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제시한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안을 두고 논란이 한창이다. 그 불똥은 여지없이 정부를 향해 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정관리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사태를 관망 중이라는 해석도, 무언의 반발이라는 분석도 모두 가능한 상황이다.

맥락을 따지자면 기재부는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에 부정적이라고 볼 여지가 더 크다. 기재부가 곳간지기라는 기본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점이 첫 번째 이유다. 또한 홍남기 경제부총리를 필두로 한 기재부는 재난지원금 지급과 관련해 최소한의 재정을 활용한 선별지원 방식을 선호해왔다. 재난지원금 문제와 직접 관련된 발언은 아니었지만 홍 부총리는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라는 말까지 남겼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진 = 연합뉴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진 = 연합뉴스]

하지만 지난해 1차 재난지원금 지급 논란이 일었을 때 홍 부총리는 선별지원을 주장하다 결국 여당의 일괄지원 방안을 수용했다. 특히 1차 재난지원금의 경우 4·15총선 공약과 맞물려 지급되는 바람에 금권선거 시비까지 불러일으켰다.

이후에도 홍 부총리가 자신의 의지를 스스로 꺾는 일이 반복되면서 그에겐 ‘홍두사미’(홍남기와 용두사미의 합성어)란 별명까지 붙었다.

따라서 여당의 이번 일괄지원 방안 제시 이후 홍 부총리와 기재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1차 때처럼 특정 비율을 제시하며 선별지원을 주장할지, 여당안을 그대로 수용할지가 그 다음 관심사다.

정부는 일단 올해 두 번째 추가경정 예산 편성은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다만, 추경안에 재난지원 항목을 포함시키는데 대해 찬성하는 지 여부는 밝히지 않고 있다. 재난지원에 대한 입장이 정리되지 않은 만큼 기재부로서는 아직 선별지원이냐 일괄지원이냐를 논하는 것 자체가 부자연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여당의 입장이 워낙 굳건하고 청와대도 특별히 반대하지 않고 있어 5차 재난지원금 일괄지급 결정은 시간문제인 듯 보인다. 야당 쪽에서 내년 대선을 앞둔 선심성 정책이라는 불만이 나오는 것을 보면 청와대가 싫어할 카드는 아니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실제로 청와대는 이미 전국민 대상 재난지원금 지급에 대한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지난 2월 문재인 대통령은 여당 지도부 초청 간담회에서 “코로나에서 벗어날 상황이 되면 국민을 위로하고 소비를 진작하기 위한 지원금 지급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었다. 직접적으로 전국민 지원을 거론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의미로 받아들여질 만한 발언이었다.

지난달 국가재정전략회의 발언도 묘한 여운을 남겼다. 문 대통령은 당시 “큰 폭으로 증가한 추가 세수를 활용하는 추가적 재정 투입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하겠다”고 말했다. 올해 1분기 국세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9조원 더 걷힌 것을 염두에 둔 듯한 발언이었다.

이런 기류 탓인지 기재부의 입장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기재부는 그간 올해 2차 추경에 대해서조차 손사래치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러나 지난달 20일 열린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 브리핑에서 이억원 기재부 1차관은 추경 관련 질문이 나오자 “하반기 정책방향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종합적으로 검토할 것”이란 답변을 내놓았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추경=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이란 등식이 성립되는 건 아니지만 기재부의 반응은 정황 상 여권 내에 일정한 흐름이 형성돼 있음을 짐작하게 할만 했다.

현재 여당은 5차 재난지원금을 전국민을 상대로 지급하되 그 시기를 언제로 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김성환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여름 휴가철 또는 추석 전을 거론하면서 “정부와 본격적인 협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가에서는 여당 의도대로 5차 재난지원금 지급이 결정될 경우 그것을 뒷받침할 올해 두 번째 추경 규모가 30조원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여기엔 1차 지원에 준해 추산한 일괄지원 용도 14조원 남짓과 소상공인 손실지원 항목 등이 포함돼 있다.

문제는 국가채무다. 30조 규모의 추경이 편성되면 또 다시 적자국채를 다량 발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올해 1차 추경을 기준으로 했을 때 우리나라의 올해 국가채무는 965조9000억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48.2%를 기록하게 된다. 여기에 대규모 나랏빚이 더해지면 국가채무는 1000조원선,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50%선을 위협하게 되고 내년이면 그 선을 가볍게 넘어설 것이 확실시된다.

재난지원금의 효용성이 크다면 그나마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조차 효용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해의 1차 재난지원금을 토대로 추산해보니 소비 증대로 이어진 지원금 비율은 30% 안팎에 그쳤다는 것이다.

생산이 늘지 않는 상황에서 현금을 살포하면 인플레 압력이 더 높아진다는 전문가들의 분석도 제기된다. 여러 분석을 묵살한다 해도 현금을 10조 단위로 푸는 것은 한국은행이 금리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해석도 나올 수 있다.

다양한 재난지원금의 영향을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이가 기재부를 이끄는 홍남기 부총리다. 더구나 홍 부총리는 재정이 제한적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선별지원 방식 선호 입장을 유지해왔다. 그런 홍 부총리가 이번에는 소신을 지켜낼 수 있을지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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