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TSMC와 삼성전자, 미국 인텔이 글로벌 반도체 시장을 둘러싸고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 기업인 TSMC가 내년 3㎚급 반도체 양산을 목표로 설비 구축에 들어가며 먼저 치고 나가자 삼성전자가 내년 양산 계획을 밝히며 이를 뒤쫓고, 미국 인텔이 초미세 공정 반도체 생산 로드맵을 공개하면서 경쟁에 가세했다. 이들 중 가장 먼저 가격 경쟁력과 균질한 성능을 갖춘 3㎚급 반도체를 양산하는 업체가 세계 파운드리 시장을 거머쥘 것으로 예상된다. ‘나노’(1㎚=10억분의 1m)는 반도체 회로 선폭의 단위로 선폭이 미세할수록 반도체 성능은 올라가고 전력 효율도 좋아진다.

대만 정보기술(IT) 전문매체 디지타임스(digitimes) 등에 따르면 TSMC는 지난 4일 대만 남부 타이난(臺南)에 있는 ‘팹(공장)18’ 3㎚급 공정 설비 증축에 나섰다. 팹18은 TSMC가 5나노급 반도체를 양산하고 있는 곳이다. 팹18의 8개 라인 중 4개 라인은 5나노급 반도체를, 나머지 4개 라인은 3나노급 반도체를 생산할 계획이다. TSMC는 애플을 비롯해 퀄컴·엔비디아·AMD 등을 주요 고객으로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과 함께 3나노급 제품 테스트를 시작해 내년 하반기에 이를 양산할 예정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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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MC는 3나노급에 이어 2나노급 공정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대만 정부는 지난달 28일 TSMC가 제출한 2나노급 반도체 공장 신설 계획을 승인했다. 공장은 대만 북부 신주(新竹)과학단지 내에 50에이커(약 6만1000여평) 규모로 내년 초 착공해 2023년 생산 설비를 구축할 전망이다. TSMC는 2024년이면 2나노급 반도체를 생산할 것으로 보인다. 웨이저자(魏哲家) TSMC 최고경영자(CEO)는 “올해 말까지 2나노급 시험 생산라인을 완성할 것”이라며 TSMC는 2024년까지 2나노 반도체를 상용화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도 3나노급 반도체 상용화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2분기 실적을 공개하며 “올 하반기 중으로 4나노급 1세대 반도체를 양산하고, 내년에는 3나노급 1세대 제품을 상용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전자의 핵심 거래선인 네덜란드 ASML과 첨단 파운드리 장비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가장 먼저 도입할 계획이다. 퀄컴과 아마존이라는 대형 고객도 확보했다. 또 2023년에 3나노급 2세대 제품을 내놓겠다는 계획도 제시했다. 1세대와 2세대는 성능과 소비전력 등에서 차이가 있다. 삼성전자는 4나노급 반도체 생산 기지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 기지로 하반기 본격 가동되는 경기도 평택 2라인이 유력하다. 삼성전자는 미 텍사스주 오스틴 파운드리 증설 계획도 검토 중인데, 오스틴은 2023년쯤 3나노급 반도체 생산기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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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도 2025년까지 해마다 새 공정 기술을 발표하겠다며 3㎚급 반도체 양산에 합류했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25일 온라인 기술 로드맵 발표 행사에서 내년 7㎚급, 2023년 3㎚급, 2025년 2㎚급 반도체 생산 계획을 밝혔다. 특히 2024년에는 2나노급 ‘20A’ 반도체를 양산해 현재 앞서고 있는 삼성전자와 TSMC를 추월하겠다고 선언했다. 2025년에는 인텔 18A를 양산한다고 말했다. 인텔의 18A는 1.8나노급 수준이다. 겔싱어 CEO는 “2025년까지 공정 성능 리더십으로 가는 확실한 길을 모색하기 위해 혁신 로드맵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인텔은 또 파운드리 고객사로 퀄컴과 아마존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퀄컴은 2024년 상용화할 인텔 20A 공정으로 이미 계약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인텔은 반도체 제조 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파운드리 3위인 미 글로벌파운드리와 300억 달러(약 34조2600억원) 규모의 초대형 인수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인텔의 기술 로드맵에서 눈여겨볼 점은 인텔이 기존 공정 기술을 ‘리네이밍’(renaming)했다는 것이다. 인텔은 기존 10나노급 슈퍼핀 공정 기술을 ‘인텔7’으로, 개발 중이던 7나노급 공정은 각각 세대에 따라 ‘인텔4’와 ‘인텔3’로 이름을 바꿨다. 이 리네이밍은 삼성전자와 TSMC를 겨냥했다는 게 반도체업계의 분석이다. 인텔은 수십 년간 PC용 중앙처리장치(CPU) 중심으로 업계 선두를 지켜오다가 모바일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된 시장 변화에 제때 대응하지 못하는 바람에 경쟁에서 뒤쳐졌다. 인텔은 14나노급까지 삼성전자·TSMC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기술 경쟁을 벌였다. 하지만 10나노급에서 상용화가 지연됐고 7나노급(인텔4·인텔3)은 사실상 포기했다가 올 들어 재도전에 나섰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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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MC와 삼성전자, 인텔 등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반도체 기업들이 3㎚급 반도체 양산에 뛰어들었지만 진검승부는 이제부터라는 관측이 나온다. 3㎚급 반도체를 양산하더라도 얼마나 안정적인 수율을 가져가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까닭이다. 반도체는 미세공정에 들어갈수록 품질 관리가 어려워진다. 선폭이 작아지는 만큼 작은 패턴 변화에도 반도체 수율이 큰 영향을 받는다. 수율이란 한 웨이퍼 안에서 결함 없는 제품을 생산하는 비율이다. 수율이 좋다는 것은 그만큼 웨이퍼 한 장에서 균질하게 얻을 수 있는 반도체 칩 수가 많아진다는 것을 뜻한다. 원가가 절감되는 덕분에 반도체 기업의 수익성도 좋아진다.

반도체 초미세공정의 기술적 한계에 근접하면서 수율 확보가 이전보다 훨씬 더 어려워졌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반도체업계의 한 관계자는 “양산을 시작하더라도 수율이 안정화되는 데까진 보통 3~4년 걸린다”며 “이 기간을 누가 얼마나 단축하느냐에 따라 고객사의 행보도 달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양산되는 반도체 가운데 5㎚급이 가장 미세한 공정으로 만들어진다. 세계에서 TSMC와 삼성전자가 5㎚급 반도체를 양산하고 있다. 하지만 TSMC가 3㎚급 반도체 장비 설치에 본격 나서면서 삼성전자를 한 발 앞서 나간 것으로 평가된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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