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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우리 생각엔…] 조세법률주의 흔드는 멋대로 공시가격
[Editorial-우리 생각엔…] 조세법률주의 흔드는 멋대로 공시가격
  • 박해옥
  • 승인 2021.03.19 11: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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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폭등할 것으로 예고되자 집 가진 사람들의 불만이 끓어오르고 있다. 갑자기 오르는 공시가격은 세금폭탄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세금폭탄에 대한 불만은 부자들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라면 집값의 고하를 막론하고 급격히 늘어나는 세 부담을 감당해야 한다.

정부 집계에 따르면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작년에 비해 평균 19.08% 인상된다. 정부는 현재 개별 공동주택에 대한 공시가격안을 열람토록 하고 있다.

올해 공시가격 인상률은 참여정부 시절이던 2007년의 22.7% 인상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세종시의 경우 인상률이 7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공시가격 폭등의 주원인은 ‘미친 집값’이다. 정부의 잘못된 부동산 정책으로 아파트 등의 매매가가 수직상승한 것이 화근이었다. 여기에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에 의한 시세 대비 비율 상승도 한몫을 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집 가진 사람들은 당장 올해분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납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집값이 올랐다지만 실현된 이익은 없어서이다. 그렇다고 해서 소득이 늘어난 것도 아닌데 세금만 폭등하니 불만이 터져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특히 빚을 내 새로 유주택자 대열에 합류한 사람의 경우 원리금 상환하랴 급증한 재산세 내랴 허리가 휘어지는 고통을 감내해야 할 판이다.

본인 희망과 무관하게 공시가 9억을 넘긴 1주택자라면 고통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은 재산세 폭탄에 이어 종합부동산세(종부세) 폭탄까지 견뎌내야 한다. 내 집 가진 게 죄가 되어버린,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이다.

재산세든 종부세든 주택 보유세는 속성상 소득세보다 큰 불만을 야기할 여지를 안고 있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라는 과세의 원칙에 부합하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는 점이 그 이유다. 미실현 이득이라는 점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주택 보유세는 부채 자산에 대해서까지 무자비하게 매겨진다는 점에서 불만을 잉태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공시가격이 매년 올라가게 설계돼 있다는 점이다. 현 정부의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에 따르면 공동주택은 2030년까지, 단독주택은 2035년까지 시세 대비 공시가 비율이 90%를 달성하게 된다. 지난해 기준 현실화율은 공동주택 69.0%, 단독주택 53.6%였다. 이것만 보아도 향후 10~15년 동안 주택 보유세가 얼마나 가파르게 올라갈지 짐작할 수 있다. 현실화란 미명 하에 진행되는 일이지만 실상으로 따지자면 가렴주구에 다름 아니다.

공시가격 현실화는 그럴듯한 이름과 달리 큰 위험성을 안고 있다. 가장 큰 위험성은 집값이 폭락할 때 나타날 부작용이다. 이럴 경우 과세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이 집값보다 높은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 더구나 공시가격은 의료보험료나 기초연금 등과도 줄줄이 연결돼 있다. 이 역시 시세 대비 공시가 비율을 함부로 올려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집값 급등에도 불구하고 과세 기준점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일례로 집값과 공시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었는데도 1주택자 종부세 부과 기준인 9억원은 12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이러니 문재인 정부가 집값 상승으로 인한 증세를 내심 즐기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나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공시가격 관련 문제 제기를 소수 고가 주택 보유자들의 푸념 정도로 여기는 듯 보인다. 정부는 전체 주택의 92%가 공시가 6억 이하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6억원 이하 1주택자라면 재산세율이 구간별로 0.05%포인트 인하돼 세 부담이 감소한다는 것이 정부의 주장이다. 1주택자 종부세 부과 기준이 공시가 9억 이상이라는 점도 정부가 강조하는 내용 중 하나다.

실제로 전국 공동주택 중 9억 초과 주택이 차지하는 비율은 3.69%에 불과하다. 편가르기에 의한 지지기반 확보라는 차원에서 보자면 이들에 대한 가혹한 과세는 집권세력에겐 정치적으로 이익이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9억 초과 아파트가 1년 새 47%, 문재인 정권 출범 당시에 비해서는 4배 이상 증가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빚을 내 1주택자가 된 웬만한 서민·중산층도 언제든 종부세 부과 대상이 될 수 있는 엉뚱한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정부가 국회 견제 없이 공시가격을 멋대로 올리며 1주택자에게까지 세금 폭탄을 날린다는 데 있다. 부동산 공시법에 근거한 행정이라곤 하지만, 지금처럼 정부 의도만으로 가혹한 세정(稅政)을 펼치는 것은 조세법률주의에 어긋날 수 있다. 현 정부의 과세 행태는 도를 넘어도 한참 넘어섰다. 정부 스스로 제어하지 못한다면 국회가 입법권을 행사해서라도 제동을 걸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