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소비자물가가 6개월 연속 2%대 상승률을 보였다. 이는 2009년 8월부터 2012년 6월까지 2년 11개월 동안 2%대 상승률이 기록된 이후 처음 나타난 현상이다. 3분기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분기 기준으로 9년여 만에 최고치를 보였다.

6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9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8.83(2015년을 100으로 잡음)을 기록, 전년 동기에 비해 2.5% 상승했다. 2%대 상승률이 반년 째 이어진 것이다. 소비자물가는 지난 4월 전달보다 0.8%포인트 높은 2.3%의 상승률을 기록한 이후 8월까지 2.6%→2.4%→2.6%→2.6%의 상승 흐름을 이어갔다.

품목성질별로는 상품이 3.2%, 서비스가 1.9%의 상승률을 각각 기록했다. 상품 중에서는 농축수산물의 상승률(3.7%)이 두드러졌다. 하반기 들어 완화됐다고는 하지만 농축수산물 가격 상승세는 여전히 돋보였다. 상승률을 주로 끌어올린 것은 달걀(43.4%), 상추(35.3%), 마늘(16.4%), 돼지고기(16.4%) 등이었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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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업제품도 비교적 높은 수준인 3.4%의 상승률을 나타냈다. 국제유가가 오르는 바람에 석유류 등이 상승폭을 키운데 따른 결과였다. 경유는 23.8%, 휘발유는 21.0%의 상승률을 보였다. 식품 중에서는 빵(5.9%)과 라면(9.8%)이 상대적으로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반면 전기·수도·가스는 정부의 정책의지에 따라 0.0%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서비스 물가 상승을 이끈 것은 집세(1.7%)와 개인서비스(2.7%)였다. 집세 중 전세는 2.4%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2017년 11월의 2.6% 상승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개인서비스 중에서는 보험서비스료(9.6%)와 공동주택관리비(4.6%)의 상승률이 두드러진 편이었다.

생활물가지수는 3.1% 상승했다. 물가의 추세적 흐름을 대변해준다는 점에서 보다 중요하게 다뤄지는 근원물가(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는 1.9%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소비자물가 상승세는 당분간 더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여전히 하방 요인보다 상방 요인이 더 많다는 분석들이 나오는 게 그 이유다. 상방 요인으로는 국제유가·원자재 값 및 원/달러 환율의 상승세 지속, 전기료 인상 전망 등이 있다. 원유(原乳)값 인상의 여파로 유가공제품 가격이 연쇄적으로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간 정부에 의해 억눌려왔던 전기료도 조만간 인상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외 여건도 좋지 않다. 당장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에서 전력난이 가중되면서 글로벌 공급망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 문제다. 이는 국내 물가 상승 움직임을 더욱 촉진할 가능성이 있다. 대내적으로는 꺾이지 않는 전월세 가격 상승세가 물가엔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물가 상승 흐름과 함께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경기 회복 속도다. 때마침 경기 회복세도 주춤해지는 기류가 나타나고 있다. 델타 변이 확산세가 이어지고 있는데다 글로벌 공급망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에너지 공급 차질은 그렇지 않아도 고공행진 중인 국제유가의 상승을 또 한 번 자극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을 반영한 듯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경제가 당초 예상보다 낮은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4일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이 당초 예상치인 6%에 못 미칠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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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회복세 둔화 기미는 국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일례로 통계청이 밝힌 지난 8월의 산업활동동향에 의하면 생산과 소비·투자가 동시에 위축된 모습을 드러냈다. 경제 전반에서 활기가 약화됐음이 수치를 통해 드러난 것이다. 전산업생산과 소매판매, 설비투자는 전월보다 각각 0.2%, 0.8%, 5.1% 감소했다. 소위 트리플 감소가 3개월 만에 재연된 것이다.

물가가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가운데 경기회복세가 더뎌지는 기미를 보이면서 자연스럽게 거론되는 것이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다. 스태그플레이션은 경기가 침체된 가운데 물가만 오르는 최악의 경제상황을 지칭한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통화정책 당국은 금리를 올릴 수도 내릴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물가를 잡으려면 금리를 올려야 하지만 경기를 생각하면 그 반대의 정책을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 출석한 자리에서 상승률 2% 선에서 물가를 관리해나갈 뜻을 밝히면서 “거기(스태그플레이션)까지는 연결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홍 부총리의 의견에 동조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당장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수정해야 할 만큼 상황이 나쁘지는 않다는 것이 그 배경이다. 한국은행 전망대로 우리 경제가 올해 4%, 내년 3%의 성장률을 기록한다면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는 기우에 그칠 수 있다.

한국은행도 물가 상승률 2%대가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할 정도로 높은 수준은 아니라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한은은 물가상승 압력이 수요 측에서 주로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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