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부터 80대까지, 청와대부터 시골 촌부까자 투자 열풍이 불면서 올해 1분기(1~3월) 가계의 주식자산 규모가 사상 처음 900조원을 돌파했다. 가계 금융자산 중 주식투자 비중 역시 처음으로 20%를 넘어섰다. 가계가 ‘빚투’(빚을 내 투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로 국내외 주식을 사들이는 데 올인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1년 1분기중 자금순환표’(잠정)에 따르면 가계 및 비영리단체는 1분기 대출 등으로 52조1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조달했다. 반면 예금·주식·펀드 등으로 96조1000억원의 자금을 운용해 순자금운용 규모가 44조원으로 집계됐다. 규모가 1년 전(65조9000억원)보다 21조9000억원이나 감소했다. 지난해 코로나19 창궐로 대출 등 자금조달 규모가 15조2000억원에 그쳤고 65조9000억원을 예금에 쌓아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왼쪽)와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지난 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만나 경제현안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왼쪽)와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지난 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만나 경제현안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특히 1분기 가계의 주식 투자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가계는 거리두기 완화 등으로 소비(1분기 가계최종소비지출 2.8% 증가)를 일부 늘리기도 했지만 대출을 받아 주식이나 주택을 사들였다. 만기 1년 이상 대출이 38조원 증가해 전년(10조5000억원)보다 3배 이상 급증했다. 증권사 신용융자 등 단기 대출금도 8조4000억원 증가했다. 국내 주식 투자액이 36조5000억원 증가했고, 해외 주식 투자액은 12조5000억원 늘어났다. 한은이 통계를 작성한 2009년 이후 최대다. 지난해 3분기에 기록했던 최대치(국내 23조5000억원, 해외 8조3000억원)를 가볍게 갈아치웠다. 3월말 가계금융 자산(4646조2000억원) 중 주식 비중이 20.3%(약 943조2000억원)로 역대 최대치다.

자금순환표는 금융자산 흐름만 보여주지만 대출의 상당 부분이 주택 투자로 이어졌을 것이라는 추정도 나온다. 개인이 아파트 분양 등을 통해 순매수한 전국 주택 매매 건수는 7000호로 집계됐기 때문이다. 1년 전 1만1000호를 순매도했던 것과는 크게 다른 흐름이다. 이에 따라 가계 빚은 폭증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수년 간 ‘빚 권하는 사회’나 다름없었다. 워낙 많은 돈이 풀렸고 돈값인 금리(이자율)는 크게 낮아졌다. 한은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기 침체가 예상되자 지난해 3월 기준금리를 1.25%에서 0.75%로 낮추는 ‘빅 컷’을 단행했다. 지난해 5월 0.75%에서 0.5%로 또 한차례 낮춘 뒤 사상 최저 수준의 금리를 유지하며 돈을 뿌리고 있다.

이에 힘입어 주식·부동산 등 자산가격은 수직 상승했다. 코스피(KOSPI)는 지난해 3월 1500선까지 곤두박질쳤지만 이달 초 3300선을 돌파하는 등 2배 넘게 올랐다. 서울지역 아파트값도 현 정부 들어 70% 넘게 급등했다. 돈값은 싸고 자산가격이 폭등하자 한몫을 노리고 너도나도 ‘빚투’ ‘영끌’에 나서는 바람에 가계 채무는 폭증했다. 한은에 따르면 1분기 말 가계부채(자영업자 부채 포함)는 전년보다 202조원 늘어난 2045조원에 이른다. 1분기 말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4.7%를 기록했다.

이 와중에 한은은 지난 5월부터 금리 인상 시그널을 보내기 시작했다. 금리 인상 신호가 수차례 이어지며 올 하반기 금리 인상을 기정사실화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올해 5월 29일 “연내 금리 인상 여부는 경제 상황 전개에 달렸다”며 “금리정책 정상화를 서두르지는 않겠지만 실기해서도 안 된다”고 밝혔다. 한은이 올들어 금리 인상을 시사한 첫 번째 메시지다. 이 총재는 지난달 11일 “우리 경제가 견실한 회복세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면 현재의 완화적 통화정책을 향후 적절한 시점부터 질서 있게 정상화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공개적으로 연내 금리 인상 신호를 던진 두번째 메시지다. 이후 이 총재는 세번째로 금리 인상을 언급했다. 같은 달 24일 “연내 늦지 않은 시점에 통화정책을 질서 있게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내 인상’이라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시장에 전달한 것이다. 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도 내비쳤다. 이 총재는 “금리를 한두 번 올려도 긴축이 아니라는 집행 간부의 발언이 있었는데, (저도) 금리가 조금 올라도 통화 완화적 기조를 유지한다는데 의견을 같이 한다”고 밝혔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미국에서는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 논의를 시작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지난달 16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개최하고 2023년까지 최소 두 차례 기준금리 인상을 시사했다. 금리 인상 시점이 2023년 이후가 될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뒤엎고 인상 시점을 1년 가량 앞당겼다.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면 신흥국의 통화가치가 떨어지고 이머징 마켓에 투자한 외국자본이 빠져나간다. 이를 막기 위해 금리 인상에 나설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런 만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오는 10월이나 11월 금리 0.25%포인트 인상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물론 국내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한은의 금리 인상 시간표도 영향을 받는다. 정부가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2주간 4단계로 격상한 만큼 내수 등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크기 때문이다.

금리 상승으로 대출자의 이자부담이 계속 커지는 까닭에 선제적인 대출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리 출구전략을 마련하지 않으면 부채가 경기 회복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제기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위기를 맞아 유동성이 풀려 있고 한은이 (금리인상) 신호를 냈다”며 “금리가 1% 올라가면 10조원 이상 금리부담이 있을 것으로 보고 서민경제 부담을 줄이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도규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버블이 끝없이 팽창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며 “부동산 등 투자에 어느 때보다 높은 경각심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강한 경기회복세 등을 바탕으로 조만간 국내외 경제가 팬데믹 위기에서 회복 단계로 들어설 것”이라면서도 “경기 회복의 기대 뒷면에는 금리 상승이라는 새로운 리스크가 도사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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