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부동산 세제 관련법들은 누더기가 돼버렸다. 거대 여당 의도대로 즉흥적으로, 여러 번 손질을 가한 탓에 세무사들조차 관련법들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할 정도다. 장기 비전이나 지향점 없이 그때그때 부동산 세제를 바꾸다 보니 이젠 집값 안정화라는 목적의식조차 희미해져 버렸다.

현 정부가 부동산 세제에 손질을 가하기 시작할 때 내세운 명분은 집값 안정이었다. 집은 투자·투기가 아니라 거주의 수단으로만 기능해야 한다는 의지가 분명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의도가 다른데 있었음이 차차 드러났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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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목적은 집 가진 사람들로부터 최대한 많은 세금을 거둬들이는 일이었다. 세금이 과도하다 불평하면 감세 대신 분할 납부 또는 기한 연장을 선택지로 제시하며 납세를 독려했다. 요즘엔 1주택 고령자에 한해 종합부동산세 납부를 집을 팔 때까지 유예해주는 방안까지 들먹이고 있다. 맞춤형 또는 합리적 감세 방안에 대해서는 별반 말이 없다.

정부의 증세 의지는 지난해 8월 여당 주도로 소득세법·법인세법·종합부동산세법·지방세법 등이 무더기로 개정되면서 확실히 입증됐다. 다주택자 과세 강화와 주로 관련된 내용들이었다지만 세율 인상폭을 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종부세 최고세율은 기존의 두 배 수준인 6%로 높아졌고, 양도세 최고세율도 72%로 늘어났다. 법인 보유 부동산에 대한 양도세 추가 세율은 20%로, 조정대상 지역내 3억 이상 주택 증여시의 취득 증여세율은 최고 12%로 상향조정됐다.

문재인 정부는 다른 세목의 세율도 예외 없이 올려놓았다. 법인세 최고세율은 22%에서 25%로 올라갔다. 지방세까지 포함시키면 법인세 최고세율은 27.5%가 된다. 개인들에 대한 소득세 최고세율은 38%에서 45%로 급상승했다. 상속세는 이미 다른 나라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최근 삼성가(家)의 상속 관련 보도들에서 드러났듯이 재벌가 상속세의 경우 최고세율이 60%까지 올라간다. 새삼 확인된 이 사실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부동산 세제로 주제를 되돌려 이야기하자면, 현 정부는 과표도 대대적으로 손질했다. 그 작업은 공시가격과 공정시장가액비율을 동시에 높이는 등 전방위적으로 진행됐다. 세금폭탄이니 세금착취니 하는 말들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워낙 돈 쓰는데 이골이 나 재원에 대한 갈증이 심하다 보니 과세 범위도 넓어졌다. 1주택자, 나아가 장기 보유·거주 1주택자에 대한 세금 쥐어짜기도 그런 행태가 낳은 결과물이다. 그 중 하나가 종부세율 인상이다. 투기와 무관함에도 불구하고 1주택자 종부세 세율은 기존의 0.5~2.7%에서 0.6~3%로 상향조정됐다. 이로써 1주택자들까지도 집값 상승과 과표 조정, 세율 인상이란 3중고에 시달릴 수밖에 없게 됐다.

그 바람에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된 이들이 은퇴 고령자들이다. 집 한 채가 전부이다시피 한 그들 중 다수는 생계수단이 되어줄 줄 알았던 국민연금 수급액을 모두 부동산 보유세 납부에 쏟아부어야 하는 형편에 처했다. 그래도 세금 낼 돈이 모자란 경우가 수두룩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재산세 과세표준이 올라가면서 소득이 없는데도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까지 상실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재산세 과세표준액이 9억원을 넘은 죄(?) 등으로 지난해에만 2만6000여명이 자녀들에 기댄 건보 피부양자 자격을 잃었다. 올해엔 그 수가 5만을 넘길 것이란 분석 자료도 이미 공개됐다.

상황이 이런데도 여권은 세제 정상화 의지를 보이기는커녕 1주택 장기 보유자들에게 마지막 결정타를 날리려 하고 있다. 1주택자로서 10년 이상 거주·보유한 이들에게 부여하던 양도세 장기보유특별공제를 대폭 축소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투기와 무관하지만 집값이 올라 고가 주택을 보유하게 됐다는 게 그 이유다.

현재 1주택자는 10년 보유에 10년 거주한 경우라면 양도차익의 80%까지 공제 혜택을 받는다. 이는 실거주 권장이라는 정책 목표에 부합한다. 하지만 여당이 새로 마련한 세제 개편안은 양도 차익이 클수록 공제율을 더 낮게 책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주택을 오래 지니고 그곳에서 오래 거주한 사람일수록 공제혜택이 줄어드는 희한한 세제안이 마련된 것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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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니 부동산 세제가 투기 억제가 아니라 증세를 위해 기획·강행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 양도세는 법인세와 함께 올 들어 발생한 추가 세수의 주축을 이루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점이 과세의 합목적성과 별개로 정부·여당으로 하여금 그 달달한 맛을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문재인 정부가 증세에 집착하는 배경엔 헤픈 씀씀이가 자리하고 있다. 자율보다는 관리와 통제에 무게를 둔 채 큰 정부를 지향하는데다 퍼주기에 집중하다 보니 늘 돈이 아쉬울 수밖에 없다. 퍼주기가 정권 지지기반 확보의 손쉽고도 확실한 수단이라는 건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다.

부동산 세제가 정부의 세수 갈증 해소 수단으로 전락한 것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가 또 하나 있다. 제도에 숨겨진 편가르기 의도가 그것이다. 이는 현 정부의 심각한 병폐요, 지난 4년간 누적돼온 적폐 중의 적폐다. 장기 보유·거주 1주택자에게 가혹한 세금을 물리겠다는 것도 편가르기 의도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장기 보유·거주의 산물이라 할지라도 소수의 고액 자산가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징벌적 과세를 매기겠다는 의지가 반영됐을 것이란 얘기다.

정부·여당은 지금의 부동산 세제가 세수 확대와 편가르기에 의한 정치적 이익을 함께 보장해주는 유용한 방편이라 생각할지 모른다. 그 탓인지 편가르기는 현 정부에서 나타나고 있는 세수 갈증의 근본원인이 되고 있다. 다수를 내 편으로 끌어들이려면 재정이 넉넉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수 갈증의 또 다른 원인인 큰 정부 지향이야 이념과 생각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니 어느 정도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편가르기는 상식적으로 수용되기 어려운 악행이다. 정권보다 국가와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정부라면 당장 폐기해야 한다. 그래야 고질이 되어가는 세수 갈증도 해소될 수 있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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