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를 떠받치는 두 축은 선수와 팬이다. 선수들은 팬들의 뜨거운 환호와 함성에 힘을 내고, 팬들은 선수들의 땀과 눈물을 보며 일상의 피곤함을 잊고 활력을 얻는다. 이런 스포츠 팬덤을 위·변조가 불가능한 블록체인 기술과 접목해 비지니스 영역으로 끌어낸 것이 바로 ‘팬 토큰’이다.

‘팬 토큰 시대’가 활짝 열렸다. 축구 스타 리오넬 메시(34)가 21년 동안 몸담았던 스페인 FC바르셀로나를 떠나 프랑스 파리생제르맹(PSG)으로 이적하면서 계약금 일부를 ‘PSG 팬 토큰’으로 받은 사실이 알려지며 핫이슈로 떠올랐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PSG 측은 지난 12일 2년 계약을 체결하면서 연봉 4100만 달러(약 479억원), 보너스 3000만 달러 등 연봉 패키지 중 일부를 ‘$PSG 팬 토큰’으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메시에게 준 팬 토큰의 양에 대해 “많이 줬다”고만 했을 뿐 구체적인 금액은 공개하지 않았다.

메시 유니폼(가운데). [사진 = 연합뉴스]
메시 유니폼(가운데). [사진 = EPA/연합뉴스]

팬 토큰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프로 스포츠 구단의 주요 수입원인 입장권 수익이 급감하면서 등장했다. 프로 축구와 야구, 농구 등 프로 스포츠 구단이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아 나선 것이다. 팬 토큰은 특정 자산의 소유권과 진위를 영구적으로 기록하는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자산으로 각광받는 NFT(대체 불가능한 토큰)에 해당한다.

PSG 팬 토큰은 구단이 지난해 6월 블록체인 업체 칠리즈(Chiliz)와 제휴관계를 맺어 발행했다. 칠리즈는 여러 프로 스포츠 구단 등과 제휴를 맺고 이들을 위한 팬 토큰을 발행하고 있다. 팬 토큰을 구매한 사람들은 ‘팬 투표’ 때 투표권을 행사해 구단의 사소한 의사 결정에 참여한다. 골을 넣었을 때 울리는 음악을 선곡하거나 주장 완장에 새겨질 문구, 구단 버스 디자인, 홈구장 터널 커튼 디자인 등에 영향을 미친다. PSG는 팬 투표를 통해 주장 완장에 새길 메시지, 경기장 라커룸에 전달할 응원 문구, 오는 10월1일 출시되는 축구 게임 ‘FIFA 22’에 반영될 PSG 커버 디자인 등을 결정해 왔다. 유벤투스도 지난해 공식 티셔츠 디자인과 선수단 버스 디자인을 팬 토큰을 보유한 팬들의 투표로 진행했다.

팬 토큰의 쓰임새도 확장되고 있다. 시즌권을 구매한 오프라인 VIP에 제공하던 혜택을 팬 토큰을 사들인 온라인 VIP에게도 주는 것이다. 지난 6월 FC바르셀로나는 팬 토큰 보유자를 대상으로 홈구장 캄프 누에서 직접 경기를 뛸 수 있도록 했다. 칠리즈 측은 “충성도 높고 열정적인 것으로 유명한 유럽의 축구 팬들에게 이런 방식으로 팀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는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포츠구단들이 적극적으로 팬 토큰 발행에 나서는 만큼 시장이 활성화될 전망이다. 칠리즈는 PSG를 비롯해 유벤투스와 FC바르셀로나, AC밀란, 맨체스터시티, 아스널, 아틀레티코마드리드, 인터밀란, AS로마 등 40여개 스포츠 구단 등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미국 프로야구(MLB)와 아이스하키(NHL), 농구(NBA) 리그와 종합격투기 리그 UFC와 PFL, 레이싱 리그 F1 소속 팀과도 제휴했다. 개별 구단뿐 아니라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 팬 토큰($POR)과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팬 토큰($ARG)도 만들었다. 최근에는 이강인 선수가 뛰고 있는 발렌시아CF와 파트너십을 맺은 뒤 선수 유니폼에 발렌시아 팬 토큰을 상징하는 ‘$VCF’를 새겨 넣기도 했다. 칠리즈는 올 연말까지 100개 이상의 스포츠 구단과 파트너십을 체결할 계획이다.

팬 토큰은 일반적으로 칠리즈 자체 거래소나 칠리즈가 운영하는 팬 투표 플랫폼 소시오스닷컴에서 구매해야 한다. 세계적 인기를 얻고 있는 구단의 팬 토큰은 가상화폐거래소에 상장돼 훨씬 자유롭게 거래된다. 예컨대 PSG 팬 토큰과 유벤투스 팬 토큰(JUV) 등은 국내 거래소 업비트의 BTC 마켓(비트코인으로 다른 가상화폐를 사고파는 시장)에 상장돼 있다.

손흥민의 플레이에 열광하는 영국 관중들.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손흥민의 플레이에 열광하는 영국 관중들.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스포츠 구단들이 팬 토큰에 주목하는 이유는 코로나 사태로 입장권 판매가 크게 감소한 상황에서 ‘돈이 될 것 같은 블루오션’(무경쟁 시장)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FC바르셀로나가 메시를 PSG로 떠나보낸 것도 결국 재정 악화 탓이다. 메시가 연봉 절반 삭감에 동의했음에도 FC바르셀로나는 재계약 포기를 선언해야 할 만큼 재정상황이 열악했다. 하지만 메시 같은 스타 영입은 팬들의 기대감을 높여 구단가치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달 초 개당 20달러 선이던 PSG 팬 토큰은 메시 영입 후 한때 61.53달러까지 치솟았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재정압박에 시달리는 스포츠 구단에겐 가뭄의 단비 격이다.

블록체인업계의 한 관계자는 “백신 접종률이 높은 미국과 영국 등에서도 델타 변이 확산으로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많다”며 “스포츠구단들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새로운 방식의 수익구조를 찾아나서고 있다”고 분석했다.

팬 토큰 역시 가상화폐와 마찬가지로 급락과 급등을 반복하는 탓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메시 입단으로 PSG 팬 토큰 가격이 급등하면서 구단은 큰 수익을 냈다. 로이터는 메시를 영입한 PSG가 팬 토큰 가격 급등으로 최소 1500만 유로(약 206억원)의 수익을 올렸을 것이라고 전했다. PSG는 메시 유니폼 판매만으로도 천문학적인 돈을 벌었다. 등번호 ‘30’이 박힌 메시 유니폼을 영입 후 24시간 동안에만 83만2000장 팔아치워 9000만 유로를 챙겼다. 메시가 이적료 없이 자유계약으로 바르사에서 PSG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것을 감안할 때 돈방석에 앉은 것이다. 여기에다 팬 토큰으로 200억원 이상의 수익을 더 올렸다. 미 경제매체 CNBC는 “PSG가 유럽 축구단에 선수 영입과 팬 토큰을 연계한 새 수익모델을 제시했다”고 평했다.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지난 6월 1만5000원 선이던 PSG 팬 토큰은 메시의 입단 가능성이 커지자 덩달아 가격이 껑충 뛰어오르며 7월 말 3만원을 돌파했다. 지난 11일 메시 입단이 발표될 즈음에는 6만7000원대를 찍었고, 16일 오후에는 4만3000원 안팎에서 거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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