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업체 토스가 택시업계의 격렬한 반발에 부딪혀 사업을 접었던 ‘비운의 스타트업’ 타다를 전격 인수했다. 은행과 증권, 보험 등 금융업만 추구해 온 토스가 이종(異種) 산업인 모빌리티(이동수단) 사업에도 진출함으로써 카카오 중심으로 짜여진 국내 모빌리티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토스 운영업체 비바리퍼블리카는 지난 8일 차량공유업체 쏘카가 지분 100%를 보유한 타다 운영업체(VCNC) 지분 60%를 확보하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맺었다고 밝혔다. 이승건 토스 창업자겸 대표는 이날 “국내 택시시장 연간 매출 가운데 절반 정도가 호출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이뤄지는 만큼 토스의 결제사업 등과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자신감을 내보였다. 쏘카는 40% 지분을 남겨 협력 관계를 유지하기로 했다.

이번 인수·합병(M&A)은 타다가 발행한 신주를 비바리퍼블리카가 사들이는 방식이다. 투자금액은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았다. 토스 측은 “이달 주식 매매계약을 마무리하고 올해 말 새단장한 타다 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타다는 2011년 커플 전용 SNS ‘비트윈’을 개발한 업체로 2018년 쏘카에 인수됐다. 이후 모빌리티로 사업 아이템을 바꿔 11인승 승합차를 이용한 호출거부 없는 이동수단 ‘타다 베이직’ 서비스로 돌풍을 일으키며 가입자를 한때 170만 명까지 늘렸다. 하지만 지난해 국회에서 일명 ‘타다 금지법’으로 불리는 여객운수법 개정안이 통과되는 바람에 타다 베이직 서비스를 종료해야 했다. 같은 해 10월엔 개인과 법인택시 면허 보유자를 대상으로 가맹택시 ‘타다 라이트’ 서비스를 선보이며 재기를 노렸다. 그러나 타다는 지난해 매출 59억원, 순손실 112억원을 기록했다. 매출 109억원, 순이익 4억원을 기록한 2019년보다 크게 악화된 실적이었다. 타다는 대기업 등에 인수 의향을 물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고 결국 토스의 선택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쏘카와 토스가 모빌리티 사업을 위해 손잡은 것은 핀테크와 모빌리티 산업의 시너지가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처음이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모빌리티 플랫폼과 핀테크 서비스의 융합이 활발하다. 미국부터 동남아시아까지 각지 모빌리티 앱들은 단순히 차량호출에 그치지 않고 결제·쇼핑·예약·배달(물류)까지 아우르는 ‘슈퍼앱’으로 진화하고 있다.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동남아 최대 모빌리티 업체 그랩과 고젝 모두 자체 간편결제 시스템인 그랩페이와 고페이를 제공하고 있다. 그랩은 인터넷전문은행 사업에도 진출했다.

토스는 타다 인수를 통해 토스 결제 등 금융 비즈니스의 외연을 확장하고 모빌리티 서비스 이용자와 산업 종사자의 선택폭을 넓힘으로써 건전한 성장과 혁신을 이어간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우선 타다 서비스에서 토스의 ‘결제 서비스’가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타다 앱에서 서비스를 사용한 뒤 토스 간편결제로 요금을 내는 방식이다. 특히 토스 앱이 보유한 이용자 수천만 명을 바탕으로 타다 플랫폼 규모를 빠르게 키울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토스는 2000만명, 쏘카와 타다는 900만명 안팎의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다. 타다가 확보한 막대한 이동 관련 데이터도 토스와 궁합이 잘 맞는다. 해외에서는 보험, 대출, 신용평가 등에 모빌리티 플랫폼에서 수집된 데이터가 활용되고 있다.

우리 국민들은 택시비로 연간 12조원을 쓴다. 이중 절반이 카카오T, 우티, 타다와 같은 차량 호출 앱을 매개로 이뤄진다. 결제·송금액 규모를 불리는 데 집중하는 핀테크 업체들로선 ‘군침을 흘릴 만한’ 시장이다. 하지만 카카오T에서는 카카오페이와 연동한 자동결제가 보편화돼 토스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토스가 선발주자 인수에 관심을 보이게 된 이유다. 토스의 한 관계자는 “타다가 의미있는 시장점유율을 확보해야 간편결제를 붙인 의미가 있을 것”이라며 “연말에 선보일 서비스는 임박해서 공개하겠지만, 고객 경험상 타다가 돌아왔다는 느낌을 주도록 하는 것이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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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핀테크 기업들이 모빌리티 업체와 적극적으로 결합해 성장하고 있다는 점도 이들 업체의 M&A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최근 모빌리티 플랫폼 기업이 금융회사와 공동 사업을 추진하는 게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그랩은 2018년 그랩파이낸셜을 설립하며 금융업에 진출했고 결제·쇼핑·예약·보험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토스의 한 관계자는 “타다를 인수했다고 해서 모빌리티가 본업이 될 수는 없겠지만 핀테크 사업의 외연을 넓히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 기업공개(IPO)를 준비하던 쏘카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쏘카는 지난해 사상 최고 매출(2598억원)을 기록했지만 타다의 적자 등이 반영되면서 599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쏘카로선 가맹택시 수 확장, 앱 서비스 고도화 등 투자가 더 필요한 타다를 매각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렸다. 타다로서도 핀테크 서비스를 뒷받침할 수 있는 토스와 한배를 타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차량호출 플랫폼이 배달, 퀵서비스 등으로 확장할 때 모든 서비스에 적용할 수 있는 금융 결제수단이 필요하다. 외부 금융사에 의존하면 서비스 고도화의 핵심인 데이터를 직접 확보할 수 없다. 금융업을 자체 운영하면 차량을 이용하는 승객과 기사들을 대상으로 대출, 보험 등 금융 서비스를 연계하는 기회를 모색할 수 있는 것이다.

핀테크 시장에서 격돌했던 카카오와 토스는 모빌리티 시장에서도 맞붙게 됐다. 타다의 확장이 좌초된 이후 국내 차량호출 시장에서는 카카오T가 압도적 1위를 굳힌 상태다. 카카오T 월간 이용자는 1016만 명으로 타다(9만 명)는 물론 SK·우버의 합작사업인 우티(86만 명)와도 격차를 크게 벌렸다. 토스를 등에 업은 타다가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하면서 시장 경쟁 구도가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카카오모빌리티의 사업 확장엔 제동이 걸린 상태다. 카카오가 정치권 비판을 의식해 몸을 사리는 가운데 카카오모빌리티도 예정돼 있던 전화 대리운전 업체 두 곳의 인수를 포기했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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