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비롯된 3기 신도시 땅투기 의혹이 파장을 키워가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공공개발 정보에 배타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공기업 직원들이 그 정보를 이용해 사익을 취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비슷한 행위가 정보 접근권을 가진 공직자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행해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이번 사안이 일반적 부동산 투기와 다르게 인식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일반 시민의 공분이 전에 없이 크게 분출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민심을 성나게 하는 이유는 이뿐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취임 이후 줄기차게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벌여왔다. 서슬 퍼런 ‘적폐청산’ 구호 아래 25번이나 부동산 시장 안정화 대책을 쏟아냈다는 사실만 보아도 그 기세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대책을 쏟아내는 과정에서 숱한 법률 개정이 일방통행 식으로 이뤄졌고, 그로 인해 적지 않은 부작용이 나타났다. 정제되지 못한 정책 추진으로 인해 나타난 부작용의 불씨는 엉뚱하게 서민들에게까지 튀었다. 그 연장선에서 ‘벼락거지’라는 신조어가 나타나기도 했다. 집값이 폭등하는 바람에 무주택자들이 졸지에 집 살 능력을 상실한 거지 신세가 됐다는 의미에서 탄생한 말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불거져 나온 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땅투기 소식은 불난 집에 해대는 부채질이 되고 말았다. 들불처럼 번진 일반 시민들의 공분에 비하면 개발 예정지 주민들의 분노는 오히려 작다고 할 수 있다. 범시민적 공분은 공공개발 정책의 기반을 송두리째 흔드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번 사안은 그 자체로서 유례없는 엄중함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LH발 땅투기는 해당 사건 이상의 엄중함을 드러내주는 계기가 되어주고 있기도 하다. 공공기관 직원들의 땅투기를 능가하는 엄중함이란 곧 현 정부의 사건을 대하는 안일한 자세다.

이번 사건이 불거진 이후 문재인 정부가 보여준 대응은 한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사태를 해결할 능력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점은 해결 의지 자체가 없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참여연대 등의 폭로 이후 정부는 처음부터 사태를 봉합하는데 치중하려는 듯한 모습을 내보였다. 참여연대 등이 감사원 감사 의뢰를 제의했지만 그 의견을 묵살한 것부터가 그랬다. 검찰에 수사를 맡겨야 한다는 전문가 의견이 언론 등을 통해 쏟아져 나왔으나 마이동풍이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었다. 사흘에 걸쳐 조금씩 강도를 높여가는 대(對)정부 지시를 내놓았을 만큼 안일한 초동대처 자세를 드러냈다. 사태의 심각성을 미리 헤아리지 못했다면 무능하다는 비판을, 알고도 그랬다면 사태를 적당히 봉합하려 했다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숱한 ‘셀프 조사’ 비판에도 불구하고 국토교통부를 조사 주체로 삼은 것을 보면 후자 쪽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LH 직원들의 땅투기가 이뤄진 시흥시 과림동 현장. [사진 = 연합뉴스]
LH 직원들의 땅투기 논란이 빚어진 시흥시 과림동 현장. [사진 = 연합뉴스]

더욱 고약스러운 점은 예의 ‘남탓’과 ‘프레임 짜기’가 또 시작됐다는 사실이다. 여기엔 신도시 땅투기 사건을 박근혜 정부 때부터 있었던 적폐로 규정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 실제로 정부 합동조사단은 문 대통령이 이번 사태를 두고 ‘뿌리 깊은 부패 구조에 기인한 것’일 가능성을 거론하자 곧바로 조사 기간을 2013년 12월까지로 확대했다. 박근혜 정부 때부터 면밀히 들여다보아 꼬투리가 잡히면 신도시 땅투기를 구조적 문제로 치부하면서, 여기에 적폐 딱지를 붙이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행태다.

박범계 법무장관도 비슷한 맥락의 발언을 했다. 그는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를 통해 3기 신도시 관련 투기가 2~3년 전부터 있었는데 그때 검찰은 무엇을 했는가라고 질타하는 듯한 말을 했다. 정부의 황당하기 짝이 없는 행태에 이은 뜬금없는 발언이라 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 임기 중엔 신도시 개발이 시도조차 되지 않았고, 3기 신도시 1차 발표가 2018년 12월 있었던 점 등을 감안하면 적폐 프레임은 어불성설이다. 오히려 부동산 투기를 그토록 죄악시해온 현 정부가 지난 2~3년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스스로 답해야 할 일이다.

이번 LH발 땅투기 사건의 본질은 3기 신도시 개발 과정에서 드러난 정부의 관리능력 및 책임의식 부재다. 실상의 일부가 폭로된 이후엔 무능에 더해 해결 의지조차 없다는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났다고 보는 게 옳을 듯하다. 최소한 문제 해결 의지라도 살아있다면 지금 당장 검찰이나 감사원에 이 사건을 맡기는 게 온당한 처사일 것이다. 3기 신도시 땅투기 사건이 검·경 수사권 조정에 의해 제한된 검찰 몫의 6대 중대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럴싸한 핑계일 뿐이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