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내에 올릴 것이란 믿음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국내외 금융사들의 입장 변화를 통해 쉽게 확인된다.

최근 블룸버그가 국내외 투자은행과 경제연구소 등 29개 기관의 의견을 취합해 밝힌 바에 따르면 5개 기관이 한은의 연내 금리인상을 점쳤다. 골드만삭스와 JP모건, 캐피털 이코노믹스, 바클레이즈 등은 올해 4분기 중에 한은 기준금리가 현행 0.50%에서 0.75%로 올라갈 것이라 예상했다.

나머지 중 4곳은 내년 1분기 중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인상될 것으로 보았다. 내년 중 한 차례 이상 금리 인상이 단행될 것이라 전망한 기관은 11곳에 이르렀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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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증권사들 중에서도 연내 금리인상을 전망하는 곳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 삼성증권 및 대신증권 등의 경우 이달 들어 입장을 바꿔 연내 금리 인상설에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금리 인상설 확산에 불을 붙인 이는 이주열 한은 총재다. 이 총재는 지난달 하순부터 연이어 금리인상 가능성을 시사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시장을 향해 미리미리 대비해두라는 신호를 보냈다고 볼 수 있다.

첫 신호는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직후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나왔다. 한은 금통위는 이날 회의에서 만장일치 의견으로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했다. 당일 회견에서 이 총재는 “금리정책 정상화를 서두르지는 않겠지만 실기하지 말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연내 인상 여부는 경제상황 전개에 달려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은 이 발언을 기준금리 인상의 예비신호로 받아들였다. 실제로 이 총재의 이날 발언은 비교적 구체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을 만했다. “금리정책 정상화”라는 표현부터가 금리인상 의지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지기에 충분했다. 이 말은 곧 현재의 금리 수준이 비정상적이라는 인식의 역설적 표현이었다.

이달 들어 공개된 이 총재의 후속 발언은 더욱 구체적이었다. 그는 지난 11일 열린 한은 창립 71주년 기념식 식사를 통해 “우리 경제가 견실한 회복세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면 현재의 완화적 통화정책을 적절한 시점부터 질서 있게 정상화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경제가 예상 경로대로 가고, 금리인상이 경기를 냉각시킬 우려가 없는 상황이 도래했다고 판단되면 조만간 결단을 내릴 수 있음을 시사한 셈이다.

이 발언 이후 시장 전문가들은 금리 인상 시점을 두고 이런저런 전망을 내놓느라 보다 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현재 거론되는 시나리오 중 일반론적인 것이 10월 인상설이다. 이는 앞서 언급된 국제적 투자은행들의 전망과 맥을 같이한다. 즉, 7월 또는 8월 금통위에서 모처럼 금리인상 의견이 대두되고, 그 다음번 회의에서 0.25%포인트 인상이 단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그래픽 = 연합뉴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그래픽 = 연합뉴스]

올해 남은 네 차례의 한은 통화정책 금통위 회의는 7, 8, 10, 11월에 차례로 열린다. 10월 금통위 회의 날짜는 12일이다.

분위기상 금리 인상에 대한 한은의 부담은 상당 부분 감소했다고 볼 수 있다. 경제가 수출 호조 등에 힘입어 회복세를 보이고 있고, 코로나19 백신 접종 확대 속에 내수도 점차 회복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 금리 인상 결정시 또 하나의 고려 요소인 고용상황도 미미하게나마 회복되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물가상승 압력이 강해지고 있고, 가계부채와 부동산가격이 지속적인 상승세를 이어가는 점 등도 금리 인상의 명분을 더해주는 요인들이다. 특히 가계부채와 부동산 문제는 자칫 통화당국의 책임론으로 비화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한은으로서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소재들이다. 그러지 않아도 정부에서는 오래 전부터 부동산 가격 상승을 한은의 통화정책 탓으로 돌리려는 목소리가 나오곤 했다.

가계부채는 시한폭탄이란 표현이 나올 만큼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위험요인으로 자리하고 있다. 한은 집계에 따르면 올해 3월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765조원을 찍었다. 1년간 증가규모만 153조6000억원이다.

규모 외에 증가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최근 한국금융연구원 신용상 선임연구위원이 발표한 ‘가계부채 리스크 현황과 선제적 관리방안’에 따르면 한국의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90.3%다. 국제결제은행(BIS) 분류 기준에 의한 선진국들의 관련 비율은 작년 말 현재 81.0%였다.

증가 속도도 문제로 지적됐다. 각각 2008년 말을 비교 시점으로 삼을 경우 선진국 그룹과 우리의 가계부채 증가폭은 각각 4.9%포인트, 27.6%포인트였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움직임을 두고는 정부의 재정정책과 엇박자를 낼 것이란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정부가 2차 추가경정예산을 추진할 정도로 확장적 재정정책을 이어가는 것과 기준금리 인상은 어울리는 정책 조합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로 인해 한은이 그간 문재인 정부의 재정정책에 코드를 맞춰오다 정권 임기 말이 되니 책임론에서 벗어나려 한다는 비판적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기본적인 문제는 현 정부의 재정중독증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무작정 재정을 풀어 모든 걸 해결하려는 자세 자체가 문제를 키워왔다는 뜻이다. 현 정부의 지속되는 확장적 재정정책은 글로벌 인플레 압력 증대 속에서 세계 각국이 긴축 쪽으로 방향을 틀려 하는 기류와도 맞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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