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조근우 기자] “개인적인 사정으로 발생한 사건이다. 회사의 조직문화나 시스템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것으로 판단한다.”

디자이너 이찬희씨 죽음에 대한 현대차 측 입장이다. 사측 책임이 없다고 선을 긋는다.

하지만 일부 직원들은 ‘사회적 타살’이라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찬희씨의 죽음의 근간에는 폭력적인 ‘사내문화’와 상급자들의 ‘무책임함’이 있다는 지적이다.

[이미지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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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 4개월 만에 밝혀진 이찬희씨 죽음의 내막

“이런 천박한 스케치는 내 눈앞에 없었으면 좋겠다.”

현대차 디자인팀에서 일한 故 이찬희씨에게 이상엽 부사장이 한 언사라고 한다. 이상엽 부사장은 이 외에도 ‘입 냄새가 난다’, ‘좀 제대로 공부해라’며 후임자 앞에 세워놓고 사람에게 모멸감을 주는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한다.

실제 이찬희씨의 센터장과 면담한 후 메모에는 “전무님(센터장)한테 보이는 것, 위대한 디자이너. 의도하지 않아도 상처 주는 말들 조심하자”고 적혀있었다.

고인은 이상엽 부사장이 도입한 경쟁시스템 속에서 수시로 밤을 새우고 휴일에도 일했다고 한다. 결국 이 시스템의 폭력성은 한 가장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현대차는 이찬희씨 죽음 직후 회사 차원의 조직문화 설문조사를 실시했고, 디자인센터 점수는 매우 낮게 나왔다.

하지만 디자인센터 점수가 낮게 나온 것에 대한 반응은 반성이 아닌 분노였다.

한 임원은 실장, 팀장, 책임들을 모아 놓고 “소통하려고 노력했는데 왜 이런 점수가 나왔는지 이해할 수 없다. 너희들에게 실망”이라며 화를 냈다고 한다.

이상엽 부사장은 이찬희씨 죽음 뒤에도 메일을 통해 “무책임한 내려놓음”이 아닌 “책임감 있는 회복”을 강조해, 물러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현대차는 이찬희씨 죽음이 자살이라는 이유로 ‘사회적 풍속을 저해하는 경우 부조 대상에서 제외한다’며 내부 게시판에 공식 추도사와 호소문도 올리지 못하게 했다.

현대차 직원들은 17일 현대자동차 본관 산책로 주변에서 고인 추모 촛불집회를 예고했다.

이상엽 현대차 부사장. [이미지 = 유퀴즈온더 블럭 화면 캡처]
이상엽 현대차 부사장. [이미지 = 유퀴즈온더 블럭 화면 캡처]

◇ 보호받지 못하는 사무·연구직 직원들, 원인은?

현대차 사무·연구직 직원들의 불만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계기는 성과급 문제였다. 2020년 현대차 노사는 코로나 사태를 감안해 기본급을 동결하고 성과급은 최근 10년 중 최저치로 합의했다. 하지만 지난해 실적이 예상보다 양호하게 나오면서 직원들 불만이 폭발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현대차 직원 A씨는 “재작년부터 일해 봤자 보상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임금협상을 통해서 느끼고 정의선 회장에 대해 상스러운 욕설까지 나오는 상황”이라며 “현재 사무·연구직이 받는 불합리함은 너무나 많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사무·연구직 직원들이 노조 보호를 받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A씨는 그 이유에 대해 “현대차지부장이 생산직에서만 나오기 때문에 그들은 공장생산직의 표만을 위해 일할 수밖에 없다”며 “연구직이나 일반직은 과장급 책임연구원, 책임매니저가 되면 자연스레 노조에서 탈퇴하기 때문에 노조활동에 적극적이기 힘든 상황이다. 과장급 이상이 되면 고과가 낮으면 연봉이 삭감된다”고 말했다.

또 현재 노조도 사측과 제대로 된 협상을 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A씨는 “언론, 특히 현대차가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일부 경제지에서는 노조를 압박하는 언론플레이만 지향하고 있고 본사 노무부문 측에서도 이미 국민여론이 사측에 유리한걸 알고 있기 때문에 협상에 제대로 임하지 않는 상황이지만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이 말을 믿어주는 사람은 없다”고 전했다.

이어 “결국 노동조합(생산직)과 사측 사이에서 사무·연구직은 소외되고 홀대받고 있는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조차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전 국민으로부터 귀족노조라며 욕이란 욕은 다 먹고 있어 직원 사기는 태업을 향해 가고 있다”고 전했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 MZ세대와 연구직 직원들에게 지탄받는 현대차, 이대로 괜찮을까?

“IT기업보다 더 IT기업처럼 변해야 한다.”

2018년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한 말이다. 정의선 회장이 이렇게 말을 한 배경에는 자동차산업의 대변화가 시작됐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현재의 자동차 산업은 자율주행 및 전동화와 함께 과거 제조업이던 시절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정의선 회장의 발언이 무색하게 아직까지 현대차 사내문화와 직원 대우는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신입사원들 사이에서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못 가서 들어가는 곳이 현대차”라는 말도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실제 지표로도 나타나고 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에 따르면 한 때 취업선호도 1위에 올랐던 현대차는 지난해 7위에 그쳤다.

Universum의 2020년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고용주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시장에서 현대차의 경쟁상대인 테슬라는 미국 엔지니어가 가고 싶은 회사 1위에 꼽혔다.

문제는 이런 양상이 지속된다면 현대차는 유능한 젊은 직원에게 외면 받을 것이라는 점이다. 유능한 직원이 들어오더라도 조직문화에 환멸을 느끼며 떠나갈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까지 제기된 문제점들은 MZ세대 직원들이 손꼽을 정도로 싫어하는 것들 대부분이다.

사람인이 2020년 20~39세 남녀를 대상으로 ‘가장 입사하기 싫은 기업 유형’을 조사한 결과, △야근, 주말출근 등 초과근무 많은 기업(31.5%)이 1위에 올랐다. 이어 △업무량 대비 연봉이 낮은 기업(23.5%) △군대식 문화 등 소통이 어려운 기업(13.1%) 등이 뒤를 이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사진 = 연합뉴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사진 = 연합뉴스]

◇ 흔들리는 정의선 리더십, 이제는 내부를 돌봐야 할 때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 성공과 기아차의 디자인 환골탈퇴에는 정의선 회장의 리더십이 있었다. 그는 자율주행과 전기·수소차 등 자동차 미래를 위한 부분에 아낌없는 투자를 하며 현대차 판매량을 지난해 3분기 기준 글로벌 3위까지 끌어올리며 호평을 받고 있다.

반면 내부 MZ직원들의 평가는 차갑기 그지없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를 살펴보면 현대차 직원들의 정의선 회장에 대한 비판과 비난 수위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또 블라인드의 현대차 사내라운지에서 진행된 ‘현대차그룹의 3세 경영 어떻게 생각하시나요?’라는 투표가 올라왔다. 결과는 ‘매우 잘못하고 있다’에 84%(547명) 표가 몰렸다. ‘잘못하고 있다’가 9.4%(61명), ‘보통이다’가 4.3%(28명), ‘잘하고 있다’는 1.4%(9명)에 불과했다.

[이미지 = 블라인드 캡처]

현재 자동차 산업은 기술적 특이점에 와있다. 현대차그룹도 이를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CES 2022에서 본업인 자동차를 넘어 로봇과 메타버스 기술을 접목한 ‘메타 모빌리티’를 새 비전으로 제시했다. 로보틱스와 모빌리티 기술에 메타버스를 결합, 로봇을 ‘대리인’(proxy)으로 삼아 메타버스에서 인간이 직접 할 수 없는 체험의 지평을 확장한다는 것이다. 실제 현대차 부스에는 자동차 단 한 대도 없이 로봇이 관람객을 맞았다.

이처럼 산업이 급변하는 변곡점에서 제대로 변화와 혁신에 대응하지 못하면 단숨에 도태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전 사원의 단합과 열정, 의지로 담보할 수 있다.

정의선 회장의 불안한 리더십이 현대차의 유능한 젊은 인재들을 빠져나가도록 부추기고 있다는 일각의 우려 섞인 비판이 더욱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다.

공존과 공정 등이 화두로 떠오르는,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게 아니라 ‘어떻게 버는지’가 중요해진 현대사회다. 정의선 회장은 이제 현대차 사내문화를 지금의 사회 분위기에 맞게 변화시키는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줘야 할 시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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