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일본 정부가 지난 13일 후쿠시마 원전에서 나오는 오염수를 2년 뒤부터 바다로 방류하기로 했다. 이 일로 해양 오염에 대한 우려가 갑자기 커졌다. 특히 일본의 인접국인 우리와 중국은 당혹감과 긴장감을 드러내며 일본 정부의 결정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하지만 일본은 인접국들의 비판과 자제 요청에도 불구하고 원전 오염수의 해양 방류를 밀어붙일 태세를 드러내고 있다. 일본이 자세를 바꾸지 않는 한 오염수 방류를 막을 방법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가장 효과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이 외교적 해결이지만 그 가능성은 더더욱 낮아 보인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 사안에 대한 입장 대립이 워낙 첨예한데다 일본과 인접국들 간의 외교 관계가 그리 원만하다고 할 수 없다는 점 등이 그 배경이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모아든 탱크들. [사진 = 교도/연합뉴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모아든 탱크들. [사진 = 교도/연합뉴스]

사태를 더욱 꼬이게 하는 요인들도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 요인은 한국과 중국 외엔 오염수 방류에 큰 관심을 표명하는 나라가 거의 없다는 점,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일본의 결정을 지지하고 나선 점 등이다. 특히 미국과 IAEA의 일본 지지는 국제사회의 반발 여론을 잠재우는 역할까지 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13일 일본 정부가 ‘처리수 처분에 관한 기본방침’을 각의에서 결정하자 미국은 국무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일본의 결정이 투명했고, 국제적으로 수용된 핵 안전기준에 의한 접근법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사실상 일본 정부의 결정을 지지한 셈이다. 미국이 ‘오염수’란 말 대신 일본식 표현인 ‘처리수’(Treated Water)를 그대로 사용한 점도 미국의 속내를 뒷받침해주었다.

IAEA의 일본 지지는 더 적극적이고 구체적이었다.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은 일본 정부의 오염수 방류 결정 당일 “일본이 선택한 방법은 기술적으로 실현가능하고 국제 관행에 따른 것”이라며 “일본의 처리 방안 결정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그는 제어된 물의 해양 방류는 원자력 발전소 운영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상적 방법이라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그 역시 이 사안을 거론하면서 오염수란 말 대신 ‘처리수’ 또는 ‘제어된 물’(Controlled Water)이란 표현을 썼다.

심지어 “일본 정부의 결정은 후쿠시마 제1원전 폐로에 있어 지속적인 진행을 위한 기반을 닦는 데 도움이 될 이정표(milestone)”란 평가까지 내놓았다. 이는 원전의 폐로가 아직 기술적으로 완성된 작업이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둔 표현인 것으로 분석된다. 듣기에 따라 이번 사례를 통해 원전 폐로의 새로운 역사가 쓰이길 기대한다는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는 발언이었다.

IAEA의 이 같은 입장 표명은 일본이 이 기구의 3대 후원국이란 사실과 연관된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은 지난해 기준 IAEA 예산 분담률 순위에서 미국(25%), 중국(11.6%) 다음을 차지하고 있다. 일본의 분담률은 8.2%다. 한국(2.2%)의 네 배 수준이다.

게다가 IAEA는 핵 사용 자제가 아니라 핵의 평화적 사용을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구다. 핵연료 사용 및 처리 문제 등에 있어서 환경단체들과는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는 기구다.

일본은 각의 결정을 통해 125만여t의 원전 오염수를 2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30~40년 동안 바다에 방류하기로 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지금까지 원자로를 식히는데 사용한 바닷물과 원자로 안으로 스며든 지하수 등 방사능 오염수를 희석시킨 뒤 차례로 바다로 흘려보내겠다는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에서는 지금도 매일 140t가량의 오염수가 발생하고 있다. 그런 탓에 오염수를 용기에 보관하는데 한계를 느낀다는 것이 일본 측 주장이다.

일본은 오염수를 자국 규제 기준의 40분의 1 수준인 리터당 1500베크렐 미만으로 희석해 방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정도면 해양을 오염시키지 않는 수준이라는 게 일본의 주장이다. 일본은 또 준비 기간과 방류 기간 동안 IAEA와 협력하면서 방사능이 바다 생태계와 인체에 미치는 영향 등을 모니터링하겠다고 강조했다.

일본 시민단체 회원들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반대 시위 모습. [사진 = 교도/연합뉴스]
일본 시민단체 회원들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반대 시위 모습. [사진 = 교도/연합뉴스]

일본과 미국, 그리고 IAEA 입장을 종합하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는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전문가들 중에도 이런 입장에 동조하는 이들이 상당수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 역시 월성 원전 등에서 나오는 냉각수를 희석시켜 방류하고 있고, 그런 행위가 세계적 관행이란 설명도 새삼스레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전문가들 다수는 월성 원전 냉각수는 리터당 베크렐 수준이나 양적 측면에서 후쿠시마 케이스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월성 원전 방류수의 농도는 13베크렐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후쿠시마 경우처럼 사고 원전에서 나오는 오염수를 일상적인 원전 운영 과정에서 나오는 오염수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 말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일본의 오염수 방류와 관련해 전문가들이 크게 우려하는 것 중 또 하나는 삼중수소 문제다. 삼중수소는 방사성 동위원소의 하나로 반감기가 12년 남짓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일본이 오염수를 방류하기 전 정화 과정을 거치면 여러 핵종이 제거되겠지만 삼중수소는 그렇지 않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로 인해 오염수가 바다에 방류되면 해양 먹이사슬에 의해 인간에게까지 방사능 피해가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명예교수는 이 같은 우려와 삼중수소 반감기 등을 감안할 때 저장 용량을 늘리거나 인공호수를 파는 등의 방법으로라도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지상에 저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일본이 취해온 오염수 자연 증발 방식을 지속해야 한다는 얘기다.

해양 오염 전망에 대한 진위가 어떠하든 우리에겐 이 문제가 발등의 불이 됐다. 하지만 정부는 이렇다 할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일단 유감을 표하고 일본 대사를 초치해 항의도 하고 있지만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정부 스스로도 오염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2년여 전부터 범정부 태스크 포스를 운영해오고 있지만 방류 결정은 일본의 주권사항이란 점 때문에 구체적 행동을 취하지는 못했다. 여러 정황을 감안, 정부는 환경단체나 국제기구 등과의 공조를 통해 국제여론을 환기시키는 동시에 방류 과정이 투명하게, 국제 기준에 맞게 이뤄지는지를 검증하는 방안을 강구해나가기로 했다.

또 해양 오염실태에 대한 조사를 강화하고 수입식품에 대한 방사능 오염도 검사, 수산물 원산지 확인 등을 더욱 철저히 하기로 했다. 만약 오염 사실이 밝혀지고 우리 측 피해가 확인되면 그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면서 보상도 요구하기로 했다.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