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조근우 기자] 샤넬코리아 직원들이 무기한 전면 파업을 예고했다. 샤넬코리아 노조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오는 17일부터 무기한 파업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샤넬코리아의 노사갈등 배경에는 코로나19와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비대면 판매 구조전환이 있다. 샤넬코리아의 노사갈등은 앞으로 변화할 세상에서 계속 나타날 수 있는 일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마디로 인간의 일자리를 인공지능(AI)등 기계가 대체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기계가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아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에 갈등이 증폭된 사건은 과거에도 있었다. 19세기 초 발발한 러다이트운동(Luddite Movement)이 그것이다.

이 때문에 샤넬코리아 노조 파업의 의미와 배경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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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대면으로의 전환, 예견된 미래

빅데이터 전문가 송길영 바이브컴퍼니 부사장은 자신의 저서 ‘그냥 하지 말라’(Don’t Just Do It! Think First)에서 ‘사람들은 대면을 부담스러워했고, 이로 인한 소비의 비대면화는 16년 전부터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비대면 소비로 변화는 명품시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명품=오프라인’이라는 공식이 점차 깨지기 시작한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온라인 명품 시장 규모는 1조 5957억원으로, 전년 대비 약 11% 늘었다. 전체 명품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15년 8.6%에서 2020년 10.6%로 커졌다.

온라인 판매는 통상적으로 오프라인보다 수수료가 저렴하다고 알려져 있다. 백화점이나 면세점에 나가는 수수료와 직원들의 인센티브 등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대체로 온라인 판매는 오프라인 판매보다 수수료가 적고, 인건비와 매장 운영비등 고정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샤넬도 온라인 판매를 강화하는 모양새다. 샤넬의 화장품 온라인 매출 비중은 2019년 5%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12.5%, 올 상반기 20.9%로 증가했다. 샤넬코리아도 온라인 매출 증가의 혜택을 톡톡히 누린 듯하다. 2019년 대비 지난해 샤넬코리아의 매출은 감소했지만 영업이익은 크게 증가했다.

전자공시에 따르면 샤넬코리아의 지난해 매출은 9295억원으로, 2019년(1조638억원)과 비교해 감소했다. 하지만 영업이익은 크게 증가했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1491억원으로, 2019년(1109억원)보다 34% 증가했다. 

샤넬코리아 측은 영업이익 증가에 대해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현금흐름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로는 경비 절감, 행사 취소, 자본 지출을 요하는 프로젝트 연기 등을 꼽을 수 있다. 인력 관련해서는 신규채용 동결, 유연근무제 지원을 들 수 있다”고 밝혔다.

영업이익은 크게 증가했지만, 판매직 노동자들의 처우는 악화됐다는 게 노조 주장이다.

전국백화점면세점 판매서비스 노동조합 소속 샤넬코리아 지부는 지난 9월부터 근무환경과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며 사측이 책임 있는 교섭에 나서지 않고 있다고 성토했다. 이들은 △온라인 매출 기여 노동 인정 △합당한 임금 보장 △법정유급휴일 보장 △직장 내 성희롱 근절 정책 수립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문제가 불거진 원인은 판매직 노동자들의 급여구조에 있다. 대부분 백화점·면세점 화장품 판매직 노동자 급여는 기본급과 매출에 따른 수수료로 이뤄진다. 예를들어 기본급 200만원에 월 매출의 2%를 받는 식이다. 월 매출이 1억원이라면 기본급에 수수료를 더해 400만원을 받는다. 수수료 책정은 매장을 방문한 고객이 결제한 ‘오프라인 매출’만 해당된다. 백화점·면세점 등의 온라인 홈페이지를 통해서 주문·결제한 금액은 매출에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노동자는 온라인으로 구입한 제품 관련 교환·환불  요청 및 온라인 행사 응대도 해야 한다. 또한 샤넬코리아 노조는 오프라인 판매가 줄더라도 홍보 문자 보내기, 메이크업 서비스, 제품 테스트 서비스 같은 판촉 업무는 더 많아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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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라인 명품시장의 성장, 오롯이 회사가 잘한 덕일까?

그렇다면 샤넬코리아 영업이익 개선은 오롯이 사측의 수완이 좋았던 덕일까? 그보다는 외부 요인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소비 주역으로 떠오른 MZ세대의 ‘플렉스’ 열풍,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부의 증가와 억눌린 해외여행 수요가 명품시장으로 향했다는 지적이다.

신세계백화점 명품 매출에서 20대와 30대 구매 비중은 각각 10.9%, 39.8%로 둘을 합치면 절반을 넘는다. 갤러리아백화점에서도 2030의 명품 구매 비중은 지난해 처음으로 30%를 웃돌았다. 지난해 현대백화점의 고객 연령대별 명품 매출 증가율을 보면 20대가 37.7%로, 30대(28.1%)와 40대(24.3%)를 앞질렀다.

또 코로나19가 발생하자 각국 정부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돈 풀기에 적극 나섰고, 우리나라는 그 가운데 한 곳이다. 우리나라가 주력으로 수출하는 반도체·배터리, IT서비스 등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혜택을 받는 제품들로 꼽히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4월 발표한 ‘2020년 상장사 재무제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상장사 영업이익이 24.9% 증가했다.

주목해야 할 점은 변화가 가진 방향성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언택트 기술의 도입은 이미 서비스직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고, 데이터의 누적과 AI 기술의 발달은 다수의 사무직을 빠른 시일 내에 효율적으로 대체할 것이라고 분석된다.

[이미지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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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넬코리아 노조파업과 러다이트운동

샤넬 노조 파업을 보며 러다이트운동을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러다이트운동은 산업혁명 진행 과정 중 영국에서 일어난 기계파괴운동이다. 이 운동은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권익을 요구하면서 일어난 최초의 노동운동이라는데 의의가 있다. 영국 산업은 18세기 초까지 숙련공들이 공장에 모여 협업을 통해 규격화된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제 수공업의 시대였다. 하지만 산업혁명이 진행되자 숙련공들이 필요 없어진다. 소수의 비숙련공만 고용해도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산업혁명으로 노동의 가치는 하락했고, 자본가와 노동자들 사이의 빈부격차는 급속도로 벌어졌다. 결국 노동자들은 실업과 생활고 원인을 기계 탓으로 돌리고 기계 파괴운동을 일으켰다. 이 운동을 통해 부분적으로 노조설립이 허용되고, 노동자의 단체교섭을 인정받는 등 영국 정치권과 자본가들의 양보를 이끌어냈다.

4차 산업혁명으로 판매직이 사라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소비자들이 온라인에 적응하는 만큼 변화는 점차 빨라지고 있다.

[이미지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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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미래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일까.

생산성 향상과 산업구조의 효율화에서 노동자 자리는 점차 줄어들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증기기관 보급과 함께 나타난 생산성 급진적 증가는 아름다운 성과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수많은 실업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했다. 지금 이뤄지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변화를 보고 있노라면 인간 노동력이 더 필요할까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AI 발전은 결코 기계가 넘볼 수 없을 거라 예상했던 예술 영역마저 넘보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노동이 점점 더 필요 없는 세상이 다가오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샤넬코리아 노조 파업 사태는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더 이상 인간의 노동력이 필요 없는 사회가 된다면, 기존 노동의 가치는 어떻게 평가받아야 할까 등 숱한 난제가 눈 앞에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상호 윈윈 할 수 있는 해법을 찾는 지혜가 절실하다. 변화의 적절한 속도 조절도 중요하지만 인간의 노동이 소외되지 않는, 근본적인 방향 모색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머잖아 우리에게 닥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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