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살바도르가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하기로 했다. 대통령이 가상화폐의 대표 격인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승인해달라고 의회에 요청했고, 의회는 그 요청을 받아들였다. 지난 9일 벌어진 이 사건은 일국 정부가 비트코인의 존재 가치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역사성을 지닌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비트코인 가격은 하루도 안 돼 10% 남짓 상승했다. 비트코인의 진정한 가치를 두고 반신반의하던 이들이 한꺼번에 구입 대열에 가세한 것이 원인이었을 것이다.

그간 우리뿐 아니라 전세계 국가들에서는 가상화폐의 가치와 유용성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져왔다. 통화로서의 가치를 지닌다는 주장 못지않게 내재 가치를 지니지 못한, 투기대상일 뿐이라는 부정적 의견이 팽팽히 맞서왔다. 논쟁은 두고두고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엘살바도르 사례도 그런 논쟁의 장기화·첨예화에 일조할 것으로 분석된다.

[사진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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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일은 가상화폐의 진면목을 조기에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엘살바도르의 실험이 가상화폐의 유용성 및 실효성 유무를 생생히 보여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이 이 부분이다. 차분히 전개 과정을 지켜보면 우리 나름의 가상화폐 관련 정책방향을 설정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하지만 추이를 지켜보기에 앞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엘살바도르 정부의 비트코인 승인 이유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해하려면 엘살바도르의 현재 경제상황을 대략적으로 알아둘 필요가 있다.

현재 엘살바도르는 달러화를 공식화폐로 쓰고 있다. 과거 콜론이라는 자국 화폐를 갖고 있었지만 자연스럽게 도태됐다. 가치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국민들로부터 외면받은 것이 주원인이었다. 달러화를 주된 공식화폐로 쓴다는 것은 통화주권, 나아가 경제주권을 행사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엘살바도르는 달러화 사용으로 인해 독자적으로 통화정책을 구사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의 통화정책에 휩쓸릴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더 심각한 점은 연준의 완화적 통화정책으로 달러화 가치가 크게 떨어짐에 따라 엘살바도르의 구매력이 약화됐다는 사실이다. 미국이야 스스로 달러를 찍어내 자국민들에게 뿌리면 그만이지만 엘살바도르는 그렇게 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준으로부터 달러화를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자 국가적 구매력 저하라는 문제에 봉착하게 됐다.

또 하나 지적할 일은 엘살바도르가 아직 금융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엘살바도르 국민 중 금융기관 계좌를 갖고 있는 사람은 전국민의 30%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 보니 일상의 경제활동에서 현금 거래가 주를 이루고 있는 실정이다.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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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타난 결과가 비트코인 법정화폐 승인이었다. 나름의 방식으로 통화주권을 회복하는 동시에 국민들의 금융 접근성을 높이는 묘안을 짜냈다는 얘기다. 비트코인 유통을 지원할 금융시스템 구축 과정에서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란 기대가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하지만 가상화폐가 법정화폐로서 큰 탈 없이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내재가치가 없다는 비판 속에 너무 큰 가격 변동성을 보이는 게 가장 중요한 문제다. 비트코인 가격이 장기적으로는 개당 3만 달러 아래로 내려앉고, 결국 2만 달러(약 2226만원) 선까지 떨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가상화폐가 국제사회에서 지갑 소유자의 익명성으로 인해 자금세탁 등의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엘살바도르가 내부 시스템을 정비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결국 엘살바도르 정부의 이번 결정은 비트코인이 지불, 가치 척도, 저장 등의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는지를 확인해줄 흥미로운 실험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실험은 결과에 대한 예측을 불허하는 속성을 지닌다. 실패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다. 엘살바도르 정부의 이번 결정이 비트코인의 가치를 높여줄 것이란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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