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조사비는 많은 이들에게 준조세로 인식되는 경비다. 규모가 큰 민간 기업에 다니는 이들의 경우 매주 경조사비 지출을 감수해야 한다. 지출액도 물가 상승에 비례해 커져 요즘은 건당 10만원이 일반화돼 있다. 더구나 특급호텔 결혼이라면 밥값도 안 되는 돈을 부조하기가 민망해 봉투만 대신 전달하고 불참한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공무원 사회에선 오래 전부터 직급에 따른 액수가 내부적으로 정해져 있어 비교적 그 부담이 줄었지만, 민간인들 사이에선 여전히 경조사비 거품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사진 = 연합뉴스TV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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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부담을 느낀다지만 나름의 장점도 갖고 있는 게 경조사비 수수 문화다. 집안 대사를 치를 때 발생하는 일시적 부담을 상당 부분 덜어줌으로써 일종의 보험 역할을 해준다는 점이 대표적 장점이다.

실제로 31일 서울시립대 경제학부의 손혜림-송헌재 두 교수는 경조사비 수수 문화가 사회적 보험 성격을 지녀왔다는 사실을 입증해주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이들은 최근 10년 간 경조사를 치른 가구를 대상으로 경조사비 지출과 회수 실태를 확인한 뒤 이를 정리한 논문 ‘재정패널을 이용한 우리나라 가구의 경조사비 지출과 경조사 수입 간의 관계 분석’을 작성해 발표했다.

이 논문은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취합한 2007~2016년 재정패널 자료를 이용해 각 가구의 경조사비 지출과 수입을 모니터링한 결과를 담았다.

논문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경조사를 치른 가구는 그동안 지출한 경조사비 이상을 회수했다. 10년간의 누적액을 조사한 결과 경조사 수입이 있는 가구는 전체의 37.3%였으며, 이들 가구는 평균 955만원을 지출하고 1523만원을 거둬들였다.

이들과 달리 전체 가구의 61.3%는 10년 간 경조사비 수입이 없으면서도, 평균 734만원을 경조사비로 지출했다.

연구팀은 이 같은 자료를 토대로 물가 수준을 고려하면서 10년 누적 경조사비 지출이 1만원 늘어날 때 같은 기간의 누적 수입액이 얼마인지를 따져봤다. 그 대상은 결혼식이나 장례식을 치름으로써 경조사비 수입을 거둔 가구로 한정했다. 그로써 누적 경조사비가 1만원 늘어나면 경조사비 수입은 9880원 늘어난다는 결론을 얻었다.

연구팀은 이 같은 결과를 두고 우리사회에서 지출된 경조사비는 경조사를 치르게 되면 완전히 회수 또는 보전된다는 해석을 내놨다. 경조사비 수수 문화가 큰 지출이 필요한 시점에 소득에 악영향을 미치는 비용 부담의 위험을 완화하는 보험으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또 경조사비 수수 문화가 단순한 사회적 약속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비교적 놀라운 결과라고 평가했다.

연구팀은 그러나 최근 들어 공동체 의식이 희미해지고 있고, 결혼에 대한 생각이 변하는 등의 세태 변화로 인해 경조사비의 ‘완전 보험’으로서의 기능이 약화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예를 들어 결혼 연령이 늦어지고 수명이 길어지면서 경조사비의 지출과 회수 시점에 큰 차이가 날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비혼 인구가 늘고 개개인이 속한 공동체 범위가 넓어지면서 소속감이 희미해져 지출한 경조사비를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도 커질 수 있다고 연구팀은 지적했다.

연구팀은 이를 종합해 앞으로는 경조사비 수수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는 문화로 남을 수 있음을 경고했다. 동시에 과도한 경조사비 지출이 소비를 방해할 수 있음을 들어 그 부담을 줄여주려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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