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수출 규제가 전국민적 관심사가 된 지 오래다. 수출 규제는 지난 6월 일본 언론들의 보도로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한 이래 두 달여 동안 국내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로 부상했다.

하지만 일본의 진짜 규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시각이 많다. 일본이 아직은 간보기 단계로서 자국내 여론은 물론 국제 여론, 그리고 한국의 반응 등을 살피며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게 대체적 관측인 듯하다.

수출 규제 이슈는 앞으로 장기간에 걸쳐 가장 큰 관심사로 자리매김할 것이 확실시된다. 이를 반영하듯 언론에서는 일본의 수출 규제와 관련된 크고 작은 뉴스를 시시각각 쏟아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각종 생소한 용어들이 자주 등장해 난해한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다. 일본의 수출관리상 법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 역시 이번 사태를 제대로 이해하는데 장애가 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이번 기회에 일본의 수출관리와 관련한 제도 및 법령 등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지난 달 1일 일본은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의 첫 포문을 열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수출관리 당국인 경제산업성(경산성)이 수정된 수출무역관리령 운영조치를 발표한 것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도쿄무역관 보고서에 따르면 그 내용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수출관리상 한국을 화이트국가 리스트에서 제외한다는 것이었다. 화이트국가는 일본이 안보상 우방이라 여기는 27개국을 지칭한다. 경산성은 이들에 한해 3년에 한번 심사받는 것을 전제로 건별 수출 심사를 면제해주었다. 이들에게 수출관리상 최혜국 대우를 해준 것이다. 한국은 규제 조치 이전까지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화이트국가 리스트에 올라가 있었다.

경산성은 이날 한국을 화이트국가 그룹에서 배제하기 위해 수출무역관리령 개정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수출무역관리령은 일본의 법령 체계상 정령(政令)에 해당한다. 정령은 우리의 시행령에 해당하므로 의회 승인 없이 각의 의결로 개정이 가능하다.

이날 발표된 내용 중 두 번째는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제조에 필요한 세 개 소재를 포괄허가에서 개별허가 대상으로 변경 지정한다는 것이었다. 불화수소와 불화폴리이미드, 레지스트가 그 대상이었다.

이 조치를 실행할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경산성은 통달(通達)인 ‘수출무역관리령의 운용에 대하여’를 수정하기로 했다. 통달은 일본의 법령 체계에서 최하위에 위치하는 것으로서 우리의 훈령에 해당한다. 훈령(Official Notice)은 상급 기관이 하급기관이나 소속원들에게 발하는 명령으로서 각의 의결 등의 제한을 받지 않고 곧바로 시행된다.

[그래픽 = 코트라 도쿄무역관]
[그래픽 = 코트라 도쿄무역관]

일본이 지난 달 1일 위의 두 가지 내용을 발표하면서 불화수소 등 세 가지 소재에 대한 수출 규제를 사흘 뒤인 4일부터 실행한다고 밝힌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일본이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공포한 이달 7일 개별허가 대상 품목을 한건도 추가 지정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도 통달을 통한 것이었다. 이날 발표된 통달은 ‘포괄허가 취급요령’이었다.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와 관련된 통달엔 네 가지가 있다. 앞에서 언급된 ‘수출무역관리령의 운용에 대하여’와 ‘포괄허가 취급요령’은 그 넷에 포함된 것들이다.

일본의 수출관리와 관련된 법령 체계를 일별하면 크게 다섯 가지로 정리된다. 최상위에 있는 법률은 ‘외국환 및 외국무역법’이다. 그 하위 법령으로는 정령, 성령(省令), 고시, 통달 등이 있다.

이 중 정령은 내각령에 해당한다. 굳이 우리와 비교하자면 대통령령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한국법제연구원이 발간한 ‘일본의 법령체계와 입법절차상 법령심사 기준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정령의 제·개정은 내각 법제국의 심사와 각의 의결을 거친 뒤 주무 국무대신의 서명과 총리 연서를 필요로 한다. 공포는 일왕이 하게 되어 있다. 정령이 법률과 같은 격으로 취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성령은 각 성(경제산업성 등)의 장이 공포하는 것으로서 우리의 부령(部令)에 해당하고, 고시는 공적 결정 사항을 알리는 일이나 그 형식을 지칭한다. 고시를 발령할 수 있는 이들은 국무대신 및 각 성의 장관 등이다. 통달은 앞서 설명한 대로 행정기관이 발하는 명령을 의미한다. 통달은 일본의 법령체계 상 최하위에 자리하고 있지만 가장 흔히 활용되는 수단이다.

이상의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일본의 수출 규제를 전망하자면 향후 경산성은 통달 수정을 통해 수시로 한국 기업들을 옥죌 것으로 보인다. 그때 그때 국제 여론 동향 등을 판단해가며 필요할 때마다 자신들이 원하는 만큼 수출 규제 강도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연장선에서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이 통달 수정을 통한 개별허가 품목 지정이다. 지난 7일 통달 발표 당시에는 없었지만, 개별허가 대상 품목은 주무 부서인 경산성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수량 제한 없이 지정할 수 있다.

우리 정부와 기업이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 만반의 대비태세를 갖춰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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