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 삶이 어렵다는 지표가 또 나왔다. 이번엔 정기적금이다. 액수는 줄고 해지건수는 늘고 있다.

정기적금이 투자수단으로서 매력을 잃은 점도 있지만 가계 살림살이가 어려워진 이유도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경제상황이 어렵다는 징후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올해 7월과 8월의 전년 동월 대비 취업자수 증가폭은 각각 5000명, 3000명에 그쳤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올해 1~8월 월평균 실업자 수는 1999년 이후 가장 많은 112만9000명이었다. 같은 기간 실업급여 지급액도 4조5147억원(잠정치)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9017억원(25.0%) 늘어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고용은 막혔는데 물가는 올랐다. 특히 생활과 밀접해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생활물가지수와 채소류 상승폭이 심상치 않다. 통계청이 공식적으로 산출하는 9월 생활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1.2%, 전년 동월 대비 2.2% 상승했다. 9월 채소류 가격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12.4%, 곡물가는 12.0%, 석유류 가격은 10.7% 올랐다.

일자리가 없어 소득이 주는데 생활물가는 올라 가계는 더 가난해졌다. 올해 2분기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순자금 운용액은 직전 분기보다 5조9000억원 줄어든 11조원으로 집계됐다. 가계의 순자금 운용액은 곧 각 가정이 쓸 수 있는 여윳돈을 뜻한다.

가계는 여윳돈이 부족하니 정기적금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정기적금은 오랜 기간 납입하고 혜택은 당장에 나타나지 않지만 안정성이 크고 장기적으론 확실한 보상을 해준다는 점에서 미래투자수단으로 분류된다. 정기적금을 깨는 건 지금 당장 버티기 어렵다는 걸 말해준다.

국회 정무위원회 바른미래당 이태규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아 공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5월 사이 시중은행에서 개인·개인사업자 명의의 정기적금을 중도 해지한 건수는 556만4420건, 금액은 14조62억원이었다. 이 의원은 “예·적금과 보험 해약 건수가 지속 증가하는 것은 서민 가계가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정기적금 잔액도 중도해지 건수와 같은 흐름을 보였다. 8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말 예금은행의 정기적금 잔액은 32조4449억원이었다. 작년 말보다 1조8017억원 감소한 규모로 잔액 기준으로 보면 2012년 4분기(32조1680억원) 이후 최소다.

정기적금 인기가 떨어진 건 어려운 경제상황뿐만 아니라 저금리 기조 영향도 있긴 하다.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지난해 11월까지 사상 최저인 연 1.25%에 머무른 데다 최근까지도 1.50%에 그쳐 적금 금리는 2%를 채 넘지 못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예금은행 정기적금(신규취급액 기준) 가중평균금리는 2분기 연 1.83%로 2013년(3%)과 비교하면 확연히 낮다.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