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국가채무가 올해 안에 1000조원을 돌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설마설마 했던 일이 현실로 다가올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정부까지 철칙으로 여겨왔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40%선 수호는 일찌감치 물건너갔고, 그 비율은 이제 50%선마저 위협하고 있다. 야당 시절 정부를 향해 재정 건전성을 강조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 후 “40%의 기준이 뭐냐?”고 질문한 뒤 나랏빚을 마구 늘려온 데 따른 결과다.

정부는 2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총19조5000억원 규모의 맞춤형 코로나19 피해지원 방안을 의결했다. 이 중 15조원은 추가경정(추경)예산을 통해 마련키로 했다. 이는 규모 면에서 지난해의 3차 추경(23조7000억원)과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였던 2009년 추경(17조2000억원) 다음으로 큰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에 코로나19로 인한 난국 타개를 명분으로 내세워 네 차례의 추경을 편성한 바 있다. 그 규모도 하나하나가 역대급이라 할 만 했다. 이번 추경 역시 558조의 슈퍼급 본예산을 편성한지 얼마 되지 않아 결정됐지만 역시 역대급 규모로 짜여졌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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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15조 규모의 추경 중 9조9000억원은 국채 발행을 통해 충당키로 했다. 15조 중 나머지 5조1000억원은 농어촌구조개선특별회계 등 각종 특별회계 세계 잉여금 2조6000억원과 한국은행 잉여금 8000억원, 기금 재원 1조7000억원 등을 총동원해 마련하게 된다.

세계잉여금은 세입과 세출의 차이로 인해 남은 재원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쓰고 남은 돈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예산에 계상하지 않는 만큼 국회 동의 없이 정부가 임의로 사용할 수 있다. 이듬해 세입으로 이월된 뒤 국가채무 상환에 쓰이거나 이번처럼 추경 재원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정부는 대신 이번 추경에서는 지출 구조조정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회계연도가 바뀐 이후 워낙 이른 시일에 추경을 편성하다 보니 현실적으로 지출 구조조정을 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으로 분석된다. 아직은 어느 분야에서 미집행 예산 등이 생길지 판단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의미다. 정부는 지난해의 경우 2차 추경 7조6000억원 중 6조4000억원을, 3차 추경 23조9000억원 중 10조1000억원을 지출 구조조정에 의해 장만했다.

이번 추경으로 국채 발행이 늘면서 국가채무는 965조9000억원으로 증가하게 됐다. 올해 본예산을 기준으로 한 기존의 국가채무는 956조원이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의 역대 정부 누적 국가채무는 도합 660조원이었다. 역대 정부 누계의 절반가량이 문재인 정부 3년 수개월 만에 추가됐음을 알 수 있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도 덩달아 크게 올라간다. 이번 추경이 원안대로 국회에서 확정되면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본예산 기준 47.3%에서 48.2%로 상승한다. 추경으로 0.5%포인트, 올해 GDP 성장률 전망치 하향조정에 따라 0.4%포인트가 각각 추가되는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올해 더 이상의 추경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 추정치일 뿐이다. 지난해처럼 수차례에 걸쳐 추경이 이뤄진다면 그 비율은 50%를 넘어갈 수도 있다. 이럴 경우 국가채무 규모는 올해 안에 1000조원을 넘어갈 가능성이 커진다. 당장 정부는 코로나19 사태가 일단락되면 국민 위로 차원에서 지원금을 나눠줄 의도가 있음을 내비친 바 있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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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더불어민주당의 홍익표 정책위의장은 올해 안에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52~53% 수준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산한 바 있다. 올 한 해 동안에만 국가채무가 100조원가량 늘어날 것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국가채무 상승에 대해서는 곳곳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우리가 기축통화국도 아닌데다 급속한 인구 고령화를 겪고 있다는 점이 그 배경이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만큼 대외 신인도 관리가 남달리 필요하다는 점도 국가채무 비율 상승세를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유가 되고 있다.

재정 관리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또 다른 지표는 통합재정수지다. 이번 추경이 확정되면 우리의 통합재정수지는 89조6000억원의 적자를 보이게 된다. 이를 기준으로 한 GDP 대비 적자비율은 4.5%다. 이마저 정부가 보다 자신 있는 지표를 앞세워 계산한 결과치다. 사실상의 나라 살림살이 솜씨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로 치면 GDP 대비 적자비율은 6.3%까지 올라간다.

하지만 정부는 국제 관례를 들어 보다 유리한 지표인 통합재정수지를 앞세우고 있다. 정부의 그런 입장을 수용한다 하더라도 우리의 통합재정수지는 지나치게 높다고 할 수 있다. 유럽연합(EU)이 회원국들에게 권장하는 건전성의 기준이 3%라는 점을 참고하면 우리의 현주소가 어디쯤에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4차 맞춤형 피해지원대책이 발표된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특히 부채 증가속도가 지나치게 빠른 점을 우려하며 “국가채무비율이 40%대에서 50%대에 이르는 데 2∼3년밖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홍 부총리는 또 “우리와 같은 비기축통화국은 대외신인도 관리가 중요하다”고 전제한 뒤 “비기축통화국 채무비율은 50%를 넘지 않는 수준이라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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