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직원들이 ‘죽자고 일하고 영업 활동을 하며’ 번 돈으로 회사가 빌린 돈의 이자마저 제대로 못 갚는 한계기업들이 급증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지속되는 데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충격파로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는 바람에 이자를 감당하기가 벅찬 기업들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24일 내놓은 ‘금융안정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한은이 전체 외부 회계감사 대상 기업 2만2688개사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2020년말 기준 한계기업 비중은 전년보다 0.5%포인트 상승한 15.3%를 기록했다. 국내기업 7곳 중 1개사 꼴로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10년 이후 최고치다.

한계기업 수는 3475곳에서 3465개사로 10곳이 줄었다. 신외부감사법(신외감법) 시행으로 분석대상 외감 기업 수가 전년보다 807개사 감소한 까닭이다. ‘좀비기업’으로도 불리는 한계기업이란 3년 내리 이자보상배율이 1을 밑도는 기업을 말한다. 이자보상배율은 영업이익으로 이자 등 금융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기업의 채무상환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영업이익을 금융비용으로 나눈 값이다. 1 미만이라고 하면 영업 활동에서 창출한 이익으로 이자조차 지불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이런 기업을 통칭해 취약기업이라고 하고 이중 3년 이상 지속될 경우 한계기업이라고 부른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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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들 한계기업의 차입금도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는 데 있다. 한계기업의 차입금은 124조5000억원으로 전년보다 9조1000억원이나 불어났다. 2017년 100조2000억원, 2018년 105조3000억원, 2019년 115조4000억원을 기록하는 등 4년 연속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외감 기업 총차입금 대비 비중도 전년보다 0.6%포인트 상승한 15.6%에 이른다.

기업 규모별로는 중소기업이 16.2%로 대기업(11.5%)보다 4.7%포인트 높다. 대기업이 39곳 증가한 반면 중소기업은 49개사가 감소했다. 차입금 역시 대기업이 5조6000억원으로 중소기업(3조5000억원)보다 2조1000억원이나 많다. 한계기업의 기업당 평균 차입금은 대기업이 1509억원, 중소기업 164억원 수준이다. 대기업이 중소기업보다 10배 가까이 많다. 한계기업 비중은 숙박음식업(43.1%), 조선업(23.6%), 운수업(22.6%), 자동차업(17.8%), 항공업(16.7%) 등의 업종에서 상대적으로 높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 영향으로 숙박음식업은 전년보다 4.7%포인트 증가하는 등 충격이 계속되고 있다. 전체 차입금 부문에서도 숙박음식업은 32.7%를 차지해 가장 높다.

지난해 한계기업으로 신규 진입한 곳들은 차입금 의존도 및 평균 차입비용이 높아진 가운데 수익성이 크게 악화되면서 재무 건전성도 나빠졌다. 특히 수익성, 단기 유동성, 장기 지급능력 측면에서 비(非)한계기업에 비해 열악한 상태다. 지난해 코로나19 충격으로 한계기업의 매출액 영업이익률은 2019년 -5.2%에서 지난해 -7.4%로 악화됐다. 반면 비한계기업은 4.1%로 나타나 전년(4.3%)과 큰 차이가 없었다. 지난해 한계기업은 1000원 어치를 팔아 7.4원 적자를 낸 반면 비한계기업은 1000원어치를 팔아 4.1원 수익을 남겨 수익성 격차가 커졌다는 것을 뜻한다. 더군다나 한계기업의 유동비율(72.1%) 및 자기자본비율(19.9%)도 비한계기업(133.1%, 45.0%)에 비해 크게 낮아 유동성과 신용 위험에 취약하다.

한계기업으로 진입을 앞둔 취약기업(잠재적 한계기업)도 급증했다. 이자보상배율 1 미만인 취약상태의 지속기간이 1년 이상이면 취약기업, 3년 이상이면 한계기업, 4년 이상이면 장기존속 취약기업으로 분류한다. 지난해에 취약기업(취약 지속기간 1~2년)에 처음 진입한 회사의 비중(기업 수 19.9%, 차입금 20.4%)은 과거 5년 평균(16.6%, 16.8%)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실제로 코로나19 충격에 따른 영업손실 등으로 2020년에 처음 취약기업으로 새로 진입한 기업 수도 전년(1077개사)보다 9%(98곳)가 늘어난 1175개사로 집계됐다. 이에 따라 전체 취약기업의 비중(기업 수 14.8%, 차입금 13.7%)도 과거 5년 평균(11.7%, 10.5%)에 비해 대폭 높아졌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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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비해 지난해 기준 한계기업 기운데 취약상태(이자보상배율 1 미만)가 4년 이상 지속된 ‘장기 존속 취약기업’의 비중(기업수 9.3%, 차입금 10.1%)은 과거 5년(2015∼2019년) 평균(9.6%, 10.6%)보다 소폭 줄었다. 이민규 한은 금융안정국 안정총괄팀장은 “2018년 이후 한계기업 비중이 증가세를 보이는 데다 대기업의 한계기업 진입이 증가하고 기업당 평균 차입금이 중소기업의 약 10배에 달하는 점 등에 비추어볼 때, 한계기업 차입금의 부실에 따른 금융기관 자산건전성 저하 가능성에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지난해 한계기업 증가가 코로나19 영향이 크고 올 들어 경기회복에 따른 매출 및 영업이익 개선세가 이어질 경우 한계기업이 감소할 수 있다고 한은은 내다봤다. 2021년 1분기 말을 기준으로 상장기업과 일부 비상장기업 2249개의 매출액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5.4% 늘었다. 이 중 대기업은 5.2%, 중소기업 15.1% 증가했다.

이런 가운데 금융당국은 코로나19 충격을 받은 중소기업 대출상환 유예조치를 내년 3월까지, 또 한 차례 연장했다. 당초 6개월로 예정했지만 2년으로 늘어난 것이다. “더 이상 연장하기 어렵다”는 게 은행들의 입장인 만큼 내년 3월 종료될 공산이 크다. 대출상환 유예조치가 끝나고 동시에 한은이 기준금리까지 올리면 중소기업 등의 대출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며 패닉 상태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원금·이자 상환을 유예중인 대출 잔액은 120조7000억원에 이른다. 한은은 지난달 기준금리를 0.75%로 0.25%포인트 올리면서 추가 금리인상을 기정사실화한 상태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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