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반도체 부족 사태가 세계 자동차 업계를 강타하기에 이르렀다. 대개는 손톱만한 크기의 작은 생산품인데다 단가도 그리 비싸지 않아 그 중요성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게 화를 불렀다.

최근의 이런 현상을 압축적으로 말해준 이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월 반도체와 자동차용 배터리 등의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검토를 지시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반도체를 콕 집어 “21세기 편자의 못”이라 표현했다.

편자는 말발굽에 덧대는 쇠붙이를 말한다. 말이 착용하는 일종의 신발에 해당한다. 편자를 말발굽에 부착시키기 위해서는 편자의 구멍에 맞춰 못질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 못이 부족해지면 말에게 편자를 입힐 수 없고 말은 먼 길을 다니지 못하게 된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편자의 발명은 과거 왕국의 영토를 넓히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 당시 못이 없어서 편자가 사라졌더라면 말이 제 구실을 못하게 됐을 것이고, 종국엔 왕국이 멸망하는 사태가 벌어졌을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 같은 비유를 통해 반도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반도체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지난 12일의 백악관 주최 반도체 화상회의로 인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이 회의는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과 브라이언 디스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주재로 진행됐다. 회의에는 세계 굴지의 반도체 제조사들, 포드와 GM 등 미국 자동차 회사, 인텔과 HP 등의 미국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참석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도 이 회의에 초청됐다.

세계 1~2위 반도체 위탁생산업체(파운드리)인 대만 TSMC와 삼성전자는 이날 회의에 참석한 것만으로도 미국 내 반도체 설비 투자 및 생산 증대에 대한 압박을 받았을 것으로 분석된다.

그 같은 분위기를 말해주듯 미국의 자동차 업계는 즉각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백악관이 반도체 부족 문제 해소를 위해 적극 나서준데 대해 환영과 감사의 뜻을 밝힌 것이다.

미국은 현재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2월 서명한 행정명령에 따라 반도체 공급망 확보를 위한 100일 검토 작업에 돌입해 있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가 최근 밝힌 2조 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계획과 연계돼 있다. 이 계획은 미국 전역의 도로와 교량 등 교통인프라와 초고속 통신망 확충, 전기차 충전소 대거 설치 등 전기차 관련 투자를 포함하고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차량용 반도체 부족 사태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자동차 업체들이 수요 예측을 잘못한 데서 비롯됐다. 이로 인해 완성차 업체들은 차량용 반도체 주문량을 줄이기 시작했고, 그 여파로 반도체 생산업체들은 생산라인을 게임이나 가전제품용 반도체 생산용으로 재편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세계적 차량 수요는 줄지 않았고, 완성차 업체들이 다시 반도체 주문량을 늘렸지만 무너진 생산 기반을 당장 되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때맞춰 발생한 미국 텍사스주 한파와 일본 파운드리 업체의 화재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지난 겨울 텍사스주를 휩쓴 한파는 그곳에 반도체 생산공장을 갖고 있는 삼성전자에도 피해를 안겨줬다. 삼성전자 외에 인피니언 등 현지 반도체 공장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사진 =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제공/연합뉴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사진 =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제공/연합뉴스]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은 이미 공장 가동을 중단하거나 생산량을 줄이는 조치에 돌입했다. 미국의 포드와 독일 폭스바겐, 일본의 도요타와 혼다 등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들 업체는 올해 초부터 일부 공장의 문을 닫는 등의 방법으로 생산량을 조절하고 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 쌍용, 한국GM도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 한국GM은 지난 2월부터 부평2공장 가동을 절반으로 줄였고, 자동변속기를 만드는 보령공장에서는 휴업 등의 조치가 이뤄졌다. 현대차는 지난 7일부터 울산1공장 가동을 일주일간 중단했고, 12~13일엔 아산공장도 문을 닫도록 조치했다. 현대차는 현재 인기 차종 생산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기아는 지난달부터 공장별로 특근을 줄였으며, 이달 들어서는 화성공장과 광주1공장의 특근을 없애기로 했다. 지난 2월 이미 한차례 홍역을 치른 쌍용차는 이달 8~16일 평택공장 가동을 멈추기로 결정했다.

업계에서는 자동차용 반도체 부족 사태가 최소 3분기까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가 당장 설비를 갖춰 생산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비메모리가 주를 이루는 차량용 반도체의 경우 생산업체들이 보통 10년 주기에 맞춰 생산설비를 갖추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는 반도체 강국으로 평가받지만 메모리 반도체를 주로 생산해온 데다 특히 차량용 반도체 생산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메모리 부품에 비해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점 등이 고려된 결과였다.

글로벌 시장정보 업체인 IHS마켓은 반도체 부족 사태로 인해 올해 1분기 중 전세계 자동차 생산량이 100만대 정도 감소했을 것으로 추산했다. 일본 노무라증권이 추산한 생산 감소는 160만대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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