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들의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올해에만 한국전력과 6개 발전자회사가 4조원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의 직격탄을 맞은 코레일(한국철도공사)과 인천국제공항공사는 각각 1조원대, 8000억원대에 이르는 ‘천문학적 규모’의 손실을 낼 것으로 전망된다.

기획재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1~2025년 공공기관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에 따르면 공공기관(공기업·준정부기관) 15곳은 올해 6조6787억원 규모의 당기 순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산이 2조원 이상이거나 자본잠식 또는 손실보전 규정이 있고 규모가 일정 수준 이상인 26개 공공기관 가운데 절반 이상이 적자를 낸다는 얘기다.

올해 적자가 예상되는 공공기관은 한국전력과 남동·남부·중부·서부·동서발전·한국수력원자력 등 6개 발전자회사, 철도공사, 인천공항공사, 석유공사, 국민체육진흥공단, 대한석탄공사, 광물자원공사, 인천항만공사, 산업단지공단 등 15곳이다. 15개사의 적자 규모가 지난해(3조3993억원)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공공기관의 적자 규모가 커지는 것은 한전과 6개 발전자회사 탓이 크다. 지난해 코로나 대유행으로 국제유가 등 연료비가 하락하며 1조9515억원 규모의 흑자를 냈던 한전은 올해 3조2677억원의 순손실을 낼 것으로 보인다. 정부 전망대로라면 올해 한전은 2011년(3조5141억원) 이후 10년 만에 최대 적자를 기록하게 된다. 지난해 3329억원의 순이익을 낸 6개 발전자회사도 올해 7575억원 규모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됐다. 한전과 6개 발전자회사를 합치면 지난해 2조2844억원 규모의 흑자가 올해 4조252억원 적자로 돌아서게 된다.

한전과 6개 발전자회사들의 경영상황이 악화된 것은 전력 생산의 연료인 원유와 천연가스, 유연탄 등 원자재 가격이 급등한 까닭이다. 전력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큰 전력용 연료탄은 올해 초 t당 90달러 안팎에서 5월에 123달러까지 올랐고, 이후에도 상승 곡선을 그렸다.

하지만 정부는 연료비를 가격에 연동시키는 연료비연동제를 시행 중이면서도 올해 2분기와 3분기 전기요금 인상을 유보했다. 코로나19 사태로 하락한 연료비가 경기 회복세를 타고 다시 상승했지만 소비자 물가를 자극할 우려 등을 감안한 조치였다. 4분기에도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있지만 대선을 앞두고 물가 상승을 우려한 정부가 제동을 걸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여기에다 온실가스 감축 등 투자비가 늘어난 것도 적자 폭을 키우는데 일조했다.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비정상적으로 전기요금 인상을 틀어막고 있다 보니 한전과 6개 발전자회사의 적자만 쌓이고 있다”며 “이에 더해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RPS) 비용이 늘어나는 점도 한전의 적자를 키우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코로나 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코레일은 올해 1조1779억원의 적자를 낼 것으로 예상됐다. 지난해 1조3427억원 적자에 비해 규모는 소폭 줄어들지만 여전히 1조원 이상의 대규모 적자가 유지된다. 코레일은 올해 철도 수요가 코로나 사태 전인 2019년 대비 74%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같은 처지의 인천공항공사는 지난해 창립 17년 만에 처음으로 4229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에는 적자 규모가 지난해의 2배가 넘는 8320억원 규모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항공수요가 코로나 사태 이전 수준까지 도달하는 시기를 2024년으로 예상한데 따른 것이다. 인천공항공사는 코로나 사태로 타격을 입은 항공산업 지원 역할도 하고 있는 만큼 적자 규모가 줄기 어려운 구조다. 때문에 인천공항공사의 자본금 대비 부채비율은 지난해 46.5%에서 올해 73.3%로 치솟을 것으로 예상된다.

‘신의 직장’으로 불리던 마사회와 강원랜드 역시 코로나19 쇼크에 비틀거리고 있다. 코로나19에 따른 감염예방과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조치로 경기 중단, 휴장, 여행객 감소가 이어지면서 경영상황이 악화됐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매주 막대한 현금을 확보하는 수익구조를 갖춘 마사회와 강원랜드는 경영난으로 자산 매각, 인원 감축 등 구조조정 압박을 받고 있다. 마사회는 지난해부터 코로나19 사태로 ‘무관중 경마’를 재개했지만 실적 부진을 타개하진 못했다. 마권 판매가 사실상 매출의 90%를 차지하는 만큼 적자가 불어날 수밖에 없다. 이에 온라인 마권 발매 도입을 추진하고 있지만 농림축산식품부가 사행성을 들어 반대하면서 지지부진하다.

공공기관 경영공시 사이트 알리오에 따르면 마사회는 지난해 매출이 1조1018억원으로 전년보다 6조원 이상 곤두박질쳤다. 이에 따라 4604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마사회는 창사 71년 만에 첫 적자를 냈다. 경영난에 시달리는 마사회는 운영자금 확보와 안정적 사업 추진을 위해 외부 자금 2000억원을 조달하고 대전 서구 마사회빌딩도 대전시에 매각하기로 했다.

카지노가 주수입원인 강원랜드의 상황도 암울하다. 지난해 코로나 사태로 휴장과 부분 개장을 반복했지만 정상영업일수가 53일에 그쳤다. 올해도 부분 개장과 휴장을 반복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1500여명의 전직원을 대상으로 전수검사를 실시한 결과 워터월드 안전요원과 식음·카지노 직원 등 20명이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휴장을 하기로 했다. 휴장으로 하루에 40억원씩 매출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까지 571억원 적자를 기록 중이다.

석유공사·석탄공사·광물공사 등 공공기관 3곳은 누적된 적자로 완전 자본잠식 상태다. 지난해 국제유가 하락 등 여파로 2조4392억원의 적자를 내고 자본이 잠식됐던 석유공사는 올해도 3418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본금을 까먹고 빚으로 연명 중인 이들 3개 기관이 앞으로 5년간 내야 할 이자 비용만 2조8300억원에 이른다. 석유공사는 올해부터 2025년까지 5년간 이자 비용으로 2조원을, 석탄공사와 광물공사는 각각 6500억원, 1800억원을 지출할 것으로 정부는 전망했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기관 재정 악화는 요금 인상, 국고 지원으로 이어져 국민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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