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연간 소비자물가가 2년 연속 0%대 상승 행진을 이어갔다. 상승률이 지난해 0.4%를 기록한데 이어 올해엔 0.5%에 머물렀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965년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후 2년 연속 0%대 성장률을 보인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그마저 0%대 중반 이하의 상승률이 이어졌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수치라 할 만하다.

통계청은 31일 발표한 ‘12월 및 연간 소비자물가동향’을 통해 올해 소비자물가지수가 105.42(2015년을 100으로 잡음)를 기록, 전년 대비 0.5% 상승했다고 밝혔다. 지난해의 연간 상승률보다 0.1%포인트 높은 수치다.

지금까지 우리의 연간 소비자물가가 0%대를 기록한 적은 4번에 불과했다. 저유가와 경기 부진이 겹쳤던 2015년(0.7%), 외환위기 여파에 시달렸던 1999년(0.8%) 등이 그에 해당한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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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경우 코로나19 유행이 직접적 원인으로 작용했다. 지난해 이래 세계적 경기 부진이 지속된 데다 감염병이란 새로운 악재까지 더해진 것이 저물가 기류를 더욱 고착시켰다.

올해의 저물가 기류를 주도한 세부 요인으로는 석유류 가격과 공공서비스요금의 하락을 꼽을 수 있다. 올 한해 석유류 가격은 국제유가 하락에 의해 7.3% 떨어졌고, 공공서비스요금은 정부의 적극 개입으로 1.9% 하락했다. 코로나19 팬데믹 탓에 외식이나 여가활동이 위축되면서 개인서비스 요금의 상승도 크게 억제됐다.

소비자물가의 주요 구성축인 상품과 서비스 가격의 상승률은 각각 0.9%와 0.3%로 집계됐다. 상품 가격 상승을 주도한 것은 농축수산물(6.7%)이었다. 올해 농축수산물 가격 상승률은 2011년 9.2% 상승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농축수산물 중에서도 배추(41.7%)와 양파(45.5%), 고등어(12.8%), 돼지고기(10.7%) 등의 가격이 특히 많이 올랐다.

공업제품 가격은 0.2% 하락했다. 세계 경기 부진이 몰고온 국제유가 하락 탓에 석유류 가격이 크게 내린데 따른 영향이다. 도시가스가 내린 덕에 전기·수도·가스료도 1.4% 내려갔다.

서비스 가격은 상품에 비해 더 낮은 상승률(0.3%)을 보였다. 개인서비스 가격이 1.2% 상승했지만 이 역시 11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중 집세는 0.2%(전세 0.3%, 월세 0.1%)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서비스 가격 하락을 주도한 부문은 공공서비스였다. 공공서비스 가격은 정부 정책 의지가 크게 작용하면서 1.9% 하락했다. 이 역시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저 수준이다.

올해 근원물가도 보기 드물게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근원물가는 전반적인 소비자물가보다 다소 높은 0.7% 상승률을 보였지만 1999년 0.3% 이후 가장 낮았다. 근원물가는 계절적 요인이나 일시적 변수에 의해 큰 폭으로 등락하는 농산물이나 석유류 등을 제외하고 산출한 기조 물가를 말한다. 물가 흐름의 본류를 보여주는 물가라 할 수 있다.

어류와 조개, 채소, 과실 등 기상 변화에 민감한 50개 품목을 따로 묶어 산정하는 신선식품지수는 올 한 해 동안 9.0% 상승했다. 이는 2010년(21.3%)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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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감물가를 보여주는 생활물가지수는 지난해보다 0.4%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상승률 자체는 크지 않았지만 이 수치는 2018년(1.6%) 이후 가장 높게 나타났다. 지난 2년간 생활물가가 그만큼 낮게 유지됐음을 보여준 셈이다.

저물가 현상의 이례적 장기화는 디플레이션 가능성이 커졌다는 우려를 낳기 십상이다. 이에 대해 한국은행은 일단 부정적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이달 중순 있었던 비대면 기자간담회에서 지속적인 저물가 현상에 대해 언급하면서도 현 상황이 디플레이션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 총재는 지금의 저물가 원인으로 코로나19로 인한 수요측면의 물가 상승 압력 저하, 국제유가 하락, 복지정책 강화에 의한 공공물가 하락 등을 지목했다. 그러면서 이들 세 가지 요인이 내년에는 반대 방향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거론했다. 이 총재는 “내년 물가가 올해보다 더 높아지고 물가상승률이 1%대를 기록한다면 이를 디플레이션으로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플레 도래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특히 우리의 경우 원화가 강세를 지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들 두고 미국 등 주요국들이 자국 화폐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떨어뜨리는 방법으로 사실상 디플레이션을 ‘수출’하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통화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 총재의 전망대로 내년에는 물가가 1%대로 올라설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통화 당국의 분석대로 지금의 저물가가 수요 측면에서 주로 비롯된 특징을 갖는다면 그 기본 전제는 역시 코로나19의 조기 극복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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