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의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됐다. 의문을 던진 곳은 정권 탄생 과정에서 현 정부의 우군으로 불렸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다. 경실련이 문 정부의 부동산정책에 비판을 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비판은 현행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불신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경실련은 지난 23일 ‘문재인 정부 4년 서울아파트 시세변동 분석결과’란 주제로 기자회견을 연 뒤 현행 부동산 정책에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특히 눈길을 끈 점은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경실련의 불신이었다. 회견 당시 사회를 맡은 윤은주 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이하 개혁본부) 간사 앞에는 ‘경실련 79%, KB국민은행 75%, 국토부 17%’란 문구가 걸려 있었다. 회견 개최 동기와 의도를 미리 드러내주는 모습이었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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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소개 후 경실련 측 인사들은 각자 준비한 팻말을 들고 포토타임을 진행했다. 이때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사회자가 들고 있던 팻말 문구였다. 팻말엔 ‘왜곡된 부동산 통계 산출 근거 공개하고 책임자 문책하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이날 회견의 골자는 현 정부 임기 4년 동안 서울 아파트값이 93%나 올랐다는 것이었다. 팻말에 적힌 ‘경실련 79%’보다 더 큰 폭으로 서울아파트 값이 상승했음을 알린 것이다. 79%와 93% 간 차이는 조사 기간 및 대상의 차이에서 비롯됐다. 경실련이 KB국민은행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바에 따르면 2017년 5월부터 올해 5월까지 4년 동안 서울 아파트의 평당 평균 가격은 2061만원에서 3971만원으로 상승했다. 이를 토대로 계산한 상승률이 93%다. 집값 상승은 강남과 강북을 가리지 않고 서울 전역에서 이뤄졌다.

경실련은 그 이유를 문 정부의 집값 안정화 의지 부재에서 찾았다. 경실련은 정부가 집값을 못 잡고 있는 게 아니라 안 잡고 있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김성달 개혁본부 국장은 회견에서 “정부가 집값을 안 잡고 있다고 의심할 정도”라고 말했다.

개혁본부를 이끄는 김헌동 본부장도 비슷한 시각을 드러냈다. 그는 회견 다음 날 모 매체와 가진 인터뷰를 통해 정부가 집값이 얼마나, 왜 올랐는지 정확히 알려주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본부장은 심지어 정부가 그간 집값을 띄우는 정책을 내놓았다는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경실련의 기본 시각은 정부가 부동산 관련 통계를 거짓으로 작성한 뒤, 그걸 토대로 엉터리 정책을 만들어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집값을 잡을 의도가 애당초 없었다는 주장이었다.

어쩌다 이런 지경까지 왔을까. 따질 것도 없이 모두 정부가 자초한 일이다.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오히려 집값이 뛰었으니 정부가 집값 띄우기 정책을 펼쳐왔다는 의심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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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전문가들의 숱한 조언과 달리 수요억제에 초점을 맞추어왔다. 집값이 오를수록 억제책의 독성도 강해졌다. 그 과정에서 통계마저 ‘마사지’된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 연이어 나타났다. 그 결과 집값은 오를 대로 오르고 집 가진 사람들의 세금 부담만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1주택자도 예외가 아니었다. 세금 증가를 부추기는 데는 공시가격의 급격한 상승도 한몫을 했다. 김헌동 본부장은 공시가가 문 정부 출범 후 80%나 올랐다고 지적했다.

한 쪽으로는 분식된 통계를 앞세워 집값이 많이 오르지 않았다고 강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집값이 크게 올랐다며 세금을 마구 거둬가는 희한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러니 정부가 집값을 올려놓고 증세에 의한 세수 호조를 즐긴다는 생각을 갖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 아니겠나.

사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서는 뚜렷한 철학이 엿보이지 않는다. 철학이 불분명한 탓에 정책목표나 비전에 대한 윤곽도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경실련 주장마따나 집값 상승을 방치하면서 그저 세금 걷는 데만 혈안이 되어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곤 한다.

집은 소유가 아니라 거주의 대상이라 외치면서도 장기 거주 1주택자를 세금폭탄으로 들볶는 일, 보유세 외에 거래세까지 마구잡이로 높임으로써 이사마저 어렵게 만든 일 등이 그런 의심을 뒷받침한다. 여기서 한 술 더 떠 여당은 부동산세제를 개편한다면서 양도세 관련 장기보유특별공제를 축소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1주택을 10년 이상 보유·거주했어도 장기보유특별공제 혜택을 온전히 주지 않겠다는 게 핵심이다. 집을 단기 보유하는 것도, 장기 보유하는 것도 모두 안 된다는 논리에 다름 아니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를 메시지들이 정부·여당에서 번갈아 나오고 있는 셈이다. 분명히 잡히는 메시지가 한 가지 있기는 하다. ‘집을 가진 자들은 예외 없이 세금이나 많이 내라’가 그것이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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