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오래 전 이 난에서 상대적 평등이란 주제를 논한 바 있다. 모든 법적 평등은 기계적·절대적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 논설의 골자였다. 상대적 평등을 규정한 법률 중 대표적인 것으로 병역법을 꼽았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 병역법은 남성에 한해 병역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평등의 원칙 위배라 주장하는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적어도 올해 4·7재보궐선거가 있기 전까지는 그랬던 것 같다. 특히 기성세대들 마음속엔 남성만의 병역 이행이 당연시되는 분위기가 굳건히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여당의 재보선 참패가 확인된 지금 여성 징집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로 부상했다. 갑자기 민심이 변해서일까? 그런 건 아닌 듯하다. 남성들, 그 중에서도 ‘이대남’으로 불리는 20대 남성들의 잠재돼 있던 불만이 4·7재보선을 계기 삼아 일거에 분출된 결과가 아닌가 싶다.

대한민국 남녀 국군 장교들의 모습. [사진 = 연합]
대한민국 남녀 국군 장교들. [사진 = 연합뉴스]

이대남의 불만은 청와대 청원게시판을 통해 구체화됐다. 여성들도 남성들과 동등하게 병역의무를 지도록 우리 사회의 법제를 바꾸자는 게 청원의 취지다. 때마침 이대남의 표심 이탈에 전전긍긍하던 여당에서는 그들의 환심을 사려는 법안이 줄지어 발의됐다. 병역의무를 남녀가 나누어 짊어지자거나 병역필 남성에게 상응하는 메리트를 주자는 것 등등이 주내용이다.

여러 제안 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은 여성 징집이다. 그간 우리사회에서는 병역을 마친 남성들에게 취업시 군 가산점을 줄지 말지, 군 복무기간을 경력으로 인정할지 말지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져왔다. 논란은 대체로 이 선을 넘지 않았다. 치열한 논란의 와중에도 여성 징집 주장은 부각되지 않았다. 거론하는 것 자체가 남성다움과 거리가 있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보니 여성 징집론은 자연스레 성역에 갇힌 주제가 되고 말았다.

그 같은 집단인식의 기저엔 남성 중심주의 또는 마초이즘이 자리하고 있었던 같다. 어릴 때부터 집안의 대들보니 기둥이니 하는 말을 들으면서 자란 세대의 남성들에게 여성 징집은 입에 올리기조차 민망하고 남우세스러운 일이었다.

남성만의 병역의무 이행을 당연시하기로 치면 남성 페미니스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에게 여성 징집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머리띠 두르고 나갈 만큼 어림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심리 기저에도 마초이즘이 면면히 흐르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신사도나 기사도라는 이름 아래 ‘레이디 퍼스트’를 실천하는 남성 페미니스트들에게 여성은 보호해야 할 나약한 존재였을 뿐이다.

여성에 대한 맹목적 호감이 페미니즘으로 둔갑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던 듯하다. 그런 성향의 남성 페미니스트가 조직 내에서 상사로서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방식은 많은 사람들의 거부감을 부르곤 했다. 여성들에게 야근을 빼준다든가, 먼저 퇴근하도록 특별조치를 한다든가 등등의 행동이 그에 해당한다. 그런 남성들일수록 여성에게는 좀체로 중책을 맡기려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그런 사람들은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진정한 페미니스트는 과정의 공정성을 중시하는 사람이다. 얼치기 페미니스트가 주도하는 조직에서 여성은 그저 보조적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마초든 페미니스트든 기성세대 남성들에게는 자신들이 여성보다 유리한 입지에 있다는 자각이 있었다. 취업이나 진급 등에서 여성들보다 앞서가는 것을 당연시했다. 따라서 징집에 의한 국방의 임무쯤은 남성들의 당연한 몫으로 여길 수 있었다.

북한 여군들. [사진 = 연합뉴스]
북한 여군들. [사진 = 연합뉴스]

그런데 상황이 변했다. 지금의 2030 세대 남성 중 다수는 자신들이 역차별당하고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이런 인식을 지닌 젊은 남성들에게 아직도 유리천장이 곳곳에 남아있다는 주장은 먹혀들 여지가 없다.

실제로 오늘날의 2030 남성들은 또래 여성들과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성세대 시각으로 만들어진 각종 제도와 규범의 틀에 갇혀있는 게 사실이다. 지금도 타의에 의해 군대에 가야 하지만 군경력을 100% 인정받기 어렵고, 제대 후엔 몇 년간 예비군 훈련까지 치러내야 한다. 군 복무 기간만큼 직장생활이 짧아지다 보니 은퇴 후 연금 수입에서도 상대적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징병 대상에서 여성을 제외하는 것이 과연 논리적인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 의문은 여성 부사관 및 장교의 증가와 함께 파장을 키워가고 있다. 여성의 경우 부사관과 장교 복무만 가능하고 사병 복무는 안 된다는 것은 비논리적이란 생각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의문은 ‘여성 간호장교는 있는데 여성 군의관은 왜 없는가’라는 데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이를 토대로 남성 의사만 18개월도 아닌 38개월 간 군의관으로 복무해야 하는 것이 과연 논리적인지를 따져볼 필요도 있다.

중요한 점은 이대남들의 이유 있는 인식 변화다. 그들 다수는 여성 할당제가 곳곳에서 도입되는 가운데 남성 징병제가 유지되는 것을 과정의 불공정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런 감정을 무작정 젠더 갈등의 산물로 단정한다면 그건 너무도 단세포적이고 안이한 현실 인식이다. 젠더 갈등은 방향성과 상관없이 성차별에 대한 불만이 쌓이고 쌓인 뒤에 나타나는 결과물일 뿐이다. 징집 관련 갈등은 복무 여부에 따라 남자들 사이에서도 나타나고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지금 이대남 등 젊은 남성들이 갖는 반(反)페미니즘은 향후 나타날 수도 있는 젠더 갈등의 한 원인이 될 수 있을 따름이다. 오늘날의 젊은 남성들은 단지 현행 징병제가 과정의 공정성을 담보하고 있는지를 묻고 있을 뿐이다. 그들의 진지한 질문에 이젠 기성세대들이, 사회가 합당한 답을 내놓아야 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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