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75% 수준에서 유지키로 결정했다. 9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회의를 통해서였다. 기준금리를 한꺼번에 0.5%포인트 인하한지 한 달도 되지 않은데다 2주 전엔 환매조건부채권(RP) 무제한 매입이라는 보기 드문 유동성 공급방안을 내놓았으니 일단 그 효과를 살펴보겠다는 것이 한은의 의도인 듯하다.

이번 결정은 시장의 예상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시장은 진작부터 한은이 금리 동결 외에 내놓을 유동성 공급 카드에 주목해왔다. 물론 한은이 다음 달 금통위 회의까지는 숨고르기를 한 뒤 그 다음에 열리는 7월 통화정책 회의에서 또 한 차례 금리를 내릴 가능성을 점치는 의견도 나온다. 6월은 통화정책 논의를 위한 금통위 회의가 없는 달이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모습. [사진 = 한국은행 제공/연합뉴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모습. [사진 = 한국은행 제공/연합뉴스]

하지만 대체적인 관측은 한은이 당분간 지금의 금리 수준을 유지하면서 비전통적 방식의 유동성 공급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는데 모아져 있다.

이날 한은이 금리 동결을 선택한 배경엔 여러 요인이 자리하고 있었다. 우선 앞서 언급했듯이 연거푸 내놓은 유동성 공급 대책의 효과를 일단 지켜볼 필요성이 있다는 금통위원들의 판단이 작용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아직 단정할 수는 없지만 우한 폐렴(코로나19) 팬데믹이 정점을 지나고 있을지 모른다는 의견이 중국은 물론 유럽이나 미국 등으로부터 조금씩 제기되고 있는 점도 현상 유지 결정을 자극했을 가능성이 있다.

국내에서 채권시장 및 증권시장 안정을 위해 기획된 펀드들이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간다는 점도 한은으로 하여금 ‘일단 관망’ 쪽을 선택하도록 유도했을 것으로 보인다.

금통위원 4명이 이번 회의를 끝으로 물러난다는 점 또한 한은의 보수적 행보를 유도하는 요인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이들이 물러나는 마당인 만큼 모험적 결정을 내리기보다는 후임자들에게 운신의 여지를 남겨두는 쪽을 택했을 것이란 의미다. 한은 금통위원의 임기는 4년이다.

이날 금리 동결을 결정했지만 한은은 상황을 지켜보며 추가 대책을 고민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방향을 두고는 다소 의견이 갈린다. 큰 갈래는 한은이 기준금리를 현 수준에서 유지하는 가운데 사실상의 양적완화 정책을 쓸 것이라는 의견과 기준금리 인하와 함께 별개의 유동성 확대 정책을 구사하리라는 의견 등 두 가지다.

기준금리 인하를 점치는 의견의 논리적 근거 중 하나는 올해 우리 경제성장률이 현행 기준금리 수준을 밑돌 것이라는 전망이다. 기준금리가 성장률보다 높은 현상이 유지되는 것은 부자연스럽기 때문에 한은이 금리 인하를 단행하게 될 것이란 뜻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도 이날 금통위 회의가 끝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올해 성장률이 1%에 못 미칠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 총재는 “기본 시나리오 가정 하에 국내 경제는 금년에 플러스 성장을 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1%대 성장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예상되는 시나리오대로 경제 상황이 전개될 경우라야 0%대 성장이 가능하리라는 메시지를 에둘러 표현한 셈이다. 그가 말한 시나리오 속엔 2분기 중 코로나19 팬데믹이 진정 국면에 들어간다는 전제도 포함돼 있다.

결국 이 총재의 말을 거꾸로 풀이하자면 상황에 따라 올해 우리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준금리 추가 인하 가능성에 대해서는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열어둔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 총재는 지난 달 기준금리를 크게 내림으로써 통화정책 운용의 여력이 줄어든 점을 인정하면서도 “실효하한이 가변적임을 생각하면 금리 여력은 남아 있다”고 말했다. 아직 금리정책의 실탄이 완전히 소진된 것은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실효하한이란 물가 폭등 등 큰 부작용 없이 긍정적 효과를 내기 위해 기준금리를 내릴 수 있는 경계선을 의미한다. 이 총재의 실효하한 발언은 미국의 기준금리가 현재 사실상의 제로금리(0~0.25%) 상태에 있음을 염두에 두고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예를 들어 미국의 기준금리가 향후 우리보다 높은 수준으로 올라간다면 우리나라에서 외화 유출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도 기준금리를 올려야 한다. 실효하한 자체가 올라간다는 점이 그 이유다.

이 총재는 유동성 공급을 위한 추가 방안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 대안은 증권사 등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한 특별대출을 실시하는 것이다. 우량 회사채를 담보로 증권사에 대출을 해주는 제도를 한시적으로 운용한다는 것이 골자다. 이를 통해 회사채 시장을 안정시켜 기업들의 자금 조달을 돕겠다는 취지다. 이 총재는 현재 이 문제를 놓고 정부와 협의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시장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한은이 자산 확대를 통해 유동성 공급을 늘리는 방안을 마련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한은이 국채를 대거 사들이는 방식의 양적완화에 나설 필요성을 느끼게 될지 모른다는 얘기다.

방법이 무엇이든 시장에서는 한은이 앞으로도 추가 유동성 확대 방안을 제시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미국이나 유럽국가 등 주요국들이 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낮춘 가운데 대규모 양적완화 정책을 병행하고 있는 점이 그 같은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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