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내년 608조원에 가까운 규모의 슈퍼 예산안을 확정하면서 국가채무가 1000조원을 돌파하게 됐다. 특히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불어난 나랏빚이 400조원을 넘어서며 현 정부 출범 전 11년간 낸 채무보다 많아지게 됐다. 급격한 확장재정 기조를 맞추기 위해 적자국채를 적극 발행한 탓이다.

국회가 지난 3일 의결한 2022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 예산은 당초 정부가 제출한 604조4000억원보다 3조3000억원 늘어난 607조7000억원으로 확정됐다. 정부의 내년 예산안에서 나랏빚 3조9000억원을 줄였지만 내년 국가채무는 올해보다 108조4000억원 늘어난 규모다. 이에 따라 나랏빚은 내년 1064조4000억원으로 증가해 ‘국가채무 1000조원대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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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도 47.3%에서 2.7%포인트 높아진 50.0%를 기록해 ‘국가채무 50% 시대’에도 진입하게 됐다. 1인당 국가채무는 2000만원을 넘었다. 국가채무 1064조4000억원을 6월 기준 주민등록인구(5167만명)로 나누면 1인당 2060만원이 나온다. 이에 김영환 전 의원은 현 정부를 강력히 성토했다. 그는 2022년 정부 예산안이 확정된 다음날인 지난 9월 1일 페이스북에 “국가채무 1000조 시대. 이 지표가 끝말이다. 고단한 5년이었고 인고의 시절이었다”며 “한 해 100조원의 재정적자, 국가채무 50%를 달성한 날, 600조 예산이 발표된 날”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내년 나랏빚은 현 정부가 출범한 2017년 660조2000억원과 비교하면 404조2000억원 증가했다. 같은 기간 국가채무비율은 36.0%에서 50.0%로 14.0%포인트 껑충 뛰었다. 문 대통령이 야당대표 시절 재정건전성의 마지노선으로 40%를 꼽았던 게 무색할 정도다. 5년간 낸 나랏빚은 노무현 정부 4년차인 2006년 말부터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말까지 11년간 늘어난 채무(377조5000억원)보다 많다.

현 정부의 나랏빚 증가속도는 역대 다른 정부와 비교해도 눈에 띄게 두드러진다. 문 대통령이 청와대 민정수석과 비서실장 등을 지냈던 노무현 정부에서는 2003년 165조8000억원이었던 국가채무가 2008년 309조원으로 143조2000억원 불었다. 채무비율은 7.0%포인트 높아졌다. 보수정권 때도 국가채무가 늘어나긴 했지만 증가폭은 이보다 작았다. 이명박 정부(2008~2013년) 때는 국가채무와 비율이 각각 180조8000억원, 5.8%포인트 증가했고 박근혜 정부(2013~2017년) 때는 각각 170조4000억원, 3.4%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다.

물론 코로나19 사태로 재정지출 확대가 불가피했던 측면이 있지만, 현 정부는 코로나 발생 이전에도 국가채무를 크게 늘렸다. 코로나 사태 이전이던 2017년부터 2019년 편성한 2020년 본예산 사이에 늘어난 나랏빚만 145조3000억원에 이른다. 내년 국가채무가 9월 제출한 정부 예산안 기준(1068조3000억원)보다 3조9000억원이 줄어든 것을 그나마 위안으로 삼아야 할 판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달 국채발행 물량 중 2조5000억원을 줄이고, 내년에도 기존 계획보다 1조4000억원 축소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로써 내년 적자국채 발행예정 물량은 77조6000억원에서 76조2000억원으로 감소하게 됐다.

재정 건전성은 정부 예산안보다 다소 개선됐지만 급격하게 늘어난 적자재정 부담은 차기 정부에서 떠안을 수밖에 없다. 재정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은 판국에 여야 대선후보가 앞다퉈 선심성 공약을 쏟아내고 있는 만큼 국가채무는 늘어날 공산이 크다. 급속한 저출산·고령화로 세금 낼 사람은 줄어드는데 반해 세금지원을 받는 이들이 크게 늘어나는 점도 재정건전성 전망을 어둡게 한다. 기획재정부의 ‘2021~2025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나랏빚은 내년에 1000조원을 넘긴 뒤 2023년 1175조4000억원, 2024년 1291조5000억원, 2025년 1408조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GDP 대비 국가채무는 58.8%로 60%에 육박한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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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수 K-정책플랫폼 원장은 “한국은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주요 선진국에 비해 재정지출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았으나 아동수당 확대, 기초연금 인상 등 한 번 늘리면 줄이기 어려운 항구적 복지지출 비중이 높아 재정악화가 장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빠른 고령화 속도와 잠재성장률 저하라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며 “위기 극복 이후 빠르게 재정이 정상화됐던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코로나19 종식 후에도 만성적인 재정악화에 시달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정부의 채무감축 노력이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의 국가채무 비율 증가 속도는 재정위기로 치닫는 국가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매우 빠르다”며 “지출 조정을 통해 채무를 더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황이 이런 데도 국가재정의 안전판 역할을 할 재정준칙은 국회에서 1년째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재정준칙은 국가채무와 통합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 비율을 GDP의 60%와 -3%로 묶기로 한 것이다. 나랏빚이 일정 수준 이상 불어나지 못하게 하는 일종의 제동 장치인 셈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위기가 올 때마다 손쉽게 나라 곳간에 기대면 빚 불감증에 걸릴 수밖에 없다”며 “국가채무 급증은 재정운용 여력을 줄여 경제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확장재정의 우리나라와는 달리 해외 주요국들은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푼 막대한 유동성을 거둬들여 재정을 정상화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미국과 독일, 프랑스, 영국, 일본 등 35개 선진국의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지난해 122.7%에서 올해 121.6%로 1.1%포인트 낮아진다. 2022년에는 119.3%로 올해보다 2.3%포인트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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