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인플레이션 도래 가능성은 정말 없는 걸까? 이 같은 물음에 보다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상황이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다. 물가가 심상찮은 상승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 그 배경이다. 특히 체감물가 상승률이 높다는 점이 경제주체들의 심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4일 통계청이 발표한 4월 소비자물가 동향은 물가 상승 기류가 예사롭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07.39(2015년을 100으로 삼아 산출)를 기록했다. 지수는 전년 동기에 비해 2.3% 상승했다. 이는 2017년 3월의 2.5%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국내 소비자물가는 2018년 2.0% 상승률을 기록한 이래 안정세를 보여왔다. 내리 1% 미만의 상승률을 보이다가 지난해 5월엔 0.3% 하락하는 모습을 나타내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일각에선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제기됐었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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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올해 들어 물가 흐름은 뚜렷이 상승 기류를 타기 시작했다. 지난해 연간 상승률 0.5%를 기록한 소비자물가는 올해 1~3월 차례로 0.6%, 1.1%, 1.5% 오름세를 보였다. 그러더니 지난달엔 상승률이 2%대로 올라섰다. 해가 바뀐 뒤 상승세가 점차 가팔라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상품과 서비스 물가 중 더 많이 상승한 쪽은 상품이었다. 상품 가격의 전년 동기 대비 상승률은 3.7%에 달했다. 장바구니 물가를 구성하는 농축수산물 가격이 13.1%나 상승한 것이 주원인이었다. 농축수산물은 지난 1월 10.0% 상승률을 기록한 이후 두자릿수 상승 행진을 이어왔다.

특히 많이 오른 것은 농산물 가격이었다. 농산물 가격은 1년 전에 비해 17.9%나 올랐다. 사과는 51.1%, 고춧가루는 35.3%, 쌀은 13.2% 상승했다. 파값은 농산물 중에서도 기록적인 상승률을 보였다. 지난 3월 305.8%까지 치솟았던 파값은 지난달 270.0% 상승률을 기록했다.

축산물 상승률(11.3%)도 두드러졌다. 그 중에서도 매일 밥상에 오르는 달걀이 산란계 부족의 여파로 인해 36.9% 상승률을 나타냈다.

공업제품 가격은 2.3% 상승했다. 국제유가 상승의 영향을 크게 받은 탓이다. 지난달 석유류 가격 상승률은 13.4%로 집계됐다. 휘발유가 13.9%, 경유는 15.2%의 상승률을 보였다. 그러나 전기와 수도·가스는 오히려 4.9% 하락했다.

서비스 물가는 1년 전보다 1.3% 올라갔다. 개인서비스는 2.2% 상승했다. 이중 외식물가는 1.9% 상승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외식물가 상승률은 2019년 6월(1.9%)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무상교육 확대 등의 영향으로 공공서비스는 1.0% 하락을 기록했다. 집세는 1년 사이 1.2% 올랐다. 2017년(1.2%) 이후 최고 상승폭이다. 전세는 2018년 1.7% 이후 가장 높은 1.6% 상승률을 기록했다. 월세 상승률은 6년 반 만에 최고치인 0.7%였다.

1년 전에 비해 생활물가지수는 2.8%, 신선식품지수는 14.6% 상승했다.

소비자 물가의 2%대 상승은 한국은행의 물가안정목표(2%)를 넘어섰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특히 경기 회복의 온기가 소비자들에게 전달되기도 전에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는 바람에 소비자들이 느끼는 고통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일부 전문가는 인플레이션 압력이 증대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인플레 압력 강화는 장기간에 걸쳐 확장적 재정 운용을 이어가다 보면 자연스레 나타날 수 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장기화로 나타난 세계적 현상이기도 하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러나 정부 당국은 최근의 물가 상승이 일시적 현상이란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국제유가 상승이 석유류와 공업제품 가격을 줄줄이 밀어올렸고, 조류 인플루엔자 여파로 농축수산물 가격까지 4개월 연속 두 자릿수 상승률을 보인 것이 최근 물가 상승 흐름을 가파르게 했다는 것이다.

4월 소비자물가의 비교시점이 코로나19 영향을 크게 받았던 지난 2분기였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엔 기저효과가 상당 부분 작용했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 이억원 기획재정부 1차관은 “3분기부터는 기저효과가 완화되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연간 상승률이 2%를 상회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전망했다. 물가안정목표 수준 이내에서 물가가 관리될 수 있다고 전망한 것이다.

이 차관은 또 최근의 물가상승세가 수요측 요인보다는 공급측 요인에 의해 발생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즉 소비가 크게 늘어서가 아니라, 일부 품목의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는 바람에 물가 상승률이 커졌다는 의미다. 이는 ‘보복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 생긴 현상은 아니라는 말로도 이해될 수 있다.

그 같은 진단이 맞다면 물가는 조만간 안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는 미국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우려 표명의 대표적 인물이 저명 투자가인 워런 버핏이다. 우려 제기 이유는 장기간에 걸쳐 이뤄진 대대적 재정 투입이다.

하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이사회 의장 출신인 재닛 옐런 재무부 장관은 최근의 물가 상승흐름은 일시적 현상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그 이유는 미 행정부가 곧 증세를 단행할 계획을 갖고 있으며, 통화정책 또한 단계적으로 변화해 갈 것이란 점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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