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이 기준금리 인하 쪽으로 기울었다. 5일 현재 상황에서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거의 없다. 다만 시점과 인하 폭을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을 뿐이다.

한은의 통화정책 기조는 지난 달 18일 기준금리를 전격 인하함으로써 보다 뚜렷이 부각됐다. 시장이 8월 30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 시선을 모으고 있는 동안 한은은 이날 선제적으로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이로써 한은이 예상보다 적극적으로 완화적 스탠스를 취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지난 달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한 직후 한은이 보도자료를 통해 밝힌 ‘통화정책 방향’에서도 그 같은 기류를 읽을 수 있다. 한은은 금융안정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성장세가 완만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수요 측면에서의 물가 상승 압력이 낮은 수준에 머물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통화정책의 완화 기조를 유지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비록 ‘금융안정’이란 단서가 붙긴 했지만 이는 원론적인 수준의 수사로 보는 게 타당할 듯 싶다. 큰 줄기는 그 다음에 기술된 ‘완화 기조’였던 것으로 풀이된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이주열 한은 총재의 최근 발언도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 총재는 미국이 기준금리를 2.00~2.25%로 0.25%포인트 내린 직후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금리 추가 인하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는 그 가능성을 묻는 질문이 나오자 “경제상황이 나빠지면 어떻게 통화정책으로 대응할지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조치와 관련해서는 “시장의 예상보다는 덜 완화적이었다”는 평가를 내렸다. 미국의 금리 인하 흐름이 가파르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하면서 대비 태세를 갖추고 있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발언이었다. 이 발언 또한 통화정책이 지금보다 완화적으로 전개돼야 한다는 인식을 은연중 내비쳤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일본이 대한(對韓) 수출 규제 2단계 조치에 돌입한 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는 9월부터 마지막으로 남은 3000억 달러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10%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힌 점 등도 한은의 금리 인하를 자극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들 악재로 인해 국내 경기가 더욱 얼어붙는 상황에 대비하려면 확장적 재정정책과 함께 통화정책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물가 흐름 역시 금리 인하 기조를 뒷받침하고 있다. 현재 국내 소비자물가는 7개월째 0%대 상승률(전년 동월비)에 머물며 한은의 안정 목표선인 2.0%에서 크게 멀어져 있다.

한은의 금리 인하가 예정보다 앞당겨짐에 따라 추가 인하 시점에 대한 전망에도 다소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초 시장에서는 한은이 8월 말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일차로 금리를 내린 뒤 11월의 올해 마지막 금통위에서 추가 인하를 단행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사진 = 연합뉴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사진 = 연합뉴스]

하지만 한은이 지난 달 금통위에서 서둘러 금리를 내림으로써 추가 인하 예상 시점도 조금씩 앞당겨졌다. 대체적인 전망 시점은 8월 또는 10월 금통위다. 물론 올해 마지막 금통위 회의 시점인 11월을 주목하는 시각도 여전히 존재한다. 올해 금리 문제를 다룰 금통위 회의는 8월과 10월, 11월에 차례로 열린다.

민간 경제연구기관들은 특히 일본의 수출 규제 강화로 우리의 성장률이 0.5%포인트 안팎 감소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는 대개 반도체 수출이 10% 정도 줄어들 것을 전제로 한 전망치다. 일본의 규제 범위가 전방위적으로 확장될 경우 부정적 영향은 더욱 심대하게 나타날 수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우리 통화정책이 보다 더 선제적으로 시행될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하반기에 2%대 초반 성장을 이어가려면 75bp(0.75%포인트)의 추가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현재 정부가 재정정책을 동원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필요한 추가 인하폭은 0.50%포인트 정도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금리 추가 인하 시점으로는 8월 30일 금통위를 지목했다. 이후엔 상황 변화에 따라 금리 인하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메리츠종금증권의 윤여삼 연구원은 일본의 수출 규제로 우리 경제가 타격을 입을 경우 한은의 금리 추가 인하가 10월에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그는 올해 4분기에 이어 내년 상반기에도 한은이 한 차례 더 금리를 내릴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11월 금통위 때 금리 인하 조치가 내려질 것이란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이 때 한은이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수정 제시하면서 동시에 금리를 내릴 것이란 얘기다. 한은은 지난달 18일 금통위 때도 금리 인하를 결정하면서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보다 0.3%포인트 낮춘 바 있다.

이처럼 시장 전문가들은 폭과 시점에서 이견을 드러내면서도 올해 안에 금리 인하가 추가로 이뤄진다는 것에 대해 의견일치를 보이고 있다. 한은으로서도 부동산 시장 불안과 금융안정 훼손 가능성을 우려하면서도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대형 악재들로 인해 완화적 스탠스를 취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6일 공개되는 7월 금통위 의사록은 향후 한은이 취할 통화정책의 방향을 가늠하는데 참고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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