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새해 물가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해 소비자물가가 10년 만에 최고 상승률을 기록한데 이어 올해에도 물가상승 압박이 날로 거세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우리 경제가 고물가에 발목 잡힐 위기에 처했다. 지난해 4월부터 2%대를 유지해온 소비자물가가 10월 3%대를 돌파한 뒤 11월 이후 3%대 후반으로 급등한 상황에서 2022년을 맞은 것이다. 현재의 물가상승세는 글로벌 공급망 차질과 국제유가·곡물가·원자재가격 동반 폭등 등 외부 요인이 적지 않아 정부가 관리하기 어려운 만큼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달 31일 발표한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소비자 물가지수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2.5% 상승하며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에 부담을 안겼다. 2011년 4.0% 이후 10년 만에 가장 높다. 식료품·의류·주택·교통·문화·교육·숙박 등 말 그대로 ‘안 오르는 것 없이 다 올라’ 지난달 20일 발표한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2.4%)보다 0.1%포인트 높게 나오는 바람에 경제지표 전망치가 불과 열흘 만에 틀린 것으로 드러나 정부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통계청 물가동향 발표. [사진 = 연합뉴스]
통계청 물가동향 발표. [사진 = 연합뉴스]

품목별로는 농축수산물이 전년보다 8.7% 치솟으며 올해 소비자물가 오름세를 이끌었다. 농산물(8.3%), 축산물(12.7%), 수산물(1.4%) 등이 일제히 올랐다. 공업제품도 전년보다 2.3% 상승했다. 석유류(15.2%)와 가공식품(2.1%) 등이 크게 오른 게 영향을 미쳤다. 석유류는 2019~2020년 마이너스(-)였는데, 지난해 가격이 폭등하며 2008년(19.1%)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집세(1.4%), 공공서비스(1.0%), 개인서비스(2.6%) 등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소비자가 자주 구매하고 지출 비중이 큰 141개 품목을 토대로 작성한 체감물가인 생활물가지수도 2011년(4.4%)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인 3.2%를 기록했다. 수요 측 물가상승 압력을 나타내는 근원물가(농산물·석유류 제외 지수)는 2015년(2.2%) 이후 가장 높은 1.8% 상승했다. 신선식품지수 역시 106.15로 전년보다 6.2% 올랐다. 특히 지난해 12월 월간 기준으로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3.7% 올라 10월부터 3개월 연속 3%대 상승폭을 보였다. 4분기 상승폭은 3.5%로 2011년 4분기(4.0%) 이후 1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농축산물 가격과 국제유가가 계속 오른 데다 전월세 등 집세 상승폭도 컸고 대외적으로는 글로벌 공급망 차질 여파 등도 물가 상승폭을 키웠다.

문제는 고물가 흐름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데 있다. 국제유가는 배럴당 80달러에 거의 육박한 상태다. 지난달 초 60달러대 중반으로 떨어지며 진정되는 듯하더니 다시 상승랠리를 시작했다. 지난 2일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2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 거래일보다 0.47달러(0.62%) 오른 배럴당 75.68달러를 기록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확산세가 원유수요에 큰 타격을 주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유가를 다시 끌어올렸다고 분석했다.

조금씩 되살아날 기미가 보였던 소비심리 역시 4개월 만에 꺾였다.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영향으로 경기에 대한 인식이 악화된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말 발표한 12월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경제생활에 대한 심리를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지난달 소비자심리지수는 103.9로 11월보다 3.7포인트 하락했다. 지난 9월 103.8로 오름세로 반전되며 10월(106.8)과 11월(107.6)까지 석 달 연속 올랐으나 지난달에 다시 내림세로 돌아섰다.

국제 곡물가도 하반기 내내 상승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지난 11월 세계식량가격지수는 전달보다 1.2% 상승한 134.4를 기록했다. 10년 5개월 만에 최고치다. 어운선 통계청 경제동향통계 심의관은 “올해 국제유가·곡물가격·원재료 가격 상승과 글로벌 공급망 차질 등 대외 불안요인이 완화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도 “대외 불안요인 완화에 시차가 있기 때문에 당분간 상당히 높은 오름세를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이에 다급해진 정부는 올해 서민 생활물가 안정을 최우선 정책과제로 두고 물가 부처책임제를 중심으로 총력 대응해 나가기로 했다. 이억원 기획재정부 1차관은 지난달 3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37차 물가관계차관회의에서 “지난해는 전세계가 한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가파른 물가 상승을 겪었던 한 해”라며 “올해는 어려운 물가여건을 감안해 각별한 경각심을 갖고 서민 생활물가 안정을 최우선 정책과제로 두면서 물가 부처책임제 중심으로 총력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물가상승 요인으로 에너지·원자재 가격 급등, 공급 병목, 경제 재개에 따른 수요회복 등을 꼽았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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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추진하는 부처책임제는 각 부처가 물가안정을 정책 우선순위에 두고 물가인상 요인 제거에 선제적으로 신속하게 대응하는 방안이다. 이 차관은 “각 부처 소관분야별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강화하고 비축·수입 등 품목별 가용수단을 활용해 수급불균형을 선제적으로 해소하겠다”며 “업계와 소통해 인상 이전 단계에서 지원 방안을 적극 마련하고 각 부처가 유통구조 개선 등 구조적 대응 방안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다가오는 설 명절로 물가와 생계부담 완화도 현안이 되어 있는 만큼 설 명절 4주 전인 이번 주 ‘2022년 설 민생안정대책’을 내놓기로 했다. 설을 앞두고 장바구니 물가에 대한 부담이 커지고 있는 까닭에 설 민생안정 대책 확정·발표 시기를 지난해보다 일주일 앞당겼다. 설 3주 전부터 명절 수요가 많은 16대 성수품을 공급하는 한편, 농축수산물은 품목별 물가안정 방안을 마련하고 근로·자녀장려금 기한 후 신청분은 명절 전에 지급을 완료하기로 했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알뜰주유소 전환 유도, 지자체 지방공공요금 관리 유인 부여 등 품목별 맞춤형 대책도 추진할 것”이라며 “전기·가스요금 등 공공요금은 1분기 동결 원칙으로 운용하고 상승요인이 연중 분산되도록 협의·관리하겠다”고 말했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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