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경제의 경착륙이 가시화하고 있다. 중국 2위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恒大)그룹이 실질적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지면서 부동산 개발업체들의 연쇄 파산 조짐마저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당국은 헝다그룹의 디폴트가 현실화하더라도 ‘개별사건’에 불과하다며 중국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애써 의미를 축소하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헝다그룹의 디폴트 후폭풍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헝다그룹은 지난 6일까지 갚았어야 할 달러채권 이자를 지급하지 못했다. 헝다그룹은 이날 오후 4시까지 2건의 달러채권에 대해 모두 8250만 달러(약 971억원)의 이자를 지급하지 않았다고 블룸버그는 2명의 채권자를 인용해 전했다. 헝다그룹 계열사인 징청(景程)은 당초 예정일인 지난달 6일까지 2건의 달러채권 이자를 지급하지 못했는데 30일간의 유예기간이 이날 종료된 것이다. 헝다그룹은 아직까지 이에 대한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지만 공식 디폴트 수순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헝다그룹은 지난 6일 밤 채권이자 상환여부에 대해 언급하는 대신 외부 전문가들이 포함된 리스크해소위원회를 출범시켰다고만 밝혔다. 앞선 3일 밤에는 2억6000만 달러 규모의 채무보증 의무를 다하지 못할 수 있다고 홍콩 증권거래소에 올빼미 공시해 디폴트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헝다그룹이 디폴트를 공식 선언하면 192억3600만 달러 규모에 이르는 전체 달러채권 연쇄 디폴트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달러채권은 헝다그룹의 전체 부채에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6월 말 기준 헝다그룹의 총 부채는 1조9665억 위안(약 365조원)에 이른다. 특히 헝다그룹의 부채는 ▲중국 내 은행 등 금융권 대출 ▲위안화 채권 ▲그림자금융 상품 ▲달러채권 등 복잡하게 구성돼 있다. 그나마 달러채권이 가장 투명하게 시장에 공개돼 주요 이슈가 되고 있지만 다른 부채들도 상환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국 부동산 업계의 연쇄 파산은 우려가 아닌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 양광(陽光·Sunshine) 100은 이미 디폴트를 선언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양광 100은 지난 5일 “거시경제 환경과 부동산 업종을 포함한 여러 요인의 부정적 영향이 유동성 문제를 초래했다”며 달러채권 원금(1억7000만 달러)과 이자(892만 달러)를 상환할 수 없다고 밝혔다. 아오위안(奧園)에서도 유동성 위기가 불거졌다. 아오위안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무디스의 신용등급 강등으로 6억5120만 달러 규모의 채권 상환에 실패했다. 지난 2일에는 업계 25위인 자자오예(佳兆業·Kaisa)가 7일 만기 도래하는 4억 달러 규모의 달러채권 상환을 가까스로 유예받아 당장 디폴트를 면했지만 8일 홍콩 증시에서 주식의 거래 중단조치를 당했다.

중국 부동산 업체들이 이토록 어려운 지경에 빠지게 된 데는 정부의 강력한 규제가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부동산 업체들은 그동안 경기호황에 힘입어 무리한 은행대출로 집을 지은 뒤 분양을 하는 방식의 ‘돌려막기’로 몸집을 키워왔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부동산 버블을 우려한 당국의 지시로 은행들이 부동산 자금줄을 차단하는 바람에 부동산 업체들은 경영난에 빠졌다. 여기에다 부동산 거래마저 대폭 감소했다. 중국 100대 부동산 개발업체의 지난달 신규 부동산 판매액은 7508억 위안으로 1년 전보다 37.6%나 급감했다.

이처럼 중국 부동산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중국 경제의 경착륙이 가시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총생산(GDP) 중 30%에 육박하는 중국 부동산 시장의 급랭은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루이스 퀴즈 옥스퍼드 이코노믹스 아시아 연구책임자는 중국의 심각한 부동산 침체가 이어진다면 내년 4분기 중국 경제성장률이 3%까지 떨어지고, 이는 세계 경제성장률을 0.7%포인트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중국 정부는 본사가 있는 광둥(廣東)성 정부를 중심으로 헝다그룹 사태에 본격적으로 개입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관영 신화통신은 지난 6일 “광둥성 정부가 헝다그룹에 실무팀을 투입한 것은 부채 규모를 정확하게 파악해 효과적으로 위험을 해소하고, 이해관계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헝다그룹 문제 처리를 위한 중대한 발걸음이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이날 밤에는 외부인들이 참여하는 리스크해소위원회도 출범했다. 리스크해소위는 쉬자인(許家印) 회장 등 헝다그룹 경영진 2명과 국유기업·증권회사·법률회사에서 파견한 인원 5명 등 7명으로 구성된다. 광둥성 정부는 앞서 3일 밤 쉬자인 회장을 긴급 소환해 면담하고 실무팀을 헝다그룹에 상주하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財新)은 “광둥성 정부 업무팀이 감독 업무를 맡아 최종 의사 결정을 담당하고 리스크해소위는 구체적인 집행 업무를 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시장에서는 리스크해소위 출범이 공식 디폴트를 선언하고 부채 구조조정에 나서기 위한 사전 단계일 가능성이 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개별 채권자들과 대출 만기를 연장하고 상환 원리금을 줄이기 위한 협상에 나서기 위한 목적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헝다그룹이 ‘공중분해’되면 8000여개에 이르는 협력업체의 줄도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들 협력사에서 일하는 현장 근로자를 포함해 400만명이 중국 전역 280개 도시에서 1300여개의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런 까닭에 헝다그룹 한 기업의 디폴트만으로 수백만명의 고용 불안, 최소 수십만 채로 추정되는 주택분양 실패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중국 정부는 ‘청산’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피하려 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부동산 산업은 철강, 시멘트, 엔지니어링 같은 직접 연관 산업뿐만 아니라 가구, 인테리어, 가전제품 등 수많은 산업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왕타오(汪濤) UBS 중국 담당 이코노미스트는 “규제 완화가 없다면 내년 주택 판매와 신규 착공이 각각 20% 줄어들고 관련 투자가 10% 이상 감소해 경제 경착륙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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