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20개국(G20) 경제 장관들이 디지털세 도입 등을 담은 글로벌 조세 개혁안을 승인했다. 글로벌 대기업이 매출이 발생하는 국가에 법인세를 더 내도록 하는 디지털세 도입 방안의 기본틀이 마련된 것이다.

G20 재무장관·중앙은행장들은 지난 9∼10일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열린 회의에서 디지털세 도입안을 지지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이들은 코뮈니케(공동성명)를 통해 “수년 간의 논의 끝에 더 안정적이고 더 공정한 국제 조세제도에 합의했다”며 “다국적 회사가 얻은 이익의 재분배와 효과적인 글로벌 최저한세(minimum tax)라는 2가지 핵심 내용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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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글로벌 조세 개혁안은 세부 핵심 사안에 대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차원의 추가 조율을 거쳐 10월 말 이탈리아 로마에서 개최되는 G20 정상회의에서 최종 합의될 예정이다. 이어 2022년에 서명하고 2023년 발효시킬 방침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자 간담회를 통해 “디지털세는 과거 100년 조세체계가 이제 물러나고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는 국제 조세체계가 만들어진 것”이라며 “남은 3개월 동안 실무자 조율을 거쳐 10월에 논의를 마무리하자는 데 합의가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디지털세는 다국적 기업이 외국에 고정 사업장을 운영하지 않더라도 매출이 발생한 곳에 세금을 내도록 하는 조세체계다. 일정 금액 이상의 초과 이익에 대한 과세 권한을 매출 발생국에 배분해 과세하는 방식이다. 즉 글로벌 기업들이 적절한 곳에 적절한 액수의 세금을 내도록 하겠다는 게 도입의 취지다. 이런 만큼 디지털세는 글로벌 기업들이 돈을 버는 국가에 제대로 세금을 내지 않거나 세율이 낮은 국가를 통해 세금을 덜 내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동안 구글, 페이스북 등 고정 사업장이 없는 글로벌 기업들은 여러 나라에서 돈을 벌더라도 서버가 있는 국가에만 세금을 냈다. 이런 까닭에 어느 한 나라에서 아무리 많은 매출을 올리더라도 세금은 본국에만 내는 글로벌 기업들에 대해 해당국으로서는 상대적 박탈감과 불만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부과 대상은 연결 매출 200억 유로(약 27조원) 및 이익률 10% 이상이 되는 글로벌 다국적 기업으로 일단 정해졌다. 하지만 향후 논의에 따라 연결 매출 100억 유로 등으로 디지털세 대상이 확대될 가능성도 남아 있다. 일본 닛케이아시아는 구글·애플 등 100여개 글로벌 기업들이 여기에 해당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국 기업은 삼성전자가 해당될 것이 유력하고 SK하이닉스도 이익률에 따라 적용 대상이 될 공산이 크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국내에서 4조8000억원, SK하이닉스는 1조4000억원의 법인세를 각각 부담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글로벌 조세 개혁안은 디지털세(필라1)와 글로벌 최저한세(필라2)로 구성돼 있다. 필라1은 글로벌 기업이 매출을 올린 국가에 세금을 내도록 하는 방안이고, 필라2는 글로벌 기업의 조세 회피를 막기 위해 최저한세율을 도입하는 방안이다. 필라1은 글로벌 기업이 실제로 서비스를 공급하고 이윤을 창출하는 국가에도 세금을 내도록 과세권을 배분하는 방식으로 설계됐다. 연결 매출액 200억 유로, 이익률 10% 이상 기준을 충족하는 글로벌 기업이 통상이익률(10%)을 넘는 초과 이익을 얻을 경우 이 가운데 20∼30%에 대한 세금을 매출 발생국에 내야 한다. 매출 발생국은 재화나 서비스가 최종적으로 소비되는 지역으로 하고, 상품 배송 주소 등이 기준이 될 수 있다. 이를 통해 글로벌 기업의 매출액이 어느 국가에서 얼마나 발생하는지 판정한 뒤 그 비율에 따라 매출 발생국들이 과세권을 나눠 가지게 된다.

G20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사진 = 연합뉴스]
G20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사진 = 연합뉴스]

필라1을 도입하면 기존 디지털 서비스세 등 세계 각국들이 개별적으로 운영해온 유사한 과세제도는 폐지될 것으로 보인다. 필라1은 국내에 물리적 사업장이 없는 해외 기업에 대해서도 과세가 가능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100년 가까이 된 국제조세원칙의 대변경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의 경우 필라1 적용 기준 규모를 충족하는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국내에 내던 세금 일부가 매출 발생국으로 옮겨가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상당한 매출을 올렸던 다른 글로벌 기업으로부터 받는 세금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필라2는 최소 15%의 글로벌 최저한세율을 도입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15% 미만으로 저율 과세하는 국가에서 사업을 하는 글로벌 기업은 세금 차액을 본사(모회사) 소재국 등에 내야 한다. 글로벌 기업이 자국에 본사를 두고 세율이 낮은 다른 나라에 자회사를 설치해 조세를 회피하는 ‘꼼수’를 차단하려는 게 목적이다. 적용 대상은 연결 매출액 7조5000억 유로 이상의 글로벌 기업이다. 예컨대 한 기업이 최저한세율보다 실효세율이 높은 나라에 본사를 두고 실효세율 7%인 저세율국에 자회사를 차릴 경우 최저한세율 15%에 미달하는 8% 만큼의 세액은 본사가 있는 국가에 내야 한다는 뜻이다. 반대로 자회사는 실효세율이 최저한세율보다 높은 나라에 뒀지만 본사를 저세율국에 차릴 경우 최저한세율에 미달하는 세액을 자회사가 있는 나라에도 내야 한다.

필라2가 도입되면 글로벌 기업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 사업을 하더라도 최저한세율 이상의 세금은 반드시 납부하게 된다. 낮은 세율을 무기로 글로벌 기업을 유치하던 일부 국가는 투자 매력을 상당 부분 잃는다. 때문에 바베이도스 등 조세 피난처로 거론되는 국가가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국내 법인세율 최고세율이 25% 수준인 만큼 최저한세율에 따른 법인세 인상 등의 영향은 없다. 한국에 본사를 두고 저세율국에 자회사를 둔 기업들로부터 세금을 더 걷게 돼 세수 증대 효과가 생긴다. 정정훈 기재부 소득법인세정책관은 “한국에 고정 사업장이 없어서 국내에서 큰 매출이 발생해도 과세가 어려웠던 거대 글로벌 디지털 기업, 즉 구글이나 애플에 대한 추가 과세권 확보가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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