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오는 9월부터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상당수가 폐쇄될 가능성이 커졌다. 정부가 은행을 통해 가상화폐 거래소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할 의지를 드러낸 것이 원인이다. 현재 국내에는 100여개의 가상화폐 거래소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에 대한 대대적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의지인 듯 보인다.

정부가 택한 방법은 은행을 통한 실명거래 계좌 발급 제한이다. 은행이 가상화폐 거래소들로부터 입출금 계좌 발급을 신청받으면 이를 엄격히 심사해 계좌 발급 여부를 결정토록 한 것이다. 이때 은행은 해당 거래소의 운영에 대한 종합평가를 실시해야 한다. 위험도와 안전성, 사업모델 등 각종 항목에 대한 심사에서 부족함이 드러나면 은행은 계좌 발급을 거부할 수 있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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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개정된 특정금융거래정보법(특금법)에 따른 것이다. 개정된 특금법 및 동법 시행령은 가상화폐 거래소들에 대해서도 자금세탁 방지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특금법은 6개월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오는 9월 24일 이후부터 실제 효력을 발한다.

이때부터는 은행에서 실명 입출금 계좌를 확보하지 못한 거래소는 가상화폐 현금 거래를 할 수 없다. 현재 은행 실명거래 계좌를 갖고 있는 거래소들도 다시 평가를 거쳐 계좌를 재발급받아야 한다. 현재 신한과 케이뱅크, NH농협 등 은행으로부터 실명거래 계좌를 확보하고 있는 거래소는 빗썸과 업비트, 코인원, 코빗 네 군데뿐이다.

은행 관계자들은 향후 은행들의 평가가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기존의 계좌확보 거래소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전망한다. 은행들이 보다 깐깐한 심사를 예고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 직접적 원인은 은행들이 받는 압박감이다. 실제로 정부는 법 개정을 통해 은행들로 하여금 가상화폐 거래소들을 통제하려는 의지를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통제를 게을리 해 거래소에서 불법·탈법 행위가 발생할 경우 은행에 책임을 물으려 한다는 것으로 읽힐 여지가 있다. 다수 금융사들이 이미 라임사태 등으로 홍역을 치른 마당이라 이번 조치로 인해 은행들이 느끼는 압박감은 상당히 큰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 발생시 은행이 보상 책임까지 떠안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작지 않다는 것이다.

더구나 정부는 최근 가상화폐 투자 열기가 달아오르자 지난 18일 가상화폐를 이용한 자금세탁과 사기 등 불법행위를 특별히 단속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거래소에 섣불리 실명거래 계좌를 터주었다간 관리부실의 책임을 뒤집어쓸 수도 있다.

은행들이 심사 강화를 벼르고 있지만 가상화폐 거래소들의 내부 통제 시스템은 그리 만족스럽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계좌 발급 신청시 제시되는 내용들을 보면 대개는 평가를 진행하기도 어려울 만큼 부실하다는 게 은행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따라서 오는 9월 이후 은행으로부터 실명거래 계좌를 확보하는 거래소는 10개 이내에 그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정부의 이번 조치는 거래소 난립을 해소함으로써 가상화폐 거래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려는 목적에서 취해진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국내에서는 가상화폐 투자붐이 일면서 하루 거래 규모가 주식거래 액수를 능가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그런 가운데 가상화폐를 이용한 자금세탁과 사기 등 불법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증대됐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하지만 정부가 직접 나서서 가상화폐 거래를 금지하는 것은 논란을 낳기 십상이다. 외국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류 자본주의 사회의 경우 정부가 직접 개입해 거래소를 폐지하는 등의 방식은 취하지 않고 있다. 이번 정부 조치도 그 점을 감안해 취해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8년 박상기 당시 법무장관이 가상화폐 거래소 폐지 방안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여당 내부에서조차 반대 의견이 나오는 등 역풍을 맞아 유야무야됐다. 당시 박 장관의 발언은 가상화폐 시장에 한동안 혼란만 안겨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정부가 이번 조치를 통해 노리는 것은 가상화폐 거래소에 대한 구조조정이라 할 수 있다. 일단 거래소 수를 줄여 그것들을 통제 가능한 범위 안에 둔 다음 가상화폐 거래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불법행위들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가상화폐 거래소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지는 사태를 맞았다고 할 수 있다. 일단은 실명거래 계좌를 확보하기 위해 백방으로 움직일 것이 확실시된다. 동시에 내부통제 시스템을 새롭게 다지는 작업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조치가 긍정적 효과만 가져다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에 따른 혼란 역시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우려되는 것이 암호화폐 등 가상자산의 해외 유출이다. 이 같은 우려는 3년여 전 정부가 가상화폐 거래소 폐지 움직임을 보였을 때도 대두됐었다. 계좌발급 조건 강화로 거래소가 대거 실명거래 계좌를 갖지 못할 경우 거래소 회원들은 원화와 가상화폐 거래는 할 수 없지만 이전처럼 송금은 할 수 있다. 다른 거래소의 지갑으로 가상화폐를 보낼 수 있다는 의미다.

개인 대 개인의 장외 거래가 활발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역시 염두에 두고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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