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조근우 기자] 한국전력(대표 정승일) 고양지사에서 장애인 인턴직원의 인권을 유린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특히 한국전력(한전)이 공공의 목적을 위해 설립된 공기업이라는 것을 놓고 보면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그 파장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9일 온라인 커뮤니티 ‘에펨코리아’에는 ‘한전 계약직입니다, 내부 고발 및 폭로합니다’, ‘한전은 어떻게 80%의 장애인을 내쫓는가, 그 수단 및 방법을 폭로합니다’라는 글이 두 개 올라왔다. 글쓴이 A씨는 자신을 지난해 6월부터 지난 1월 말까지 한전 고양지사에서 근무했던 장애인 인턴이라고 밝혔다.

A씨는 자신이 부당해고를 당한 까닭이 직장 내 괴롭힘에 의한 편파적인 인사평가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경기지방노동위로부터 받은 판정서를 공개했다. 판정서에는 “사용자 한국전력이 근로자에게 행한 해고는 부당해고임을 인정한다”고 명시돼 있었다.

A씨는 “한전 특유의 군대식 문화에 적응하지 못한 것을 이유로 직장 내 괴롭힘과 갑질에 시달려왔다”며 “회사 내에서 모든 사람을 만날 때마다 계속 인사와 관등성명을 반복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한 번이라도 깜빡할 시 예의가 없고 조직문화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다그침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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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용공고는 ‘사무보조’, 실제는 택배 물류 수준의 막노동과 허드렛일?!

A씨는 “다리가 불편하다는 것을 이용해 근로계약서와 채용공고에 없는 창고의 자재 정리 업무를 부여했다”며 “작업량 지적을 당하며 꾸준히 괴롭힘을 당했다”고 했다. 이어 “분명히 장애인 인턴으로 왔고 채용공고는 ‘사무보조’로 명시돼 있음에도 택배 물류 수준의 막노동과 허드렛일을 반복해서 시켰다”고 주장했다.

한전 관계자는 나이스경제와의 전화통화에서 “사무보조 업종이기에 몸이 불편하더라도 창고 자재 정리를 시킬 수 있다”며 “작업량이 너무 적어 지적을 한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모든 직원들이 돌아가며 자재 정리 작업을 한다”고 설명했다.

A씨는 이에 대해 “저는 창고에서 거의 6개월 가까이나 지내며 업무를 수행했는데, 여성 직원이 작업을 하는 경우를 거의 본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한국전력 CI. [이미지 = 연합뉴스]

◇ 한전의 황당한 업무지시, 권한 없이 책임만?

A씨는 공판과정 일부분을 공개했다. 공판과정에 따르면 한전은 A씨에게 사내망 접속에 필요한 아이디를 주지 않은 채 작업량을 채우라고 지시했다. 선배들이 출장이나 외근을 갔을 때 선배들의 아이디로 작업량을 채우라고 하고, 이를 채우지 못하자 근무평정에 반영했다.

하지만 인턴에게 개인정보 업무를 시키기 위해 직원 아이디를 부여한 사실 자체도 법령 위반의 소지가 있다. 개인정보 업무는 담당자가 직접 처리해야 한다.

한전 관계자는 “아이디를 주지 않고 선배들의 아이디로 작업을 하라고 한 것과 이를 근무평정에 반영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정승일 한국전력 대표. [사진 = 연합뉴스]
정승일 한국전력 대표. [사진 = 연합뉴스]

◇ 한전, 장애인 직원 근무평정 기준은 개선의 정?

A씨 근무평점은 처음엔 97점이었다가 36점으로 내려갔다. 한전에 따르면 장애인 인턴 근무평점 기준은 대부분 ‘근무태도’에 관한 사안이다. 평점 항목으로 책임감·협조성·근면성·인내력·적극성·자기확신·설득력·문제분석판단력·계획성·창의력 등이 있다.

A씨 근무 태도가 채점자의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 완전히 달라 질 수 있다는 얘기다.

한전 관계자는 “처음에는 개전의 정(改悛의情)을 고려해 97점을 부여했다”며 “장애인임을 감안하여 근무평정을 후하게 주는 것이 구성원들의 정서”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A씨는 한전이 정수기가 비치된 사무실 출입을 제한하고, A씨가 생수를 구매하기 위해 7분가량 편의점에 방문하자 이를 ‘근무지 이탈’로 보고하는 등 기본적인 권리조차 지켜지지 않았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한전 관계자는 “해당 근로자는 인사평가를 통해 낮은 점수를 받아 내규에 의해 계약이 종료됐다”며 “관등성명을 댄다거나, 생수 구매를 근무지 이탈로 보고하는 행위 등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현재 중앙노동위원회 재심을 기다리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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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전, ‘인권’에 대한 인식 수준은?

“결국 제가 장애인이고 비정규직이라는 것만 보았을 뿐, 저의 인격과 감정은 전혀 보지 않았습니다.”

이번 사건에 대한 A씨의 절절한 호소다. 한전은 장애인 인턴직원 인권유린 의혹에 대해 반성과 성찰하는 모습보다는 “재심을 기다리고 있다”며 억울함을 피력하고 있다.

“사회적 모델에 따르면 손상은 특정한 사회적 환경에서 장애화된다. 이동권이 잘 보장된 사회에서는 다리의 손상이 크게 문제되지 않고, 수화가 하나의 언어로 인정받는 사회에서는 청각 손상이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따라서 장애를 만들어내는 것, 장애해방을 위해 극복되어야 하는 것은 장애를 생산하고 차별하는 사회와 문화인 셈이다.”

철학자 고병권은 자신의 저서 ‘묵묵’에서 이 같이 말한다. 장애의 책임이 ‘사회와 문화’에 있다는 의미 있는 통찰이다. 그리고 이 ‘사회와 문화’는 구성원으로부터 비롯된다. 즉 모든 이들에게 일정부분 책임이 있고 함께 나눠 짊어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장애인 혹은 비장애인과 같은 이분법 적인 사고가 아니라, 그저 조금 다른 사람으로 더 배려해 주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일인지 실로 가슴 아픈 대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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