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선택했던 전통적 호프집은 상대적으로 경기 변화에 더 민감하다. 다른 주종의 술집에 비해 불황을 더 탄다는 의미다. 우리 사회에 맥주는 2차 주종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는 탓이리라.

사람들은 지갑이 얇아질수록 술자리를 1차로 끝내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와 달리 흥청망청하는 분위기가 지배하는 연말엔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호프집도 반짝 호황을 누린다. 이 것만 보아도 호프집이 경기에 더 민감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호프집이 2차 술자리로 인식되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것이 피크타임이다. 호프집의 피크 타임은 보통 밤 9~11시 정도다. 저녁 식사를 겸해 소주를 한잔씩 한 뒤 입가심을 위해 호프집을 찾는 손님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1차로 호프집을 찾는 사람들도 있다. 젊은 층이거나 여성 그룹이 그런 고객의 주를 이룬다. 이들은 소주 같은 독주를 기피하려는 사람들이다. 당연히 주당 부류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1차로 호프집을 찾는 사람들 중엔 맥주 마니아들도 더러 있다. 이들은 생맥주 맛의 변화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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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이 깊어질수록 호프집에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현상이 있다. 호프집에 와서 소주를 찾는 손님이 늘어난다는 사실이다. 호프집에서는 1만~2만원대의 간단한 안주 하나면 두 세 사람이 값싸게 소주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두 세 명이 고깃집에 가서 양껏 먹고 마시려면 10만원 가까이 들지만 호프집에서는 그 절반의 비용으로, 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보다 나은 서비스를 받으며 소주를 즐길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내 호프집을 찾는 젊은 커플들이 심심찮게 주문하는 내용에는 ‘소주 1병과 홍합탕 1개’가 있었다. 이럴 경우 테이블 단가는 2만원을 넘지 않는다. 이렇게 주문해 놓고 서너 시간, 심한 경우는 7~8 시간을 보내는 커플도 있다. 이러는 동안 탕을 몇 번씩이고 데워 달라 요구하기도 한다. 고깃집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실속을 차리는 젊은 사람들 중엔 호프집에서 소주를 찾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소주를 찾는 손님이 많아질수록 호프집 사장은 매상 면에서 만족을 덜 느끼게 된다.

불황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갈수록, 그리고 젊은 사람들일수록 2차 술자리를 피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 같다. 한창 사람들 입에 회자됐던 119운동은 그 같은 경향을 심화시켰다. 119란 1차에서 1종류의 술로 음주를 즐기는 한편, 밤 9시 이전에 술자리를 파하자는 캠페인이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사원들을 상대로 119운동을 펼치기도 했었다. 이 같은 캠페인은 글로벌 불황 분위기에 편승해 더욱 호응을 얻었다. 호프집 사장들로서는 이래저래 어려운 환경을 만나게 된 것이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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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집이 불황에 약한 또 하나의 이유는 고깃집과 달리 식사를 겸하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일반적 인식이다. 사실은 식사를 겸할 수 있는 안주가 여러 가지 개발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호프집은 일단 배가 채워진 뒤 찾는 곳이란 오랜 인식이 문제인 것 같다. 호프집을 식당이 아니라 단순히 술집으로만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란 얘기다.

이런 인식을 타파하기 위해 일부 프랜차이즈사가 호프와 레스토랑 이미지를 결합시키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지만 사람들의 오랜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는 것 같다.

흔히 ‘명절을 탄다’는 말이 있는데, 호프집은 명절도 심하게 타는 편이다. 설·추석 등 큰 명절을 앞두고 사람들은 목돈 지출에 대비하느라 소비를 줄이는 경향이 있다. 이 때 크게 타격을 받는 곳이 호프집이다. 이 같은 현상은 불황기에 더 뚜렷이 나타난다. 이럴 땐 평일 매출이 평소 일요일의 그 것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상황이 심각해진다. 불황이 깊어지면 아파도 참는 바람에 병원과 약국까지도 매출 하락에 신음한다는데 술집, 그 것도 2차 행선지로 인식된 호프집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호프집은 계절적 요인 뿐 아니라 경기에까지 민감한 속성을 지니고 있어 불황기엔 특히 개업을 삼가야 한다.

정리 = 박해옥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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