써 시중 유동성을 늘리는 정책을 쓰고 있다. 최근 증시에서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에 나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런 정책원리와 무관치 않다. 즉, 연준이 국공채 매입 규모를 줄이면 시중 유동성이 덩달아 축소되면서 금리 인상 압박이 커지게 된다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테이퍼링 등을 통한 유동성 조절은 어디까지나 중앙은행의 독립적인 판단 하에 이뤄지는 정상적 과정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중앙은행의 국채 직접 인수와는 차원이 다르다.

현재 여당이 추진 중인 국채의 한은 직접 인수는 여러 가지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를 남용할 경우 정부가 임의로 발권력을 행사하는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자칫 중앙은행의 독립성 보장이라는 원칙이 근본부터 무너질 수도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 원칙이 제대로 지켜질 때라야 중앙은행 본연의 임무인 물가관리와 금융 안정성 강화도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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