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들어 가계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서민들의 주름살이 깊어지는 가운데 국내 금융그룹들이 돈놀이로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가계들이 빚더미에 짖눌려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마당에 은행권이 어마어마한 이익을 냈다는 것은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라는 최악의 위기 상황을 맞아 과도한 이자놀이로 서민들의 지갑을 탈탈 털어가는 게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7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국내 5대 금융그룹의 상반기 순이익이 9조3532억원을 기록했다. 이미 지난해 이들 금융그룹의 전체 당기순익(약 13조3400억원)의 70%를 넘어섰다. 국내 금융 역사에서 은행그룹들이 이처럼 엄청난 이익을 낸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다. 올해 상반기 KB금융지주의 순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4.6% 늘어난 2조4743억원을 기록했다. 하나금융지주의 상반기 순익은 전년보다 30.2% 증가한 1조7532억원이고, 우리금융지주의 순익은 무려 114.9%나 급증한 1조4000억원에 이른다. NH농협금융지주 순익 역시 지난해보다 40.8%나 증가한 1조2819억원에 달했다. 특히 농협금융은 농협중앙회에 농업지원사업비 2230억원을 내기 전 상반기 순이익이 1조4376억원에 이른다. 1분기 1조1118조원의 순익을 올렸던 신한금융지주는 2분기에도 호조를 보여 상반기 순익은 전년보다 35.4%나 증가한 2조4438억원에 이른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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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금융그룹의 화려한 실적은 주력인 은행 영업이 호조를 보인 데다 증권, 보험, 캐피털 등 비은행 부문에서도 괄목할만한 성과를 낸데서 비롯됐다. 은행 부문의 경우 KB국민은행의 상반기 순이익은 전년보다 14.1% 늘어난 1조4226억원이고, 우리은행도 지난해보다 88.7% 늘어난 1조2793억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각 금융그룹의 이익이 대폭 증가한 데는 확실한 예대마진을 등에 업은 이자수익, 즉 이자놀이가 핵심 역할을 했다. KB금융의 상반기 순이자 이익은 전년보다 15.3% 증가한 5조4011억원을 기록했다. 하나금융은 핵심 이익 4조5153억원 가운데 72%인 3조2540억원이 이자이익이었다. 우리금융 역시 이자이익이 3조3226억원으로 지난해보다 13% 증가했다. 농협금융의 이자이익은 전년보다 6.3% 늘어난 4조1652억원이다. 다른 금융지주와 달리 예대금리차를 반영한 순이자마진 하락세가 계속됐지만 대출자산이 지난해 말보다 6.5%(18조8000억원) 급증해 이자이익을 끌어올렸다. 신한금융의 이자이익 역시 지난해보다 8.3% 늘어난 4조3564억원을 기록했다.

금융그룹들의 실적을 표면적으로만 보면 국내 은행들이 그만큼 장사를 잘 했다는 의미지만, 톺아보면 힘없는 가계와 중소기업을 상대로 돈놀이를 통해 ‘땅 짚고 헤엄치는’ 식으로 돈을 벌었다. 경쟁력 향상이나 첨단 금융기법 개발 없이 주로 개인과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이자 따먹기를 했으며 위험부담이 없는 부동산 담보대출을 통해 거대한 수익을 올렸다는 얘기다.

은행들은 하반기에도 실적 호조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대출 담보비율이 90% 안팎이어서 부실 우려가 적은데다 한국은행이 공언한대로 연내 금리를 올릴 경우 막대한 이자이익 증가가 예상된다. 은행들은 이미 다투어 대출 금리를 올리고 있다. 시중은행의 대출금리는 1년 새 1%포인트 가까이 뛰었다. 정부가 지난해 10월 이후 대출 죄기에 나서면서 은행들은 우대금리도 0.5%포인트 이상 깎았다.

반면 서민들의 가계부채는 폭발적으로 불어나는 추세다. 지난 3월 말 기준 금융권의 가계대출 잔액은 2019년 말보다 10.7% 늘어난 1666조원에 이른다. ‘빚투’ ‘영끌’을 통한 주택 매매와 전세 거래 관련 대출에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생활자금 수요, 주식·가상화폐 투자 수요 등이 몰리면서 가계부채는 큰 폭으로 증가했다. 자영업자 대출은 3월 말 831조8000억원으로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 말보다 18.8%가 불어났고 중소기업 대출은 3월 말 현재 655조원으로 2019년 말에 비해 20%나 급증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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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판국에 한은이 연내 금리 인상을 예고한 상태여서 서민들의 금리 부담은 더욱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한은이 금리를 올릴 때마다 은행은 예금금리는 찔끔 올리고 대출금리는 큰 폭으로 올려 소비자들에게 부담을 전가해 온 탓이다. 우리은행은 한은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릴 경우 1750억원 규모의 이자수익 증가 효과를 추정했다. 자산 규모가 큰 KB금융이나 신한금융, 하나금융의 이익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은에 따르면 가계대출의 경우 변동금리 대출이 72% 정도임을 감안할 때 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가계의 이자 부담은 11조 8000억원, 자영업자의 이자 부담은 5조 2000억원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한은이 금리를 인상하면 시중 금리가 따라 오르는 만큼 소득이 변변치 않거나 매출이 부진한 자영업자, 중소기업, 가계는 한계 상황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일부 수출 대기업을 제외한 기업 전반이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이들 상대 돈놀이로 막대한 이익을 내는 은행권의 행태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크다. 물론 은행도 자선기관이 아닌 만큼 직원들의 월급도 줘야 하고 법인세도 내고 있다. 하지만 사실상의 독점구조 속에서 손쉽게 막대한 이익을 취하는 금융그룹들은 코로나 위기 국면에서 민생의 고통을 덜기 위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우석진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 우리 경제 전반이 수출을 빼고는 다 어렵다”며 “가계와 기업 등 힘겨운 금융 소비자들을 상대로 이자와 수수료 등 금융중개로 엄청난 이익을 냈다는 것에 국민들은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코로나 위기로 모든 국민이 고통을 겪고 있는데 제조업도 아닌 자금 중개기관인 금융기업들이 막대한 이익을 냈다는 것은 국민을 상대로 폭리를 취했다는 의미”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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