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최근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서 서울시 공시가가 크게 올랐다.…민생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서민 부담이 많아 완충지대가 필요하다.”(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저희가 여러 부동산정책을 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급등한 점 송구하게 생각한다."(홍익표 민주당 정책위의장).

“전월세 신고제가 자리잡지 않은 상태에서 주택임대차보호법을 추진해 전월세 폭등이라는 부작용을 막지 못한 점도 돌아봐야 한다.”(김종민 민주당 최고위원).

여당이 부동산 정책의 오류를 인정하며 연일 반성문을 쓰고 있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천의무봉인 양 고수해 것과 대비되는 행보여서 눈길을 끈다.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의 이면엔 새달 7일 실시되는 재·보궐선거가 자리하고 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2명의 기초단체장과 8명의 광역의원, 9명의 기초의원을 함께 뽑는 이번 선거에서도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서울시장 및 부산시장 보궐선거다. 그런데 이들 두 곳에서의 판세가 만만치 않게 돌아가자 여당이 자세를 낮춘 것으로 보인다. 여당 인사들의 반성문은 유권자들의 불만이 집중된 부동산 정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당 인사들은 선거 유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기자간담회 등을 통해 부동산 정책의 오류를 인정하며 각종 개선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획기적 변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누구도 규제 강화에 의한 수요억제라는 정책의 기본틀은 바꾸려 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대강은 저가 주택에 한해 규제를 일부 완화해주자는 것이다.

공시가 9억 이상의 1주택을 보유한 장기 보유자와 은퇴자에 대한 과도한 규제는 이들의 반성문에서도 언급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징벌적 과세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목표와도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투기와 무관한 이들에게 날벼락 같은 세금폭탄을 가하는 것은 그 저의마저 의심케 한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었다.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는 최근 유세 도중 9억 이하 아파트에 한해 공시가 인상률을 10%로 억제하는 방안을 여당에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중산층과 서민의 세금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것이 발언 취지였다. 박 후보는 이를 위해 자신의 개선안이 담긴 법률 개정안이 4월 국회에서 통과되도록 노력해줄 것을 여당에 건의하겠다고 말했다.

박 후보가 거론한 공시가 9억원은 고가 주택을 가르는 기준선이다. 그 이상의 주택에 대해서는 각종 대출규제가 가해지고, 1주택자라 할지라도 종합부동산세가 부과된다. 공동주택을 기준으로 할 경우 9억 이상 주택이 전국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7%가량이다. 서울에서의 9억 이상 아파트 비율은 16%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박 후보의 약속은 기존의 정부 정책처럼 다수 시민의 심기를 특히 염두에 둔 것이라 할 수 있다.

서울 강남 일대 아파트들. [사진 = 연합뉴스]
서울 강남 일대 아파트들. [사진 = 연합뉴스]

홍익표 정책위의장은 지난 29일 기자간담회에서 장기 무주택자와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에 한해 대출 관련 규제를 완화할 뜻이 있음을 내비쳤다. 무주택자에게 적용되는 총부채상환비율(DTI)과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재조정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현재 투기과열지구와 조정대상지역의 경우 LTV는 9억 이하 주택에 대해서는 40%, 9억 초과 주택엔 20%가 적용된다. 15억이 넘으면 대출 자체가 불가능하다. .

구체적 내용을 제시하진 않았지만 홍 의장은 “대출 규제가 서민과 실수요자 주거사다리 형성에 걸림돌이 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발언 내용을 감안하면 서민용 주택을 구입하려는 이들에게 제한적으로 규제를 완화해주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강성파로 알려진 김종민 민주당 최고위원도 규제 완화를 거론했다. 김 최고위원은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전월세 신고제의 부작용을 인정하면서 부동산에 대한 과도한 과세를 조정할 필요성이 있음을 밝혔다. 그는 세금을 통한 투기 억제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도 “세금은 명분이 옳더라도 국민과 납세자의 동의 위에서 성립된다”고 강조했다. 재건축·재개발을 무작정 막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를 밝히기도 했다.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고가주택의 기준 자체를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민주당 소속의 정순균 강남구청장이 그 주인공이다. 정 청장은 최근 기획재정부에 고가 주택의 공시가 기준을 기존의 9억에서 12억원으로 올려달라고 건의했다. 또 행정안전부에는 60세 이상 1주택자에 대해서는 재산세에도 종부세와 같은 공제율을 적용해야 한다는 뜻을 전했다.

여권 관계자들이 연이어 제도 개선을 주장하는 것을 보면 민주당 내에서 어떤 식으로든 부동산 정책에 대한 손질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기조를 바꾸기보다는 실수요자 대출 규제 완화나 일정 가격 이하 주택에 대한 공시가 인상률 제한 등의 미세 조정이 이뤄질 가능성이 커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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