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백신 스와프가 정가의 주요 의제로 떠올랐다. 국민들 또한 이 의제에 각별한 관심을 쏟고 있다. 실현만 된다면 조만간 집합제한과 마스크 착용 의무에서 해방돼 신천지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각자의 마음속에 배어 있기도 하다.

흔히 말해지듯, 오늘날 세계는 백신 있는 나라와 없는 나라, 마스크를 벗은 나라와 쓴 나라로 구분된다. 국내 매체들은 영국과 이스라엘 등 코로나19 집단면역 초기 단계에 들어선 나라의 국민들이 마스크를 벗은 채 한 곳에 모여 유쾌하게 떠드는 모습 등을 연일 소개하고 있다. 1년 넘게 마스크를 쓴 채 답답함을 견뎌내고 있는 우리 국민들에겐 신천지의 환상적 모습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마스크 없는 세상을 구현하는 나라가 하나 둘 늘어날수록 우리 국민들이 느끼는 부러움은 불만과 분노, 짜증 등으로 치환될 게 뻔하다. 마스코 속 입냄새와 뜨거운 입김이 더욱 강렬해지는 여름이 다가오면서 그런 감정은 이미 폭발 직전에 이르러 있다. 2년째 그런 여름을 맞아야 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이런 가운데 나온 아이디어가 국민의힘 박진 의원이 제안한 미국과의 백신 스와프다. 요지는 우리가 상응하는 대가를 미국에 지불하고, 대신 코로나19 백신을 받아오자는 것이다.

마침 우리에겐 스와프 거래를 가능케 할 만한 수단이 마련돼 있다. 반도체가 그것이다. 반도체는 현 시점에서 미국이 가장 아쉬움을 느끼는 공산품이다. 반면 우리는 백신 부족으로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러니 두 나라가 각자의 결핍을 보완해주는 방식의 스와프 거래를 통해 윈-윈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박 의원의 생각이다.

백신 스와프는 성공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할 만한 아이디어다. 그래서인지 이 사안에 대해서는 정부와 여당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누가 뭐래도 백신 최강국이다. 가장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는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 생산 업체를 보유하고 있어서이다. 미국은 논란 많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아직 공식 승인하지 않고 있다. 백신 물량 확보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다. 실제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21일(현지시각)을 기해 미국민 2억회 백신 접종을 자축하는 의미의 기자회견까지 진행했다. ‘취임 100일 이내 2억회 접종’ 목표를 8일 앞서 달성한 점을 부각시키기 위한 제스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자국민들에게 3회 접종(부스트 샷)을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하느라 여전히 백신 확보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백신 빈국 입장에서 보자면 야속한 일이지만 이게 국제사회의 냉혹한 현실이다.

미국이 우리를 보는 시선도 그리 우호적이진 않은 듯하다. 캐나다, 멕시코 같은 인접국과 반중(反中)연합협력체인 쿼드 가입국들을 먼저 챙기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미국과 쿼드를 구성하고 있는 국가는 일본, 인도, 호주 3개국이다. 남는 백신을 주더라도 그들 국가를 먼저 배려하겠다는 것이 미국의 의도다. 나눠주겠다는 백신도 자신들은 쓰지 않는 아스트라제네카로 제한하고 있다. 안전한 다량의 백신을 원하는 우리 앞에 첩첩이 난관이 놓여 있는 형국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에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시사점은 앞서 기술한대로 미국이 심각한 반도체 결핍증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다. 반도체에 대한 미국의 집착은 얼마 전 바이든 대통령이 참석한 백악관 주재 반도체대책 화상회의를 통해 그대로 드러났다. 이 자리를 빌려 바이든 대통령은 삼성전자 등을 향해 미국 내 반도체 관련 시설투자 증대를 압박했다.

마스크 없이 쇼핑센터에 몰려든 이스라엘 사람들. [사진 = AP/연합뉴스]
마스크 없이 쇼핑센터에 몰려든 이스라엘 사람들. [사진 = AP/연합뉴스]

미국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한국과 반도체 동맹을 맺어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맞서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세계 굴지의 반도체 생산업체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 그 배경이다.

반도체 동맹과 관련한 미국의 요구는 우리를 선택의 기로에 서게 만들고 있다. 우리로서는 좋든 싫든 딜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입장이 그렇다면 현 상황을 최대한 지혜롭게 헤쳐나가는 데 치중해야 한다. 반도체 분야에서 일정 정도 양보를 하면서 또 하나의 ‘편자의 못’이 돼버린 코로나19 백신을 미국으로부터 얻어내도록 하자는 것이다. 내친 김에 안전성이 입증된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의 다량 확보를 시도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딜의 성공을 위해 우리 정부와 삼성전자가 각각 미국 행정부와 백신 제조사들을 카운터파트로 삼아 투트랙으로 빅딜을 시도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마침 한·미 정상회담이란 호기까지 우리 앞에 열려 있다. 이 방책을 채택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하나 있긴 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사면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 1월 ‘국정농단’ 재판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2017년 구속기소된 이후 지금까지 감옥을 드나들며 1년 3개월을 복역했으니 형기가 절반 정도 남았다. 지은 죄에 비추어 곤욕을 치를 만큼 치렀다고 볼 여지도 있다.

이 부회장 사면 목소리는 재계를 넘어 여야 정치권에서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법적 논란이 일부 있지만 남은 것은 사실상 대통령의 결단인 듯 보인다.

지금 전세계 국가들은 저마다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이 싸움판을 먼저 정리하는 소수 국가들만이 코로나19 이후 시대의 새로운 강자로 행세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 전망이다. 이재용 부회장 사면은 지금 우리가 쓸 수 있는 최상의 카드다. 적폐 청산이란 뜬구름 같은 명분에 사로잡혀 적기에 이 카드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세계가 웃을 일이다. 대통령의 조속한 결단이 있기를 기대한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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