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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옥의 나이스한 세상] 대통령과 여당의 주머닛돈이 돼버린 국가 재정
[박해옥의 나이스한 세상] 대통령과 여당의 주머닛돈이 돼버린 국가 재정
  • 박해옥
  • 승인 2021.03.01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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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피터 싱어는 명저 ‘실천윤리학’을 통해 이익평등고려의 원칙이란 걸 제시했다. 그리고 그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지진에 의한 재난 상황을 가정했다. 지진이 일어나 두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는데 고통을 덜어줄 모르핀은 두 개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한 사람은 다리 골절상에 신음했고, 다른 한 사람은 약간의 찰과상만 입었다.

싱어는 이런 상황에서 두 개의 모르핀을 어떻게 사용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인지 물었다. 그리곤 스스로 답하길, 이익평등고려의 원칙에 입각해 행동하자면 골절상을 입은 환자에게 두 개의 모르핀을 모두 투약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만 두 사람이 지닌 고통의 총량이 최소화된다는 게 답변의 주된 논거다.

싱어의 이 자문자답은 우리에게 분배의 정의에 대해 고민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싱어가 말한 모르핀은 재화의 비유적 표현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이익평등고려의 원칙이 추구하는 제1의 가치는 한정된 재화로 사회 전체의 복리후생 수준을 최대한 높이는 것이다. 이 원칙에서 말하는 이익은 그게 누구의 것이든 -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 상관하지 않는다는 점을 전제로 한 개념이다.

이 원칙은 재화의 효율적 사용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 한정된 재화의 낭비를 최소화해야만 사회 전체의 복리후생 크기가 극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 단위로 범위를 넓혀 생각하면 싱어가 말한 모르핀은 국가 재정에 해당한다. 결국 싱어는 이익평등고려의 원칙을 통해 가장 윤리적인 국가 재정 운용 방식을 제시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원칙을 우리사회의 각종 현안에 적용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우선 우리사회에서 달아오르고 있는 재난지원금 논쟁에 이 원칙을 적용해 보면 어떨까. 그 결과 나오는 답은 선별지원일까 보편지원일까. 싱어의 원칙에 따르자면 선별지원이 보다 윤리적인 선택일 수밖에 없다. 그게 사회전체의 복리후생 크기를 효율적으로 극대화할 방안이라는 뜻이다.

이익평등고려의 원칙은 문재인 정부가 재난지원금 지급과 관련해 강조한 ‘넓고 두텁게(두껍게)’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삼고 있다. 사실 ‘넓고 두텁게’는 그 자체로 형용모순이다. 그런 방식은 재정이 화수분일 때나 가능한 일이다. 싱어의 이론은 한정된 재화인 모르핀을 ‘넓게’ 쓰기보다 적소에 ‘두텁게’ 쓸 때 효율성이 가장 높아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게 현실세계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윤리적인 선택이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는 재난지원금을 ‘넓게’ 지원하는데 더 치중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런 기류는 큰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더욱 뚜렷해진다. 더 가관인 건 그 돈을 나눠준다면서 ‘작은 정성’이니 ‘위로’니 하는 말을 쓰곤 한다는 점이다. 국가 재정을 자기 주머닛돈이라 여기지 않고서는 쓸 수 없는 표현들이다.

재난지원금 이상으로 뜨거운 현안이 된 동남권신공항 문제에 싱어의 이론을 적용해보면 어떤 결론이 나올까. 그의 이론대로라면 가덕도신공항 건설은 난센스 중의 난센스다. 사회 전체의 복리후생 수준으로 보나 효율성으로 보나 가덕도신공항 건설 방안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선택지다. 앞의 지진 상황에 빗대어 말하자면 찰과상 환자에게 모르핀을 허비하는 것과 같다. 작은 고통일망정 그것을 완전히 없애주려면 두 개의 모르핀이 모두 소모될 수도 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가덕도신공항 건설은 이미 경제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것도 국제적으로 공신력을 얻고 있는 외국 전문가 그룹이 객관적으로 내린 결론에 따른 것이었다. 이는 재원은 많이 투입되지만 그에 상응하는 부가가치가 창출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투입되는 재화의 양이라도 적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다. 최대한 보수적으로 계산기를 두드렸음직한 국토교통부조차 투입되는 비용이 28조에 이를 것이라 추산했다. 여권 인사들이 걸핏하면 입에 올리는 4대강 사업비 22조를 훌쩍 뛰어넘는 액수다. 그나마 4대강 사업은 여전히 논쟁적 이슈로 남아 있다. 아직 호불호 긍불긍 양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어서이다.

하지만 가덕도신공항 건설은 논쟁적인 주제라고 할 수도 없을 만큼 사방에서 공격을 받고 있는 문제투성이의 이슈다. 문재인 정부의 3개 부처에서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낸 것만 보아도 이 방안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이니 가덕도신공항 건설 추진이 선거용이란 평을 듣는 것 아니겠나.

가덕도신공항 건설은 안전성 및 환경적 측면에서도 낙제점을 받았다. 현행법 기준으로는 온갖 탈·불법을 자행하지 않고서는 이뤄질 수 없는 사업이다. 그러자 여권은 ‘닥치고 건설’이란 특권을 보장해주는 내용의 가덕도신공항특별법을 밀어붙였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이 방안을 주도한 대통령과 여당의 도덕성에 대해서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줏대 없이 어정쩡하게 끌려간 제1야당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가덕도신공항 건설은 재정의 비윤리적 사용의 대표적 사례로 역사에 길이 남을 게 뻔하다. 더욱 우려되는 건 문제가 여기서 끝나지 않으리라는 점이다. 이 일이 선례가 되면 여기저기서 사회기반시설(SOC) 건설 민원이 일어날 수 있다. 재난 시 경미한 찰과상만 입어도 모르핀을 나눠달라는 사람이 도처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다.

이를 과장된 군걱정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상식적인 정치 지도자와 정부를 갖지 못하는 한 그 군걱정은 언제든 현실이 될 수 있다. 정치가보다 정치꾼이 더 득세하는 요즘 세태이고 보면, 그 가능성은 더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