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학개미’(외국기업 주식에 투자하는 개인)들의 한숨짓는 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자신이 공언한대로 보유주식을 잇따라 매각함에 따라 서학개미들이 ‘가장 좋아 하는’ 테슬라의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머스크 CEO는 지난 16일(현지시간)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공시를 통해 220만주 스톡옵션(주식매수청구권) 행사에 따른 세금납부를 위해 테슬라 주식 93만 4091주를 매각했다고 밝혔다. 금액 규모로는 8억8400만 달러(약 1조533억원)에 이른다. 이날 테슬라 주가는 전날보다 5.03%(49.07달러)나 급락한 926.92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머스크의 연이은 주식매각 처분은 그의 돌발 트윗 하나로 촉발됐다. 테슬라 주가가 기세 좋게 ‘천이백슬라’(1200달러)를 돌파하며 고공행진하던 지난달 6일 그는 트위터에 민주당의 ‘부유세’(억만장자세) 추진을 거론하며 “주식 10%를 매각하는 방안을 제안한다”라고 올린 글에서 “나는 월급이나 보너스를 받지 않고 주식만 가지고 있다”며 “세금 내는 유일한 길은 주식을 파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보유주식 매각에 대한 지지를 묻는 설문을 덧붙였다. 이 설문에는 351만9252명이 참여해 57.9%가 찬성 의견을 냈다. 이를 기화로 머스크는 지난달 8일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보유주식 1290만주를 팔아 136억 달러의 자금을 확보했다. 이 기간 1700만주에 대한 스톡옵션을 행사한 그는 2438억 달러(포브스 집계) 규모의 재산을 가진 세계 최고 부자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 [사진 AP/연합뉴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 [사진 AP/연합뉴스]

머스크가 주식 처분에 나서자 테슬라 주가는 연일 급락했다. 주가가 최고점(1229.91달러)을 찍은 지난달 4일 이후 한 달 보름 만에 24.6%나 폭락하는 바람에 애먼 서학개미들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이날 기준 서학개미들은 테슬라 주식 137억6877만 달러 규모를 보유하고 있다. 서학개미들이 보유한 해외 주식 가운데 가장 많다. 이들이 하루 새 6억8844만 달러를 날린 셈이다. 하지만 주가는 앞으로도 추가 하락할 공산이 크다. 머스크가 공언한 지분 10%를 채우려면 410만 주를 더 매각해야 한다. 미 CNBC방송은 머스크가 향후 40억 달러 규모를 더 내다팔 것으로 내다봤다.

매각 규모가 커지면서 머스크의 의도를 두고 다양한 추측이 나온다. 그가 스톡옵션 인수비용과 세금납부를 위해 주식을 판다고 말했지만 필요 이상 많이 내다팔고 있다며 주가하락을 간파하고 미리 움직였다는 주장이 나온 게 대표적이다. 머스크는 2012년부터 보상계획에 따라 2640만 주를 살 수 있는 스톡옵션을 보유하고 있다. 스톡옵션은 내년에 기한이 만료된다. 하지만 보유주식을 내다팔아 스톡옵션 행사에 따른 세금을 마련하는 것이 비상식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머스크가 스톡옵션 행사로 얻은 주식만 매도한 게 아니라 기존 보유주식도 팔아치웠다는 이유에서다.

기존 주식을 팔아 스톡옵션 세금을 내면 총세액이 늘어나기 때문에 경영자들은 통상 스톡옵션을 행사한 뒤 바로 행사된 주식을 매각한다. 이 경우 매각주식에 대한 양도세가 없다. 만약 기존 보유주식으로 스톡옵션 세금을 마련한다면 행사된 주식을 팔 때 양도세와 옵션 행사에 따른 세금을 각각 납부해야 한다. 회계·컨설팅업체 모스애덤스의 토비 존슨턴 실리콘밸리 사무소 담당은 “(기존 주식을 팔아) 스톡옵션 세금을 내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브래드 바더처 노트르담대 회계학과 교수도 “연방 세액은 매각 수익의 40%에 달할 수 있다”며 “1년을 기다려 ‘즉시 매각’ 형식을 취한다면 스톡옵션 세금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머스크의 테슬라 주식 매도는 주가가 고점에 도달한데 따른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는 물론 유명 기업의 CEO들도 대거 주식매도에 나선 까닭이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올 들어 48명의 CEO들이 주식 매각을 통해 각각 2억 달러를 현금화했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내부자 평균거래의 4배에 이른다. 48명의 CEO 중에는 구글의 공동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화장품 업계의 억만장자 로널드 로더 등도 포함돼 있다. 범위를 넓혀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에 포함된 기업 CEO 등 내부자들은 올들어 11월까지 635억 달러 규모의 주식을 팔아치웠다. 지난해 전체보다 50% 이상 증가했다.

기업 내부정보에 정통한 이들은 고점에서 매도하고 저점에서 매수하는 경향이 있다. 내부자거래 전문가인 다니엘 테일러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회계학과 교수는 “내부자들은 줄곧 정점에서 매도하고 저점에서 매수해왔다”고 강조했다. 에릭 고든 미 미시간대 경영학과 교수는 “머스크가 향후 테슬라 주가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는 경우에만 이 같은 행위가 정당화된다”며 “주가가 오르거나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세금납부액을 미리 현금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미 민주당이 추진하는 부자과세를 피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도 있다. 지난달 하원에서 통과돼 상원의 표결을 기다리는 이 법안은 주식 등 자산의 미실현 이익에 대해 최소 20%의 세율을 적용해 연간 단위로 부과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또 부동산 등 자산을 매각한 뒤 실현이익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는 방안도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과세 기준은 10억 달러 이상 자산 보유자나 3년 연속 1억 달러 이상 소득을 올린 이들로 700명 정도의 극소수만 해당된다.

전문가들은 머스크의 속내를 알 수는 없지만, 그의 회사 스페이스X에 투자하거나 아니면 또 다른 벤처사업 투자에 나서는 등 여러 목적이 있을 수 있다고 관측했다. 에릭 고든 교수는 “머스크가 내년에 만기가 도래하는 세금을 내기 위해 왜 그 많은 주식을 지금 매각할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런 가운데 머스크는 지난 19일 올해 110억 달러를 세금으로 낼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날 트윗을 통해 다른 설명 없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나는 올해 세금으로 110억 달러 넘게 낼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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