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국제유가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무서운 기세로 오름세가 이어지자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선까지 상승하고 국내 휘발유 값은 리터당 2000원을 넘어설지 모른다는 전망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이중 국내 휘발유값 전망은 유류세 인하 가능성을 배제한 것이다.

반론도 적지 않다. 올해 4분기 중 원유 공급이 늘어나면서 상승행진에 제동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 반론의 요지다. 향후 유가 상승이 제한적일 것이라 전망하는 이들은 대체로 국제유가가 90달러 선을 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달 중 유가가 정점을 찍을 것으로 전망하는 이들도 있다.

유가의 제한적 상승을 점치는 배경엔 미국이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국제유가가 4분기 중 물량 공급이 늘면서 제한적 상승세를 보일 것이라 전망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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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미국 정부는 국제유가를 끌어내리기 위해 전방위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 장관은 수일 전 국제 유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전략 비축유 방출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은 이 같은 단기 대책을 밝힘과 동시에 ‘OPEC(석유수출국기구) 플러스’ 등 산유국들에 대한 압력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증산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는 주요 산유국들을 최대한 압박해 공급량을 늘리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적극 나선 배경엔 국제유가의 급등이 모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는 미국 및 세계경제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판단이 자리하고 있다. 세계경제는 그렇지 않아도 글로벌 공급난에 의한 원자재 가격 상승에 힘겨워하고 있던 터였다.

미국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국제유가 상승세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19일(현지시각) 뉴욕상업거래소에서는 11월물 서부텍사스산 원유(WTI)가 배럴당 82.96달러(마감가)에 거래됐다. 전장보다 0.52달러(0.63%)가 더 오른 가격이었다. 유가 상승세는 4거래일 연속 이어졌고, 그 결과 2014년 10월 이후 최고가를 기록했다. 같은 날 북해산 브렌트유 가격은 배럴당 85달러대로 올라섰다.

이날의 유가 상승세를 두고는 심리적 요인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유가가 향후 더 오를 것이란 우려가 가격 상승을 부채질했다는 의미다.

최근의 유가 상승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연쇄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원인을 큰 틀에서 분석하자면 주요국들의 에너지정책 변화가 그 배경을 이룬다고 볼 수 있다. 주요국들이 기후변화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고 대신 청정에너지 사용을 늘려가는 과정에서 에너지 대란이 나타났고, 그 구체적 현상이 유가 상승세 지속이라는 얘기다.

미국의 월스트리저널(WSJ)은 세계적으로 화석연료 투자는 줄었는데 청정에너지 투자가 그에 상응하는 만큼 늘지 않은 점을 현행 에너지 대란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보다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원인으로는 유럽의 천연가스 공급난,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 부진, ‘OPEC 플러스’를 축으로 하는 산유국들의 소극적 증산, 중국의 석탄 사재기, 북반구의 겨울철 도래에 의한 난방 수요 증가 등이 있다.

유럽의 천연가스 공급난만 하더라도 여기엔 복합적 요인이 얽혀 있다. 당장은 주요 공급처인 러시아가 천연가스 지원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 원인 중 하나다. 러시아는 그간 유럽 지역 천연가스 수요의 절반 정도를 담당해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해 들어 유럽 국가들은 기후변화 탓에 풍력발전량 감소를 경험하고 있다. 재생에너지와 천연가스가 동시에 공급부족 현상을 보이자 자연스레 대체재인 원유에 대한 의존도가 올라가게 됐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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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셰일오일 생산 부진도 국제유가가 제멋대로 상승하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다. 미국의 셰일오일은 그간 국제유가 상승을 억제하는 구실을 해왔다. 셰일오일은 생산원가가 비교적 높은 편이어서 국제유가가 대략 60~70달러 선을 넘어가야 비로소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다. 따라서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업체들은 이 때부터 생산을 본격화해 국제유가가 마구 치솟는 것을 억제하는 역할을 해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올 들어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업체들은 백악관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생산 노력을 펼치지 않고 있다. 최근 들어 환경규제가 대폭 강화된 데다 인건비와 원가 등의 상승으로 인해 이전보다 채산성이 낮아졌다는 게 그 이유다. 이전보다 생산 환경이 열악해진 탓에 생산업체들은 투자 유치나 금융 등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미국의 주요 셰일오일 생산업체인 ‘파이오니어 내추럴 리소시스’의 스콧 셰필드 최고경영자(CEO)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올해엔 증산에 나서지 않을 뜻을 분명히 밝혔다.

국제유가 상승의 보다 직접적인 원인은 역시 산유국들의 소극적 증산이라 할 수 있다. ‘OPEC 플러스’는 지난 9월 일일 생산량을 40만 배럴 늘린 뒤 10, 11월에 추가 증산에 나서기로 했으나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에너지난 속에 석탄 사재기에 나선 것으로 알려져 대체재인 원유가격이 또 한 번 자극받게 됐다. 게다가 계절적으로 북반구에 겨울이 다가오면서 난방수요까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당분간 국제유가는 상승세를 더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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