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이후 심심찮게 듣는 말 중 하나가 ‘세금착취’다. 과거 산업화·민주화 시대를 거치면서 들었던 ‘착취’와는 조금 다른 개념이다. 표적이 ‘임금’에서 ‘소득’으로, 착취의 주체가 ‘기업’에서 ‘정부’로 바뀌었다. 한 가지 동질적 요소가 있다면 그건 착취를 당하는 이들의 고통이다.

물론 착취에 대한 인식 및 정의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근로자 또는 납세자 쪽에서는 부담이 조금이라도 무겁다 느껴지면 자신이 착취당하고 있다는 인식을 갖기 십상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지금의 집권세력이 기업의 착취에 대해서는 유별난 경계심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경계심이 기업을 상대로 한 정부의 ‘착취’(법인세 인상 등)로 이어지지 않았나 싶다. 문재인 정부는 이미 법인세 최고세율을 기존의 22%에서 25%로 올렸다. 올해부터는 법인에 대한 종합부동산세(종부세) 부담도 한층 늘리기로 했다. 과세표준 불문하고 최고세율 6%를 적용하는 한편 기본공제와 세부담 상한도 없어지도록 손본 것이다.

서울 강남의 압구정동과 삼성동 일대 아파트들. [사진 = 연합뉴스]
서울 강남의 압구정동과 삼성동 일대 아파트들. [사진 = 연합뉴스]

특히 대기업을 향해서는 경계심을 넘어 적개심을 드러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김상조씨가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회의에 지각 참석하면서 “재벌 혼내주고 오느라 늦었다”고 말한 것이 단적인 예다. 오죽했으면 대한민국 최대 기업인 삼성을 현 정부의 ‘신오적’ 중 하나라 평하는 이들까지 나왔을까.

‘신오적’을 이야기할 때 또 하나 빼놓을 수 것이 ‘강남’이다. 현 정권의 주류를 이루는 이들에게 ‘강남’은 타도의 대상이다. 그러면서도 진보 주류파들은 진영 내 인사 개개인이 강남에서의 삶을 누리는 데 대해서는 관대하다. 강남 거주 진보 인사들에겐 오히려 ‘강남좌파’라는 싫지 않을 호칭이 부여된다. 관계(官界) 진출 이전의 조국 서울대 교수가 진보 인사로서 도덕적 우월감을 과시하며 활약할 수 있었던 것도 ‘강남좌파’라는 타칭(他稱) 덕분이었다. 그는 적진 한복판에 들어가 있는 투사였다.

그러다 보니 은연중 자신이 사회적 의미의 ‘강남좌파’임을 강조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곤 한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의 경우 “양반이 양반제를 폐지하자고 해야 더 설득력이 있다”라는 말을 남겼다. 자기처럼 두 아들을 모두 외국어고에 보낸 사람이 외고와 자립형사립고 폐지를 추진할 때는 오히려 더 도덕성을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투였다.

순수 진보 인사든 이념 장사꾼이든 진보 진영 인사들에게 강남은 늘 적진이었다. 강남에 대한 적대감은 진보 진영의 결집을 다지는 유용한 도구였다. 그걸 입증해준 이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재직 시 “서울에서 매일 서울의 이익을 생각하는 강남사람과 아침 점심 먹고 차 마시며 나온 정책이 분권적 균형발전 정책이 될 수는 없다”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 발언이 냉정한 정치적 계산에서 나왔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정치 지도자의 그 같은 발언이 대한민국을 강남과 비강남으로 나누어 각각 편을 짜도록 만들었다는 점이다.

편가르기의 대표적 산물이 부자세로 불리는 종부세다. 참여정부 당시의 종부세는 그나마 일말의 명분과 설득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중과세 논란에도 불구하고 상위 1% 정도에게만 부과되게 조정함으로써 부자세라는 명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념적 열정과 함께 금도(襟度)가 있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한 여지는 남겨두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지금의 종부세는 그런 명분마저 잃었다. 공동주택(아파트·연립주택·다세대주택) 소유자 중 3.7%가 내는, 중산층으로까지 과세 범위를 넓힌 세금이 되고 말았다. 주지하다시피 중산층은 당사자의 인식을 주요 기반으로 삼는 개념이다. 즉, 스스로 부자라기보다 중산층이라 여기는 이들 다수가 종부세 대상에 들어가게 됐다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의 증세 기류는 재임 기간 내내 줄기차게 이어져왔다. 법인세 외에 근로자가 내는 소득세 최고세율도 두 차례에 걸쳐 인상됐다. 그 결과 소득세 최고세율은 45%까지 올라갔다. 두 번째 소득세율 인상 땐 관련법 개정안을 예산부수법안으로 끼워넣어 ‘소리 소문 없이’ 처리했다.

진짜 큰 문제는 증세 자체가 아니라 증가폭과 속도다. 거위 털을 하나씩이 아니라 뭉텅이로 뽑듯 세금을 거둬가는 게 문제라는 얘기다. 그러니 여기저기서 세금폭탄이니 세금착취니 하는 원성이 비명과 함께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실제로 현 정부에서의 세금 증가 속도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빠르고 가파르다. 그런 현상은 특히 부동산 관련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세율 상승 외에 과표까지 급격히 변한 것이 주된 원인이다. 예를 들면 올해 종부세를 내야 하는 공동주택의 수는 지난해(30만9000여 가구)보다 70% 정도나 늘어 52만 가구를 넘기게 됐다.

부동산대책을 발표하고 있는 국민의힘 당직자들. [사진 = 연합뉴스]
부동산대책을 발표하고 있는 국민의힘 당직자들. [사진 = 연합뉴스]

세율 상승 속도 또한 무서울 정도다. 올해엔 종부세 세율이 크게 올라 조정대상지역 2주택자와 비조정대상지역 3주택 이상 보유자는 최고 6%의 종부세를 내야 한다. 기존 최고세율은 3.2%였다.

1주택자도 증세의 그물을 벗어나지 못하게 됐다. 그들에 대한 종부세율은 기존 0.5~2.7%에서 0.6~3.0%로 오른다. 집값이 올랐다는 이유로 정부가 공시가격을 크게 끌어올린 데다 세율마저 높아졌으니 투기와 무관한 1주택자들까지도 가만히 앉아 세금폭탄을 맞게 된 셈이다. 다행히(?) 1년 전보다 집값이 오르지 않은 1주택자라 해도 20% 남짓한 종부세 인상을 감내해야 할 판이다.

이처럼 증세 관련 수치의 증가율은 웬만하면 두 자릿수다. 당장 이달 1일부터 늘어나는 세금만 따져보더라도 그렇다. 이날부터는 다주택자가 집을 팔 때 내는 양도세 최고세율이 10%포인트 더 올라 75%에 이르게 된다. 1년 미만 단기 보유 주택을 파는 경우라면 양도세율은 기존 40%에서 70%로 급등한다.

급격한 세 부담 증가는 고스란히 납세자들의 고통으로 이어지고 있다. 납세자가 고통을 느낀다는 것은 세금이 감내할 수준을 넘어섰음을 의미한다. 이를 입증해주는 것이 세금 분납 사례의 증가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이 서울시로부터 받은 2016~2020년 서울시 주택분 재산세 분납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시민들의 재산세 분납 신청 건수는 1478건에 달했다. 전년 대비 증가율이 500%나 됐다. 지방세인 재산세는 7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납부하는데 전체의 절반에 해당하는 세금조차 한 번에 내기 어려운 사람들이 그만큼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재산세 분납 신청자의 80%가 강남과 서초, 용산에 몰려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신성한 의무 이행이라곤 하지만 힘에 겨운 나머지 세금을 분납해야 하는 이들에게 납세가 기꺼울 리 없다. 더구나 많은 빚을 내 고급 주택가의 1주택자가 된 중산층이라면 징벌적 성격의 재산세나 종부세에 대해 더 큰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가진 자에게 세금을 많이 물리는 것도 좋지만, 징벌적 과세로 인해 그들마저 세금을 나누어 내야 하는 상황이라면 무언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일이다. 우리가 지금 너나없이 성공이 죄가 되는, 희망 없는 세상을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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